환경 보전형 농업을 주목하라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등록 2020.01.03 14:34수정 2020.01.0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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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농업이라는 말을 미래 식량으로 바꾸어보면 농업의 미래가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농업의 1차 목적은 식량이니까 그렇다. 어떤 이는 주장한다. 과연 앞으로도 영원히 밭 갈고 논에 물 대며 가을이면 추수하는 들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등락 폭이 큰 농산물값 때문에 풍년이라면 과잉 생산으로, 흉년이면 팔아서 돈 될 게 없게 된 농민들이 머리띠 두르고 하루는 과천 종합청사 앞에서 하루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볼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농민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산업의 융복합화가 빠르게 농업으로 확장되어 오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요즘 뜨는 스마트 팜 혁신 밸리가 그것이다. 정보 통신 기술(ICT)을 접목하여 지능화된 농업 시스템을 일컫는 스마트 팜에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인공 지능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유통·연구개발 기능을 집적한 것이다.

스마트팜 밸리의 논란

전기와 전자, 그리고 통신, 기계도 한 몸뚱이로 붙어있다. 통신은 사람 간의 소통만이 아니라 교통에도 아주 밀접하다.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은 운전석 녹음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버스에 있는 위성항법장치(GPS) 수신기가 버스정보시스템 전산실로 무선통신 데이터가 연동된 장치를 통해 방송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로가 정체되거나 사고가 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다음 정거장 안내가 안 나오는 것이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고 앞으로 더욱 융복합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땅에서 난 재료로 음식 만드는 비중이 점점 적어지고 인공 식품이 늘고 있어서라는 것이다. 미국의 식품기술 기업인 저스트(Just)는 닭이 낳지 않은 달걀, '저스트 에그'를 만들고 있는데 올해의 매출액이 4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녹두로 만든다고 하니 식물 달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에 살충제 달걀로 홍역을 치른 우리나라 양계농가나 일반 가정에서 안전한 달걀을 '저스트 에그'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일본의 정보통신 기업인 오픈 밀즈(Open Meals)가 초밥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내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고 한다. 음식을 프린트해서 먹는다니 놀랍다. 최근에 중국과 한국은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홍역을 치렀는데 홍콩에 본사를 둔 음식 기술 기업 옴니 포크는 돼지고기를 대체하고자 콩과 버섯을 원료로 인공육을 만들었다. 지방은 86% 줄이고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한편, 칼슘은 2.6배가 더 함유된 매우 건강한 고기 식품이라고 홍보한다.

그래서 농부가 사라질 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미래 음식은 이런 식으로 해결이 될까?


인공 식품, 인공육이 농사를 대체해 갈수록 농부가 필요 없어지고 끝내 사라진다면, 인간의 밥상이라는 것이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하루 2540킬로 칼로리만 주입(?)하면 된다는 논리가 성립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밥상이라는 게 열량을 얻는 수단에 불과해도 될까?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

지난 10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 방향과 실천전략' 세미나가 열렸는데 여러 정책 방안 중 대표적인 것이 공익형 직불제의 실시였다. 공익형 직불제란 식량안보나 환경생태 등 농업이 가지는 공익적 기능에 대하여 지원을 하는 것으로 선진 각국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농정은 시장경쟁력 강화와 효율성에 치우쳐 고투입, 시설농업, 규모화를 추구해 왔다. 대농과 기업농, 농기업들에게 혜택을 몰아주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방향을 돌려 환경 보전형 농업을 지원하고 농업의 공익적인 기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대접하려는 전략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은 타 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생산 기능' 외에 '환경 보전 기능'이 있다는 사실인데 이를 주목하는 정책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스마트 팜을 강조하고 선진농업, 기술 집약형 농업을 주장해도 그것은 농업의 공익성이 전혀 실현되지 않는 공업화의 길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농민 행복·국민행복을 위한 농정과제 공동제안 연대(농정 연대)'는 2017년부터 정책 과제로 직접 지불금을 2016년 기준 농업예산의 14% 수준에서 2021년까지 50%까지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과 스위스 수준인 8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제야 그 첫 단추가 꿰인 셈이다. 물론 쌀 변동 직불금 폐지와 세계무역기구의 개발도상국 지위 제외로 인한 관세 보호벽 제거 문제가 있긴 하다.

