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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부리면 죽는다" 제주 최연소 해녀가 말하는 해녀의 삶

[우먼 인 로컬 - 제주] 추자도의 9년 차 해녀 정소영 ①

등록 2020.01.02 07:18수정 2020.01.0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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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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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에 선 제주 최연소 해녀 지난 11월 27일 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5)씨가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했다. 추자도 옆 작은 유인도 추포도에서 살고 있는 정씨의 어머니도 해녀다. ⓒ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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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해녀가 물질해서 잡아올린 전복. ⓒ 정소영

  
고무 옷을 입고 7kg의 납덩이(연철)를 찬다. 태왁(수확물을 담는 그물)을 들고 눈(물안경)을 쓱 닦는다. 한 손에 빗창을 들고 바닷속으로 스며든다. 물속에 있는 건 1~2분. 물 밖으로 나올 때면 숨비소리가 들린다. 물질 시간은 4시간에서 8시간 남짓.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손바닥만한 전복을 발견할 때면 잠시 숨 쉬는 것도 잊는다. 해녀의 일상이다.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있다. 해녀학교와 해녀박물관, 태왁 만들기 체험 등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 해녀 판타지가 한몫한 터였다. 제주 해녀를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나이 든 해녀의 얼굴 주름이 파도를 닮았다. 진짜 해녀의 삶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27일 제주 애월에서 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5)씨를 만났다.


도대표 수영선수에서 해녀가 되기까지

- '최연소 해녀'라던데, 해녀를 한 지 얼마나 됐나.
"올해가 9년 차예요. 27살부터 시작한 거죠. 처음엔 해녀인 엄마 때문에 시작했어요. 정말 하기 싫었어요. 2년 넘게 안 한다고 버텼죠. 근데 저희 엄마가 한 성격 하거든요. 바다에 반강제로 끌려갔어요. "고무옷 입어! 한번만 들어가!" 엄마 호통에 억지로 들어갔어요. 6개월까지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돈도 벌 수 있고요. 채취할 때 희열이 있어요."

- 제주도에서 태어났나.
"네. 고향이 추포도예요(추포도는 제주 북부 추자도 옆의 섬으로 제주도 유인도 중 가장 작다). 추포도에 사는 건 지금은 우리 가족뿐이에요. 아마 전국에서 가구 수가 가장 적은 유인도일 걸요. 엄마, 아빠, 오빠네 가족, 그리고 저만 있죠. 외할머니 때부터 터를 잡으셨다고 하더라고요."

- 한 가족이 사는 작은 섬이라니 인상적이다. 집도 직접 지으셨나.
"우리집이 예전에는 분교였대요. 지금은 애들이 없으니 그 건물을 고쳐서 쓰는 거죠. 제가 어릴 때는 전기도 없었어요. 촛불로 시작했죠. 심지어는 기름으로 켜는 가스를 쓰기도 했죠. 그러다 플래시를 쓰게 되었고, 지금은 발전기를 쓰고 있어요. 작년엔 태양광이 들어왔어요. (물은?) 섬엔 원래 물이 귀해요. 비가 왔을 때 받아서 쓰고 그러죠."

- 섬에 학교가 없었을 텐데.
"중고등학교는 제주도에서 나왔어요. 원래는 수영 선수였어요. 도대표도 했었고 메달도 전국권에서 땄어요. 그런데 고2 때 슬럼프가 온 후로 선수 생활은 접었죠. 수영 강사로 살았는데 살이 찌니 강사도 못하겠더라고요. 은둔생활을 했어요. 그래도 살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핸드폰 비용도 필요하고, 밥값도 있어야 하고. 식당 일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어찌어찌 지내는데 엄마가 섬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싫다고 했죠. 또 들어와라. 싫다. 그렇게 실랑이 하다 결국 섬에 들어갔죠."


- 엄마는 왜 해녀를 권했을까.
"그게 엄마의 로망, 바람, 그런 거였대요. 엄마는 추포도에 대한 애착이 참 커요. 계단 하나하나까지 다 닦아서 직접 만들었으니까. 물질 할 수 있는 추포도 어장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었대요. 자식한테 주고 싶었던 거죠. 그거 아세요? 해녀증은 자식한테는 줄 수 없어요. 대신 며느리한테는 줄 수 있죠. (며느리가 받겠다고 하면 바로 해녀를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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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5)씨의 제주 해녀증. ⓒ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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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5)씨의 제주 해녀증. ⓒ 김아영

  
- 자식이라 해녀증을 그냥 받을 수는 없었겠고 어떤 과정을 거쳤나.  
"해녀에게는 '잠수어업증'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취득해야 정식으로 일할 수 있고, 채취한 해산물을 판매할 수 있어요. (어디서 그런 자격을 주나) 어촌계 해녀들에게 모두 승인을 받아야 해요. 그 후에 도청 수산과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죠. 까다로워요. 저는 좀 특별한 케이스였어요. 제 해녀증을 보면 고유번호가 0001이거든요? 아마 가장 어려서 그런 번호가 붙었던 것 같아요. 저는 2년 동안 엄마 따라 실습 기간을 갖고, 그 후에 해녀증을 받았어요."

