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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 김경숙과 톨게이트 노동자... 뭐가 다릅니까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 노동자, 제6회 김경숙상 수상... 여전히 여성 노동자는 싸운다

등록 2020.01.02 07:10수정 2020.01.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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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타고난 성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사회. 불로소득을 누리는 자를 '갑'으로 우대하는 사회.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슈퍼 을'이 되는 사회.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환대보다는 차별을, 정당한 대우를 받기보다는 '무임승차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이곳에서 여성은 2등 인간이고, 노동자는 2등 시민이며 그 와중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2등 노동자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2등 인간, 2등 시민, 2등 노동자에게 특별한 상이 돌아갔다. 2019년 12월 20일 김경숙열사 기념사업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공동 주최한 제6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수상자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 노동자'가 선정되었다.

'싸워온 여자들, 저항하며 이겨온 우리'라는 슬로건을 내건 시상식에서 주최 측은 상과 함께 3백만원의 수상금을 전달하며, 톨게이트 노동자의 끈질긴 투쟁이 "40년 전 YH노동조합 투쟁 중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희생된 김경숙 열사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019년 <제6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수상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노동자들. ⓒ 한국여성노동자회

 
왜 40년 전과 지금이 비슷해야 하나

1979년 YH노조의 투쟁 과정 중 사망한 김경숙 열사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수상하는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40년 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가 받는 장면은 다른 시간대의 두 주인공이 만나는 영화 속 한 장면에 가까웠다. 그 40년 사이에 한국사회는 개발도상국에서 원조국으로 전환할 만큼 압축성장을 이뤄냈지만, 1979년의 여공과 2019년의 요금 수납원이 처한 현실은 이상할 만큼 닮아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성 노동자에게 힘찬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 자리에 참석한 최순영 전 YH노조 위원장은 70년대 민주노동조합 결성을 이끌었던 "여성 노동자의 노력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어 왔다"고 강조했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20대 여성 노동자를 만나는 기회를 통해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 노동자가 차별받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40년 전, YH노조는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에 맞서 일터를 지키고자 했다. 자본금 100만 원으로 시작해 한때 4천여명 직원을 고용하며 가발 수출 산업에 일조했던 YH무역은 노조의 임금 협상에 불응하며 회사 문을 닫아버렸다. 가발 경기가 쇠락하고 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사측의 방만한 운영과 내부 비리로 사운이 기운지 오래였고, 사주인 장용호는 이미 미국으로 도망친 뒤였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선 것은 노조, '여성노동자'들이었다. YH노조는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며 공장과 기숙사에서 농성을 시작했으나, 유신정권 막바지 민주 노조 탄압이 극심하던 상황이었다. 경찰이 곧 들이닥칠 것이란 소문을 들은 노조는 고심 끝에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사로 농성지를 옮겼다.

당시 야당의 총수였던 김영삼 총재가 YH노조를 지원하는 형국이 되며 YH노조의 투쟁은 본격적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불씨를 잡아당겼다. YH노조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자 이에 긴장한 박정희 정권은 1979년 8월 11일 야당 당사에 경찰권력을 투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였다. 이른바 '101진압작전'에서 노조원이었던 김경숙 열사가 사망하였고, YH노조의 간부와 배후로 지목된 이들이 구속된 상태에서 YH노조는 강제로 해산되었다.  

'직접 고용', 정규직 전환 그 이상의 의미 

2019년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의 대량 해고 사태는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뜨거운 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 7월 1일, 한국도로공사 사장 이강래는 비정규직 여성 수납원 천오백여 명을 하루아침에 해고했다. 물론 그 밑 작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어 온 것이었다. 97년 외환 위기 사태 이후 한국도로공사는 요금소 수납 업무를 점차 민간 업체로 외주화 해왔고, 2009년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이르러 요금 수납원 전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위탁받은 민간 용역업체의 사장 자리는 도로공사의 명예 퇴직자에게 돌아가는 보직이 되었다.

톨게이트에서 길게는 20년 가까이 일해온 여성 노동자는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에서 용역업체의 계약직원으로 전락했다. 노동자들은 2013년부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시작했고 5년 만에 이러한 고용 행태가 '불법 파견'임을 확인하며 승소했지만, 도로공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오백 명을 모두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한국노총 소속 톨게이트 직원 일부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는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였다.

결국, 수납원들은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고 추석 명절을 앞둔 9월 10일 이들을 강제 해산하려는 남성 경찰 500여명 앞에서 상의를 탈의하며 맞섰다.  
  