앞으로 공익형 직불제는 시행령 등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소농(가족농)에 대한 보호 규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소농의 규모와 공익기능에 대한 약정, 직접 지불금 액수 등이 쟁론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시동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의 현실화

직접 지불금과 함께 현재 30여 지방정부에서 지급하는 농민 월급제(농민 수당)를 한 단계 향상시킬 필요가 있겠다. 지방조례를 제정한 18개 지자체들도 베낀 듯 천편일률적인 조례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연 60만 원이라는 액수는 너무 약소하다. 복잡한 계산식을 거쳐 지급되는 각종 복지 관련 돈, 노령화 관련 돈, 생활보조 관련 돈의 항목들을 통합하여 조건 없이, 모두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손질한다면 액수를 대폭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중인 앤드루 양이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와 선풍적인 지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내년 총선에서도 국민 기본소득제(우선적으로 농민기본소득과 청년수당)가 당론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대선 때 정의당이 공식 당론으로 공약화한 적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모든 농민에게 지급하는 완전한 농민기본소득제를 위한 10년 계획, 또는 20년 계획의 설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건 따지고 부정수급 파헤치고, 위반한 사람들 시비 가리고, 처벌하고, 환수하고 그러느라고 들어가는 간접비가 엄청나다. 법정 분쟁까지 가는 수도 있다. 이 비용이 기본소득 재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

모든 농민 또는 농촌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각종 농민 지원금과 보조금이 한 쪽으로 몰리는 폐단도 사라질 것이다. 현재는 매년 그 사람이 아들딸, 사위, 며느리까지 동원하여 그럴싸하게 법인이라고 만들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나랏돈 따 빼먹고 그것이 능력인 양 거들먹거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지역에도 복지사업, 보조사업, 지원 사업 빼먹고는 법에 걸려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를 본다.

농민기본소득제를 하면 진짜 실력 있고 신실한 사람들이 부상할 것이다. 14조 6000억 원의 농업예산이 엉뚱한 데로 다 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안 될 것이다. 농사건 축산이건 과수건 투기하듯이 땅과 하늘을 오염시켜 놓고는 툭하면 보상하고 책임지라면서 생떼를 쓰는 투기 농부들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제 땅에서 난 식재료(곡물)는 20% 내외지만 한 끼 7천-8천 원이면 어디서나 제법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먹거리는 차고 넘친다. 참 기묘한 현상이다. 식량안보 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부품·소재 산업 수출 금지 조치가 만약에 우리의 식량 수입국들이 금수 조치를 한 것이었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열 명 중에 여덟은 굶어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대체재가 없다. 식량의 국산화율을 높인다? 요원한 일이다.

농업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농민 눈치 보느라 농업 예산 늘리고 보조금과 지원금 올리는 연구를 주로 한다. 표를 얻어먹고 사는 선출직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당장 먹기에 달다고 농민들에게 사탕만 권하고 있다. 공익형 농업과 농민기본소득은 농가 소득 증대와 환경 보전형 농업을 동시에 충족하는 길이 될 것이다.

작년 말에 유엔은 서문을 비롯해서 28개 조항으로 구성된 농민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농민과 농촌 지역민의 인권, 식량주권, 토지와 물, 종자, 생물 다양성, 전통지식에 대한 농민의 권리뿐 아니라 차별받고 소외받는 아동, 청년, 여성의 권리까지 구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표결에서 찬성 121표, 반대 8표, 기권 54표로 통과되었는데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기권을 하였다. 국내법과의 충돌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농민들의 기본권이 얼마나 침해받고 있는지가 드러난 셈이다.

유엔에서 채택한 가족농 선언이나 농민 권리에 견주어 보면 그동안의 한국의 농정방향이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최소한의 식량주권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농정의 현실은 정부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전환의 기틀이 제대로 놓일 수 있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개벽신문> 90호 (2019. 12. 15.)에도 실렸습니다.
#농업 #미래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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