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서는 용기를 잇는 수다, 차별잇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말하기 운동...'안전하고 평등하게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기'

등록 2019.12.18 14:32수정 2019.12.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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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기승을 부리던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확인되던 해였다. 가짜 정보에 기대어 상대를 납작하게 '알아 가는' 상황은 혐오와 차별을 해소할 수 없었다. 더 많은 평등의 장소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일상의 차별을 이야기하고 대항적 말하기를 할 장소가 절실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에 대하여 기획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총 3가지 글을 통하여 차별잇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소개와 그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위축되었던 몸과 마음에 용기를 줄 수 있는 네트워크

누구나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지만 "어떤 일(차별경험)인데?"라는 물음에 답변하기 쉽지 않다.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일까 싶기도 하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어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은 '폭력'으로 와닿지 않기에 그 상황을 다시 짚어보며 "별일 아닐 수도 있지", "나 때문일까"처럼 자신을 탓하면서 몸과 마음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차별경험을 이야기 할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나의 경험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내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것은 위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게 한다.

차별잇수다를 진행하는 이끔이*가 차별잇수다의 기획 배경과 취지를 설명하고 방법을 안내해도 차별 경험이 뚝딱 나오기는 쉽지 않다. 참가자들은 실제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떤 경험을 나눠야 할지 감 잡기 어려워했다. 어떤 참여자는 시작 전에 웃으면서 자신이 겪은 차별 경험을 말하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적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깊이 생각하며 워크지를 바라보면서 "꼭 글로 써야 하나요? 그냥 말하면 안 되나요? 빨리 말하고 싶다"며 말하고 싶었던 답답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세월이 한참 지난 유년 시절, 학창 시절 부터 최근 겪은 사례까지 다양한 시기, 자신이 겪은 생애전반의 차별 경험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별 경험을 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서술방식의 문제일까, 아직도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낯선 것일까? 워크지를 채우지 못하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이럴 땐 무리해서 지금 말하라고 하기보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나는 것을 말해도 좋다고 제안했다. 모두가 다 차별경험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대응하기 위한 방식을 같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차별잇수다 워크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 경험을 말하기 어려운 조건들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불평등한 현실의 구조를 바꾸자는 요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차별잇수다 현장에서도 차별 경험을 말하고, 수다 떨며 이야기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것 말한다고 누가 들어주길 하는지?' '변화가 있는 것인지?' '오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나 가능할 것 같네요.' 등의 질문과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또 말하기 공간이 소수자들에게 권리와 제도로서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공분하기도 했다. 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들려질 공간이 없는 것, 참여자들은 함께 말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차별잇수다에서 만난 동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구나! 막혔던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사실 이제 프로그램 시간이 부족할 만큼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겪은 사례가 아니더라도 참가자가 주변의 사람들이 경험한 차별들, 부당한 사례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꼭 자신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본인 주변의 사례를 부당하거나 차별로 인식하며 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별적인 구조 등에 대한 문제제기 등 다양한 사례를 나누는 것을 제안했다.

어떤 참여자는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나 주변에서 경험하는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경험 등을 통해 공감하거나 연대의 말을 전하지만, 그것만으로 변화를 만들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말하기 과정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별 개념에 대한 모호함과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들을 난감해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차별이란 무엇일까요, 차별 기준은 뭘까요. 크게 기준은 없는 거 같은데 막상 알고 나니 제 자신을 검열하게 되고 중압감이 느껴지네요.' 라고 설명하며, 차별을 말한다는 것이 타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여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을 표현한 참여자도 있었다. 서로의 삶을 만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은 역시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차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의 확대가 중요한 만큼 자유롭게 자신을 정체성을 드러내어 말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세심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차별상황의 감정 살펴보기, 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차별경험에 대해 글로 쓰고 공유한 뒤에는, 만약 차별 당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하고 싶은지 고민하여 써본다. 이 질문은 자연스레 당시 차별 경험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지' 자책하기도 하고 '이런 방법이 있었네!' 뿌듯해 하기도 했다.

경험한 사건과 스스로의 거리를 다양하게 조정해 보며 대안/대항적 행동을 궁리한다. 참여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함 분함과 속상한 감정을 표현했고, 스스로 너무 기죽어 있거나 주눅 들어 있던 상황에 대해 아쉬워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거나, 맞대응 하겠다는 참가자가 많았다. 물론 그때와 똑같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한 참가자도 있었다.