2019년 <제6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후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노동자들과 전 서통노조 위원장 배옥병 님이 토크콘서트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김경숙상 시상식 이후에는 70~8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선배 격인 전 서통노조 위원장 배옥병 님과 수상자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노동자들의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전서정 님(경남지역일반노조)은 당시 옷을 벗으며 시위할 때 수치심이 아닌 '억울함'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까지 온몸으로 기어서 외쳐야만 비정규직 세상이 없어진다는 것에 열통이 터졌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부당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 밥도 못 챙기고 새벽 여섯시 반까지 출근한 뒤에 그녀가 먼저 했던 일은 사장의 아침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추수철이 되면 "밖에 나가 이삭을 주워오라"거나 시시때때로 "어깨를 주물러 달라"는 등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지시받았다. 
 

투쟁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노동자 ⓒ 전국민주일반연맹일반연맹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계약직"이었던 수납원들은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기 어려웠다. 심한 경우에는 2~3개월마다 계약서를 다시 써야 했던 상황은 아무 때나 내쳐질 수 있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도명화님(민주연합노조)은 용역업체 사장의 무시를 당해내는 일보다 더 비참했던 것은 같은 노동자로부터 멸시를 받는 순간이라고 털어놓았다. 여성 수납원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던 순간에 남성 수납원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똑같이 톨게이트에서 표를 받던 남성 수납원은 어느 날 '관리직'이 되어 돌아왔다. 같은 처지였던 그들은 오히려 심한 갑질을 일삼으며 여성 수납원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남성 관리자에게 여성 수납원이 맞설 때, 바깥에서는 이를 두고 '노노 갈등'이라 비난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캐노피에 오르며 피로를 감수하고,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노피에 함께 오른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납원 천오백 명이 캐노피 아래에 모였을 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이 지나가며 던지는 '힘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울컥함이 이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80년대 서통노동조합을 이끌었던 배옥병 전 노조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때에도 어용노조 결성 반대를 위해 천이백여 명의 노동자가 기숙사 옥상으로 모였던 때의 감동이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2~3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농성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며 노동자의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나라 정도면 그래도 꽤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이명금 님(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공공연대노조)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소리 내서 싸우지 않으면 누가 내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투쟁을 통해 배웠다.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박삼옥님(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인천지역일반노조)은 앞으로는 "다른 노조에 연대하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작지만 큰 소망을 밝혔다. 이들에게 직접 고용 쟁취는 단순히 정규직으로 전환 된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의미했다.  

"싸워온 여자들"의 이야기

내가 YH사건을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던 지난해, 대한민국은 미투운동으로 떠들썩했다. 매일같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얼굴이 뉴스에 보도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70년대 여성 노동자가 처했던 열악한 현실이 4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70년대의 여성 노동운동사 자료와 구술사를 검토한 뒤 혜화역에서, 홍대에서, 광화문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참여할 때 타임캡슐을 타고 오가는 듯 느꼈다. 70년대 여공들이 민주노조 결성 운동을 중심으로 모여 공장에서 싸워나갔다면, 2010년대의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과 여성혐오를 의제로 삼아 거리로 뛰쳐나왔다.
 

투쟁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여성노동자들 ⓒ 전국민주일반연맹일반연맹

 
시간의 낙차가 무색할 만큼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는 70년대 여성 노동자와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노동자의 모습은 어쩌면 더 열악해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40년 전 '불쌍한 여공'으로 동정 당하며 연민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 노동자는 이제는 '떳떳하면 시험 봐서 정규직 돼라'는 혐오의 시선 앞에 가로 놓였다.

79년 YH노조가 민주노조 결성을 지지하는 이들과 손잡고 연대 세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조 이기주의'로 낙인찍히고 외면당하고 있다. YH노조는 야당과 연합하며 노동 운동을 반독재 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었지만, 2019년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는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구성된 정부 아래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2019년,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밝히기 위해 모이는 민심은 있지만 톨게이트 캐노피 앞에서 촛불을 들어주는 이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여전히 막연하기만 한 여성 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김경숙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상을 수여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시간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마음, 달라진 듯 바뀌지 않는 현실을 함께 바꾸어가자는 용기, 그 연대의 악수가 아닐까. "싸워온 여자들"의 이야기는 40년 전 누군가의 무용담이 아니라 오늘날 여전히 "저항하며 이겨"나가야 할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자원활동가 서아현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서아현 님은 ‘1979년 YH사건’을 재구성한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의 교차적 연대 : 다사건 분석을 통한 YH사건의 비판적 재구성」이란 석사논문(성공회대 사회학)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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