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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통문' 비밀조직하고 선전활동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24회] 기록해 두는 문서가 아니라 비밀리에 돌려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등록 2020.01.04 15:39수정 2020.02.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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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11월 말목장터 봉기를 주도한 21명의 참여자들이 각 리(里)의 집강(執綱)들에게 돌린 사발통문. 1893년 11월 말목장터 봉기를 주도한 21명의 참여자들이 각 리(里)의 집강(執綱)들에게 돌린 사발통문.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돋보이는 '사건'의 하나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이다.

이들은 봉기를 준비하면서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문서를 만들었다.

그냥 기록해 두는 문서가 아니라 비밀리에 돌려보기위해 마련한 것이다. 사발을 종이에 엎어둔 후 사발 둘레를 따라 한 사람씩 세로 쓰기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때문에 누가 시작점인지, 주도자인지 알기 어려운 특성을 갖기 때문에 동학혁명의 논의 초창기에 등장하였다.

이 무렵 고부 중심의 농민지도자들은 고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란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곧 도인들이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봉기를 계획한 것이다.

이 통문에 따르면, '계사 11월 ○일' (1893년 11월)이 앞에 나오고 이어 서명자의 명단이 나온다. 이어 글을 바꾸어 각리이집장좌하(各里里執綱座下)라 쓰고 그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이어지고 있다.

우와 같이 격문을 사방에 날래 전하니 여론이 비등하였다. 매일 난망(亂亡)을 구가하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얐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 남아 있겠나" 하며 기일이 오기를 기다리더라.

이 때에 동학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宋斗浩) 집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운집하여 차서(次序)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좌와 같다.


①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사.
②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사.
③ 군수에게 아부하여 인민을 갈취한 탐리를 쳐 징계할 사.
④ 전주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사.
우와 같이 결의가 되고 따라서 군략에 능하고 모든 일에 민활한 영도자가 될 장(將)……(이하 판독불능) (주석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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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탑에 새겨넣은 사발통문 형태. 네모 안에 써진 것이 전봉준의 이름이다. ⓒ 안병기

 
격문의 서명자는 전봉준을 비롯하여 송두호ㆍ정종혁ㆍ송대화ㆍ김도삼ㆍ송주옥 등 6명의 고부 사람과 태인의 최경선, 고창의 손여옥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1893년 겨울의 거사는 준비 과정에서 일단 중단되었다. 그 해 11월 30일(음) 고부군수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전임되면서 표적물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동학농민봉기군이 고부관아를 습격했을 때 조병갑은 이미 탈출하고 없었다. 조병갑은 앵성리(현 정읍시 영원면) 조(曺) 모씨로부터 농민들이 관아로 몰려온다는 전갈을 전해 듣고 고부 입석리 진선마을 부호 정참봉 집으로 숨어들었다가 변장하고 야간에 정읍 → 순창을 거쳐 전주 감영으로 도망하여, 난민을 진압하기 위해 병정 수백 명을 지원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민란의 대상자를 맞아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전봉준 장군의 절명시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봉기를 일으켰던 대뫼마을 동학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봉준 장군의 절명시 ⓒ 김광철

 
민란을 일으키고 국고를 횡령하였다는 죄로 2월 15일 고부군수직에서 파직된 조병갑은 공주에 은신해 있다가 4월 20일 의금부도사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5월 4일 전라도 고금도 (현 완도군 고금면)로 유배되었다.

정부는 용안현감 박원명(朴源明)을 서둘러 고부군수에 임명하여 사태의 진압케 하였다. 신임군수 박원명은 민심수습에 나섰다. 난민들을 불러놓고 크게 잔치를 열어 각자 안심하고 생업에 열중하라고 위무하였다. 조정에서는 용서하기로 했으니 문책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주석
13> 이이화, 앞의 책, 22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조병갑 #박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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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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