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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에서 정유미로... 광화문 뭉클하게 만든 '눈물들'

[현장] 2019 여성영화인상... '올해 여성영화인상'은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수상

19.12.17 11:17최종업데이트19.12.1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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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일찍이 컴컴해진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 지하에는 여성영화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여성영화인축제'의 시상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여성이라는 자각과, 20주년이라는 의미, 영화인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지하라는 공간이 만나 무언가 비밀결사조직 같은 찡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상식 시작 30분 전, 취재를 위해 지하 영화관 복도에 들어섰을 때 한쪽에선 임순례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선 여러 여성 영화인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야말로 북적대는 축제의 광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상식이 시작되자, 시상자 중 누군가 말한 것처럼 독립운동현장에 있는 듯 왠지 모를 결연한 공기가 맴돌았다. 20년 동안 죽지 않고 끝내 살아남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2019년 시상식 현장을 전한다.  

특별상 문소리-공로상 윤정희 
 

2019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사회를 맡은 배우 문소리 ⓒ (사)여성영화인모임


이날 시상식은 하얀 수트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배우 문소리의 사회로 시작됐다. 문소리는 재치와 진정성 있는 입담으로 객석의 영화인들과 기자들을 때론 웃게, 때론 뭉클하게 만들며 이날 시상식을 빛냈다. 첫 시상에 앞서, 이 행사를 주최하는 (사)여성영화인모임의 임순례-심재명 공동 센터장의 인사말로 먼저 워밍업을 했고 이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자문변호인단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이 있었다.

이어 등장한 (사)여성영화인모임을 20년간 이끌어온 채윤희 대표는 "올해 여성영화제가 20주년이다. 앞으로 20년을 또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며 "세대교체를 해야 하니까 후배 여러분들께서 같이 힘내면 좋겠다. 여성영화인들이 힘을 받고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첫 시상은 특별상. 이 상은 2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한 상이며, 10년 후에 다시 부활할 예정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상이다. 수상자는 문소리였다. 시상자로 나온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목소리를 내야할 때 용기 있게 할 말을 해준 문소리 배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뭔가 채찍 전의 당근 같은 느낌이 든다. 여성영화인 모임의 일꾼이 필요하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감사드리고, 이 상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문소리)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영상이 흘렀다. 이 영상에는 많은 여성영화인들의 눈물이 담겨 있었고, 이를 보는 2019년의 참석자들은 숙연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많은 여성 배우들과 감독들, 제작자 및 관계자들이 "어느 영화제보다 특별하다"고 공통적으로 말한 것과 똑같이, 올해 시상식에 참여한 영화인들도 뭔가 다른 기분을 털어놓았다. 

이어진 공로상 시상은 준비된 영상으로 특히나 뭉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수상자인 윤정희 배우의 데뷔 때 모습부터 가장 근래의 출연 영화 <시>에서의 모습까지, 이어진 장면들이 그곳의 모든 이들을 감동케 했다. 프랑스 어딘가에서 투병생활 중인 윤정희를 대신해 남편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문자메시지로 관계자에게 수상소감을 전달했다. 

"제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에 타고 있어, 아쉽게 참석하지 못했다. 이 공로상은 한국의 여성 영화인들이 주는 상이라 더욱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 감사드린다. 저희 부부는 항상 여성영화인과 한국영화인을 응원한다." (백건우)

신인연기상 임윤아-연기상 정유미-감독상 김보라
 

2019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엑시트> 배우 임윤아 ⓒ (사)여성영화인모임


이날 시상식은 다양한 분야의 일꾼들을 챙겼다. 홍보마케팅상은 홍보사 딜라이트가 받았고, 기술상은 김희진 미술감독, 다큐멘터리상은 <이타미 준의 바다>의 정다운 감독, 각본상은 <생일>의 이종언 감독이 받았다. 

신인연기상은 <엑시트>의 주연배우 임윤아에게 돌아갔다. 이날 시상식에 참여한 임윤아는 감격한 모습이었다. 

"저와 여성영화제의 인연은 3년 전쯤 시작됐다. 그때 사회자로 무대에 섰는데 올해 이렇게 20주년 시상식의 수상자로 다시 서게 돼서 너무나도 뜻 깊다. 정말 감사하다. 항상 시작할 때마다 시작이라는 게 어렵고 부담될 때도 많은데, 그때마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중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도록 하겠다. 더욱 멋지게 성장해보겠다." (임윤아) 

이어진 연기상은 < 82년생 김지영 >의 주연배우 정유미가 수상자로 호명됐다. 일정 때문에 해외에 있는 정유미는 영상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독상은 올 한 해 수많은 영화제를 모두 휩쓴 <벌새> 김보라 감독이 차지했다. 김 감독은 "저 혼자 개봉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여성 감독님들과 같이 개봉할 수 있어서 풍요로운 한 해였다"며 "이렇게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선배 영화인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 같다"며 깊은 고마움을 전했다.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2019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한 외유내강 대표 강혜정 ⓒ 여성영화인모임

 
제작자상은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 E&A의 곽신애 대표에게 수여됐다. 곽 대표는 "상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며 "다른 상과 다른 느낌이었다"며 여성영화제의 의미를 되새김질 했다.

드디어 맨 마지막 시상, 바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의 차례가 왔다. 수상자는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그는 <사바하>와 <엑시트>를 제작해 올해 선보였다. 수상을 위해 자리에서 무대로 나오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강 대표는 감격에 겨운 듯 힘겹게 수상소감을 전했다. 
 
"제가 상 받은 것보다, 아까 윤아씨가 신인여우상을 받을 때 너무 기뻤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한국의 여인상을 재정립해준 임윤아 배우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님을 비롯한 식구들, 20년 동안 이 모임을 이끌어줘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나의 남편, 내 파트너이자 둘도 없는 스승인 류승완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모로코에서 촬영 중인데 '우리 마누라 상 받는다'고 자랑스러워 해줘서 감사하다. 아직 우리 회사가 여성감독을 데뷔시키지 못했다. 분발하겠다.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을 많이 실행하는 회사가 되겠다."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강혜정 대표의 눈물의 수상소감에 사회를 보던 문소리도 울컥하여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여성영화인 시상식 현장은 20년을 잘 버텨온 영화인들 서로가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고 앞으로의 발걸음을 응원해주는, 진한 감동의 장이었다.
여성영화인축제 여성영화제 여성영화인시상식 윤아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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