- 수영 선수 출신이니 물질은 문제없었겠다.
"바다도 익숙하고 물도 좋아하지만, 바다에 들어가서 해산물 채취하는 건 다른 이야기거든요. 물 안에 들어가 본다고 해도 어떤 게 소라고 전복인지 구별도 잘 안 가요. 바다 안에도 길이 있거든요. 해산물이 서식하는 곳이요. 바위의 모양 같은 거. 그런 길을 익히는 게 1~2년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5년 이상은 해야 조금 알겠다 싶죠."

- 해녀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을 꼽는다면?
"글쎄요. 자연 해산물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거? (웃음) 물질하다 배고프면 잡은 소라를 깨 먹을 때도 있어요. 그런 걸 어디서 먹겠어요? (자연 풍경을 봐서 좋은 건?) 그런 거 볼 시간이 어딨어요? 빨리 채취해서 빨리 돈 벌어서 전기세 내고 모아서 집 사야죠. 적금도 들어야 하고요. 많이 못 벌고 '빵구' 나면 불안해요. 자연을 본다기 보다 물속은 깨끗한지 어떤지 그런 걸 보죠. (육지 사람들은 바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던데) 풀리는 건 없어요. 물질 하다 보면 그 순간에 생각이 안 날 뿐이죠. 집중해서. 스트레스 풀리는 게 아니고 잊고 있는 거예요. 일하는 것도 똑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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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영 해녀가 물질로 딴 소라 ⓒ 정소영

 
- 채취한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1kg짜리 전복을 딴 적이 있어요.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서 바로 못 따고 물 밖으로 나왔어요. 숨 좀 고르고.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마음 다잡고 다시 들어가고. 그렇게 두세 번 해서 땄죠. 전복은 한번에 따야 해요. 슬쩍 건드리기만 하면 바위를 꽉 잡게 돼 절대 못 따요. (다시 돌아와서 따도 그 자리에 있나?) 금방 오면 있죠. 다음날 오면 없겠죠. 얘네들도 돌아다니니까요."

- 젊은데 육지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나?
"전혀요. 뭍에서 일주일 이상 있다 보면 가고 싶다, 역시 집이 최고네, 제주도가 최고구나 해요. 육지분들이 제주도 좋다고 하는 거 이해되더라고요. 제주가 좋죠."

해녀에 대한 일반인의 환상이 많지만, 정소영씨에게 물질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다. 누군가는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컴퓨터 앞에서 그달의 지출을 계산하듯, 정소영씨도 한 끼의 밥을 위해, 살림을 위해 묵묵히 물질을 할 뿐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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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7일 제주의 최연소 해녀 정소영(35)씨가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김아영

 
- 언제 일하고 언제 쉬나?
"해녀마다 계절별로 일하는 리듬이 달라요. 추포도가 제주도에 속해 있지만 물 때도 다르고 유속도 달라요. 저는 3월이나 4월부터 일 시작해서 9개월 정도 작업해요. 추포도는 유속이 다른 곳보다 빨라서 겨울 물질은 위험해서 안 해요. 3~4개월은 뭍에 나와서 라이프가드 같은 아르바이트 하거나 쉬어요."

- 하루 일과는?
"여름엔 8시간 정도 물질하죠. 겨울엔 물이 추워서 4시간 정도만 해요.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체온 유지가 안 되거든요. (언제 들어가나?) 달력에 물 때 표가 있어요. 저희 엄마는 날이 좋으면 물 때가 아니어도 '가자' 이러죠. 그럼 '네' 하고 가는 거고요."

- 한 번 숨을 참고 들어가면 얼마나 안에 있나.
"1~2분 내외로 해요. 한두 시간씩 지나가면 점점 길어져요. 2분 정도 들어가게 되죠. 들어가서 오래 안 나온다고 엄마가 뭐라고 하기도 해요. 욕심부리지 말라고. 해녀로서 정말 가지면 안 되는 게 욕심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왜 그런 말 하는지. 보이니까 주워온 건데 왜 뭐라고 하는지. 욕심부리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하는데 전복을 보면 일단 숨이 좀 막혀요. 숨 쉬는 걸 잊어 버려요. 정신이 혼미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 그냥 갈 수도 있는 거죠. 하나만, 하나만 더, 이러다가요. 그래서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 해녀들 수입이 좋다던데.
"다 달라요. 연봉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자기가 하는 거에 따라 버는 거니까요. 작년에 일억을 벌었다고 해서 올해 일억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들쑥날쑥이죠. 하루에 3만 원이나 5만 원만 벌 때도 있어요. 해녀라고 다 잘 벌지는 않아요."

(두 번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제주 해녀 #정소영 #추자도 #제주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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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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