가족 또는 직장에서 발생한 일이거나 앞으로 지속적으로 봐야 하는 사람으로부터 경험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지금의 자신이 그 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감정대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민을 더 해보거나 무엇이 좋을지 향후 대응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당시 겪은 상황에 대한 다양한 판단이 작용했을 터다. 차별 경험에 대해서 맞서기 위해선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고려하게 되고, 혹시라도 대응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현실적 문제까지 생각하게 된다.

한 참가자는 차별 경험 후에 자신의 차별 경험을 말하고 대응했더라도 충족되지 않고 이와 관련한 불편한 감정들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했다. '차별 경험에 대해 향후에 대응하기는 했지만,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하는 상황이 너무 좋기도 하나, 좋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직 변화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낮은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개인이 온전히 감내해야하는 차별 경험은 속상함과 분함, 답답함, 화, 분노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참여자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차별 경험이 우리가 변화해야할 목표이고 힘이란 것도 동시에 던져 준다. 이야기들이 이어지기 위해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말하고 맞서는 행동들이 커지고 다양해져야 할 것이다. 이 활동들 또한 커뮤니티의 힘을 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차별에 대항하는 공동의 경험을 기르며

마지막 순서는 작성한 워크지를 돌려 보며 꿀팁과 지지, 사회적 대안을 작성하는 시간이다. '차별'을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과정을 2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함께 고민하는 것이 잇수다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직 안 끝났나?'하면서도 작성한 워크지를 흥미있게 바라 봤다. 활자화된 경험을 보면서 말할 때와 다른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웃고 떠들고 분노하며 공감했던 차별경험을 통해 왜 구조가 문제고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작성하는 진지한 시간이 흐른다.

워크지가 한 바퀴 돌아 내 손안으로 돌아올 땐, 내 입을 떠난 차별경험이 모두의 손을 거쳐 공동의 문제,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로서 위치가 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고 사회적 토론과 합의의 장 아니겠는가. 차별경험을 작성한 참여자는 동료들의 대안/대항적 행동 제안을 보면서 더 이상 차별의 원인과 해결의 몫이 자신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 그러나 더 용기가 생긴 느낌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차별경험에 대한 대안/대항적 행동을 적어 내려가며 공동체의 동료로서, 차별경험을 들은 증인으로서 내 역할과 몫을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사이다, 고구마, 연대하자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부터 우리 단체와 싸워보자는 제안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워크지에 빼곡하다.

 

차별잇수다 활동 스티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잇수다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다시 돌아보며, 대항/대안 행동을 고민해 보니 혼자만이 아니라 주위에 지지할 수 있는 동료 등의 자원이 있는지, 관련한 지침이나 가이드, 도움 받을 수 있는 단체나 기관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후에 대응하기에 도움이 된다는 참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대응을 제안하는 것엔 어려워하는 참여자들이 많았다.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더 궁감하다기 사회적 대책으로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과 활용에 대해 차별잇수다에서 더 구체적으로 전해져야겠다는 과제가 남는다.

평등을 향한 용기와 도전은 계속 된다

차별잇수다는 누가 들어도 차별이라고 이해할 만한 사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나 알게 모르게 경험한 모욕감, 누구에게 시원하게 말하기 어려웠지만 말하고 싶은 속 답답한 차별경험을 꺼내놓고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목적이다.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는 공간, 차별경험에 귀기울여주는 이들, 다른 이의 경험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과정은 평등의 감각이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차별에 대해 수다(이야기)떨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이으며(잇다) 각각의 경험은 다르지만 차별경험의 연결성(잇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차별잇수다로 차별과 평등에 대해 토론해 나가는 소란을 만들고 싶었다. 혐오와 차별이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만나고 말하고, 맞서왔다.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말하고 만날 건지 준비하고 계속 이야기해 왔다. 그룹별로, 모임별로 각자 진행한 공간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정서는 이렇다.

서로를 공감하는 눈빛, 말할 준비를 기다려주는 느린 시간, 손을 꼭 잡고 지지해주는 마음, 연대하는 분노, 토론 과정 속의 긴장감,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용기. 이런 정서적 역동 속에서 말하고 공감하고 행동한 만큼 평등을 꿈꾸는 이들의 힘은 커져왔다. 마음 한 구석으로 미뤄놓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듣는 것은 서로에게 커다란 용기가 되어 주었다. 그 용기는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이들이 말하도록, 그리고 듣도록 연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게 했다. 2019 차별잇수다는 마무리되었지만 평등을 향한 우리의 용기와 도전은 마무리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란 것을 참여자 모두는 알 고 있을 것이다.

*이끔이 : 흔히 퍼실리터이터라고 부르는 진행촉진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소식지 월간평등업에도 게재됩니다.
#차별금지법 #말하기운동 #차별잇수다 #차별 #평등
댓글1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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