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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알못' 시청자 매료시킨, '스토브리그' 남궁민의 지략

[TV 리뷰]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19.12.18 17:24최종업데이트19.12.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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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 SBS

 
지난 13일 첫 방송한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요 무대인 '드림즈'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프로야구 구단이다. 4년 연속 꼴찌를 차지한 드림즈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총체적 난국이다. '프로야구계의 공무원'으로 불리는 감독은 무능하고 그 아래 코칭 스태프들은 각자 파벌을 나누어 서로를 헐뜯고 씹기 바쁘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는 수석코치와 투수코치 간 싸움이 붙어 팬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점점 취약해져가는 모기업의 열악한 지원과 노후화된 시설과 장비. 이런 분위기에서 선수들의 실책이 쏟아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드림즈의 가장 큰 문제는 꼴찌, 패배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이다. 감독, 코치진, 선수는 물론 구단 프런트 직원들까지 패배를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상대팀과의 엄청난 격차로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에도 프런트 직원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4년 연속 정규리그 꼴찌에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대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드림즈 선수들은 자신들을 응원한 팬들에게 송구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나마 골든글로브를 6번이나 수상한 팀내 간판타자 임동규(조한선 분)만 드림즈에서 유일하게 제 몫을 하는 것 같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 SBS

 
<스토브리그>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간 드림즈를 이끌던 단장이 성적 부진과 구단 운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데서 출발한다. 프런트 직원들이 믿고 의지했던 덕장 스타일의 단장이 구단을 떠난다고 했을 때 직원들은 "단장님이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지 마라", "우리 잘못이 아닌데 왜 그러시나"라는 식으로 퇴사를 말렸다. 하지만 자신이 계속 드림즈에 있는 한 구단의 제대로된 리빌딩이 어렵다고 판단한 단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를 이어 새로이 드림즈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남궁민 분)은 꽤나 괴팍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씨름, 아이스하키, 핸드볼팀의 단장을 맡아 모두 우승으로 이끌었던 특이한 경력을 가진 그는 단장 면접 때도 드림즈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지적하며 구단 사장 고강선(손종학 분)과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 분)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구단주 조카 권경민(오정세 분)의 전폭적인 지지로 드림즈 신임 단장에 취임하고, 얼마 뒤 감독을 유임시키고 팀 프랜차이즈 스타 임동규를 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구단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모두의 반대에도 백승수가 구태여 임동규를 드림즈에서 내보내려고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임동규가 개인 성적에만 관심 있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선수단을 꾸리려고 할 뿐, 팀 플레이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수비 실책 남발에 팀이야 매년 꼴찌를 하든 말든 개인 성적에만 치중해있는 거포 타자.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드림즈는 실제 한국 프로야구 하위팀을 전전하는 몇몇 구단의 현실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프로야구를 떠나 매번 꼴찌, 패배를 한다 할지라도 타성에 젖어 있는 조직과 그룹은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임 단장이 사임을 발표하던 날, 마케팅 팀장 임미선(김수진 분)은 "야구는 돈이 있어야 한다"면서 드림즈의 연이은 부진이 단장과 프런트 직원들의 탓이 아님을 강조한다. 실제 그녀의 말처럼 야구는 물론 모든 프로 스포츠는 일정부분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구단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공격적인 투자로 국내외 최정상급 선수들을 팀으로 불러들인다면 최강 전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드림즈의 모기업 재송그룹은 야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드림즈가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구단 지원을 소홀히 하는 모기업의 홀대가 드림즈 부진의 최대 원인이고 문제점이긴 하지만, 구단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모기업을 원망하고 적은 지원을 탓한들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그래서 백승수는 도무지 구단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기업의 지갑을 열기 위해 대대적인 혁신을 이루고자 한다. 혁신을 이룰 첫 번째 과제인 임동규 트레이드를 이뤄내려면 '임동규만이 드림즈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기는 직원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드림즈의 직원들은 남 탓은 잘하는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드림즈 프런트 직원 중 팀에 대한 애정이 가장 남다르고 언젠가는 드림즈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이세영조차 백승수가 드림즈의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지적하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 SBS

 
물론 드림즈의 문제는 누구 하나의 문제라고 콕 찝기 어려울 정도이긴 하나, 자신의 문제는 하나도 없고 감독 탓, 구단 탓으로 돌리며 현실에 안주하거나 희망 고문에 갇힌 직원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최고의 특효약은 정확하고 치밀한 통계자료 분석과 허를 찌르는 한 수다. 

팀의 최고 프랜차이즈 임동규의 트레이드를 결사 반대하는 직원들을 향해 백승수는 크게 '새가슴', '스탯관리의 결정판', '변화하는 구장', '인성' 등 4가지 이유를 들며 임동규가 팀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제시한다. 논리적인 이유들에 어느 정도 설득 당한직원들이 '그래도 스타가 나가면 팬들의 동요가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하자, 백승수는 국가대표 에이스 투수이지만 몇 년 전 임동규와의 갈등으로 팀을 나가야 했던 드림즈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 강두기(하도권 분)의 복귀 카드를 꺼내며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뭘 해도 안되는 팀의 현실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썩은 살을 확실하게 도려내려는 백승수의 계획은 일단 임동규를 팀에서 내보내고 강두기를 다시 끌어들이는 것으로 강력한 첫 발을 디뎠다. 앞으로도 백승수는 드림즈를 재건하는 대수술을 하나 하나씩 진행하려 할 것이고, 그 때마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고 시행착오도 몇 번 겪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차근차근 성장해 나갈 드림즈의 미래가 사뭇 기대된다.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 방영할 때만해도 카리스마 있는 감독과 뛰어난 가능성을 지닌 선수의 투지와 집념만 있으면야구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21세기의 야구는 돈도 있어야 하고 머리와 전략도 필수다. 야구를 정말 모르는 '야알못'이지만 꼴찌를 전전하는 조직의 문제점을 지혜롭게 타파해나가는 백승수의 지략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키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다. 
스토브리그 야구 드라마 남궁민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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