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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미술교사로 일한 아버지 위해, 우리는 파리로 떠났다

[리뷰] 영화 <몽마르트 파파> 꿈을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20.01.03 13:38최종업데이트20.01.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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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몽마르트 파파>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는 미술 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가 은퇴 후 인생의 꿈인 몽마르트의 거리 화가가 되기 위한 도전기를 그린다. 영화는 순전히 아들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민병우 감독은 어느 날 34년간 미술 선생님으로 일한 아버지 민형식씨에게 별생각 없이 "퇴임하시면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다 생각이 있지"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무슨 계획을 세우신 걸까? 호기심이 발동한 민병우 감독은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의 퇴임 이후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2015년 12월 29일,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때 첫 촬영을 시작하여 2년여에 걸친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병우 감독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거나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역에서 촬영을 하는 식으로 분량을 쌓아갔다. 이후 아버지 민형식 씨와 어머니 이운숙 씨와 함께 프랑스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꿈이 이뤄지는 과정을 포착했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한 장면 ⓒ (주)트리플픽쳐스


<몽마르트 파파>는 민병우 감독 혼자 연출, 촬영, 편집, 각본, 내레이션을 소화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까지만 본인이 촬영하고 추후 전문 촬영 감독을 구하려고 생각했지만, 카메라를 든 관찰자 시점에서 어머니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모든 촬영을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것은 단편 영화 <도둑고양이들>(2011)로 제1회 올레 스마트폰 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세계 최초 아이폰 장편 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2013)를 만든 민병우 감독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16mm, 35mm, HD 카메라 등 다양한 매체로 영화 작업을 했던 민병우 감독의 경력은 <몽마르트 파파>의 자양분이 되었다.

민병우 감독은 편집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촬영한 영상을 확인하며 아버지가 몽마르트 거리 화가로 꿈을 이루는 모습에 감동하여 프랑스에서의 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아들의 시선으로 보았던 순간과 정서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영화의 내레이션까지 맡았다. 전문 성우가 아니기에 어색함은 묻어나지만, 적재적소에 삽입된 위트 넘치는 설명과 아들이기에 느껴지는 진정성은 영화를 한층 담백하게 만들어주었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한 장면 ⓒ (주)트리플픽쳐스


<몽마르트 파파>는 네 가지의 영화로 다가온다. 첫째, '꿈으로서의 영화'다. 아버지의 평생 꿈은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는 교사를 시작했을 무렵에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2년간 유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민형식 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꿈이 좌절된 이후 다람쥐 쳇바퀴 같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안 가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몽마르트 거리 화가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는 광경,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프랑스 곳곳에서 예술적 정취를 느끼며 영감을 얻는 장면 등 꿈을 현실로 이루는 순간순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전의 뜨거움과 성취의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덤으로 영화는 몽마르트 언덕에서 거리 화가가 되기 위한 방법까지 알려준다.

둘째, '가족으로서의 영화'다. 사실 <몽마르트 파파>는 가족의 가장 사적인 기록물에 가깝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어머니의 잔소리는 연신 웃음을 자아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파리에 간다고 하자 "파리 같은 소리 하네. 너네 아빠 파리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독설을 던진다. 그림을 팔릴까 질문했을 때도 촌철살인의 평가를 내린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는 "세계적인 대가도 마누라는 악처"라면서 웃으며 넘긴다.

이운숙 씨를 진짜 악처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후원자이자 항상 곁에서 묵묵히 돕는 든든한 동지다. 이런 날 것 그대로의 말과 감정은 아들인 민병우 감독이 카메라를 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었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한 장면 ⓒ (주)트리플픽쳐스


셋째, '여행으로서의 영화'다. <몽마르트 파파>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을 담아냈다. 또한 파리를 벗어나 니스, 에즈, 에트라타, 그리고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모나코 공국을 방문한다. 프랑스 에르라타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고 그림을 그린 곳으로 아버지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발자취를 느끼기 위해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아우즈도 찾는다. 루브르 박물관, 모네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등에서 만난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들도 영화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풍경이나 그림을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화가의 시선으로 전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34년간 미술교사로 근무했지만, 사진이 아닌 진품을 접하고 색감과 관찰력에 연방 감탄사를 내뱉는다. 심지어 화가들의 정신세계와 영감이 연결되도록 그림들 앞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고 말한다. 유명한 그림들이 태어난 곳을 방문한 뒤엔 "실제로 봤기 때문에 느낌이 내 머릿속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대화들을 통해 영화 속 풍경은 새롭게 관객과 만난다.

넷째, '작가로서의 영화'다. 민형식 씨가 생각하는 그림에 대한 철학은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 그는 "팔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그림에 혼을 넣어서 그리겠다",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야 되고 느낌을 담아야 한다. 느낌을 색깔로 나타낸다" "그림을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터치로 끝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라 생각하진 마시길. 아버지의 카지노 사랑과 어머니의 주식 사랑, 부부의 케미스트리 등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가 영화에 가득하니까 말이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한 장면 ⓒ 웃음을 주는 영화


영화 제목 <몽마르트 파파>는 꿈을 이뤄가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민형식 씨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에겐 은퇴 후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모습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몽마르트 파파>는 용기를 내어 부딪히라는 희망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몽마르트 파파>는 아버지의 꿈을 알아가는 아들을 뜻하기도 한다. 많은 이가 자신의 꿈은 말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아버지나 어머니 등 가족의 꿈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누구나 꿈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몽마르트 파파>는 꿈을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영화다.
몽마르트 파파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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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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