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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만난 택시기사의 행동... 그날의 기적이 떠올랐다

[리뷰]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 상영작, 이란 영화 <하루>

19.12.17 14:48최종업데이트19.12.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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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어느 토요일이었다. 수업을 듣던 중에 갑자기 몸이 이상하더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떨린 건 처음이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얼른 가방을 챙겨서 나와 보니 엎친 데 덮친다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택시를 호출하려는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을 정도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벌벌 떨며 택시를 기다렸다. 폭우 때문인지 10분이 지나도 빈 택시는커녕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열은 점점 심해져서 쓰러지기 일보직전 상태가 되었다.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왔다. 이제 살았다, 하는 안도감에 택시에 몸을 싣는 순간, 온몸에 한기가 훅 느껴지면서 두들겨맞은 것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원인은 에어컨. 8월 무더위였으니 당연히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님. 제가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에어컨을 꺼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기사님은 백미러로 나를 흘낏 보더니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던 모양이다.

"네. 저도 에어컨 바람 별로 안 좋아해요" 하고는 에어컨을 꺼 주셨다.

어쩌면 타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가 기사님의 차분한 음성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근처 큰 병원 응급실로 가달라고 하고는 당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그때 이별을 생각할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누구의 도움이든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락두절. 그렇다고 팔순 엄마에게 폭우를 뚫고 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를 부르기엔 토요일 오후라는 게 어쩐지 걸렸다.

두렵고 막막하고 외로움까지 겹친 궁상의 3중주가 몰려와서 서러울 즈음, 갑자기 몸에 훈훈한 기운이 퍼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히터였다. 기사님께서 벌벌 떠는 나를 보고는 8월 습하고 더운 한여름에 히터를 틀어준 거였다. 심하게 떨리던 몸은 그제야 조금 잦아들었다.

응급실까지 오는 동안 기사님은 내게 아무런 것도 묻지 않았고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다. 그저 히터를 틀고 응급실 문 바로 앞에 나를 내려주었을 뿐.

치료를 받고 퇴원하면서 택시를 타려다 문득 말없이 히터를 틀어준 택시 아저씨의 말없는 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인사만 하고 내렸는데 그제야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묻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친절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절박하고 절실한 상황에서는 사소한 친절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란 택시기사에게 닥친 일
 

영화 <하루> 스틸컷 ⓒ 더 픽쳐스


이란 영화 <하루>는 그날의 사소한 기적을 떠올리게 한 영화다. 지난 12월 5일에서 7일까지 '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개최한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무기력해 보이는 늙은 택시 운전사 유네스에게 불안해 보이는 한 젊은 임산부 세디예가 필사적으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그저 병원에만 내려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누구에겐가 맞은 것 같은 세리예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유네스는 그녀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없는 눈치고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병원 직원과는 연락이 두절된 상황.

진짜 대책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유네스는 계속 선택을 요구받는다. 그는 몇 번이나 여인을 병원에 두고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다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이가 없었다. 그때마다 유네스는 절박한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선택한다. 그녀 옆에 남아 있기로.

세리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에 놓여서 혼자 응급실에 갔던 경험이 떠오르며 유네스의 선택이 세리예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었다.

물론 그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오후 교대반 기사 대신 일을 뛰어야 했고, 여인의 병원비를 지불해야 했다. 무엇보다 생면부지의 나이어린 미혼 임산부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는 것은, 모든 오해와 편견을 함께 뒤집어쓰기로 했다는 뜻.

병원 직원들과 의료진들은 편견 가득한 혐오의 눈빛으로 유네스를 바라보고 정죄한다. 세리예가 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상엔 빠지지 않아요. 부질없는 짓이죠. 당신의 의도가 뭔지 정말 궁금하군요"라며 의심하고 경계하는 수간호사 마드 부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유네스를 젊은 여인을 임신시키고 폭행한 파렴치한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의 태도는 초지일관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적인 불평등
 

영화 <하루> 스틸컷 ⓒ 더 픽쳐스


이란이라는 사회에서 남자 보호자 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면서도 어떤 의료 혜택이나 사회적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폭력적인 불평등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감하게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유네스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여성, 그래서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혐오를 받아내며 그 여인의 곁을 지키기로 선택한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폭력적 불평등에 대해 '함께 있어줌'이란 형태로 항거한 것이고, 비일비재한 딱한 사람들을 도와줘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감하고 무심해지기로 선택한 이들에 대한 투지 가득한 투쟁이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여리고 약한 영혼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남편 없이 일상적인 폭력에 멍들어서 제대로 된 축하한 번 받았을 리 만무한 세리예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자신과 태아 모두가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극한 긴장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세리예가 목말라 하자 물 한 잔을 떠다 준다. 또 아이가 자기처럼 엄마 없이 자라게 될까봐 두려워하자 다 조치를 취해놨으니 안심하라고 다독인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계속 의심받는다. 그를 의심하던 수간호사는 "그들을 어디에 내려 놓을 건가요?"라고 질문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이미 그녀와 아이가 퇴원한 후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몰던 회사 택시에 그들을 태우기 위해 동료를 대신해 밤 근무까지 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눈여겨 본 것은 편견 어린 시선을 대하는 주인공 유네스의 태도다. 그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에 불쑥 끼어든 이상한 여인 세디예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아무것도 묻지 않지만, 누구보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고 그 답을 누군가에게 제시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그 답이 되어준다.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는 일
 

영화 <하루> 스틸컷 ⓒ 더 픽쳐스


영화는 유네스를 통해 계속 관객에게, 아니 나에게 질문한다. 편견이 가득한 사회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지, 만약 내가 유네스와 같은 처지에 놓였더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우리는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 묻고 따지는 동안 사소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응급실 사건을 경험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건, 나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유네스가 될 수도 있고, 세리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은데, 직접 그 답이 되어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기 위해 해야 할 수고는 성가시고 불편한 일이어서 그렇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이면의 서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불쌍하게 여기고 동정하는 감상에 빠지기는 쉽다. 하지만 나의 일상을 깨트리고 손해를 감수하는 대가를 치르며 도와주는 건 어렵다.

애써 도와줘봤자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체념하고, 그래서 하던 대로 하기로 타협하는 건 편하다. 그러나 나도 그 불행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영화를 만든 레자 미르카리미 감독은 이란의 도덕적 위기가 공포스러워서 <하루>를 통해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 안에도 비슷한 위기가 작동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안전하고 안락한 울타리가 깨지는 게 싫어서 얼마나 많은 차별과 편견을 정당화하고 있는지 매일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나온 페르시아의 시 한 구절이 정지화면처럼 눈에 새겨졌다.
 
"인류는 하나의 몸과 같은 것. 한 사람의 고통으로 다른 사람들은 평화롭지 않을 것이니..."
이란 영화 하루 기독교 영화제 미라카르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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