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영화의 공정환경조성? "다른 차원의 접근 고민중이다"

[독립영화정책 이대로 괜찮나]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19.12.30 08:50최종업데이트19.12.30 08:50
원고료로 응원
지난해 실질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는 194편, 이중 독립예술영화는 114편이었습니다(2018년 영진위 통계 기준). 1년 극장 관객 수 2억 명을 돌파했음에도 한국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은 언제부턴가 100만 명 언저리입니다. 잘 만든 독립영화라도 1만 관객 모으기도 어렵다는 호소가 나옵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 산업시스템에서 한국 독립예술영화 정책이 소외돼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국내 독립영화 각계의 목소리를 싣고 함께 실질적 대안 마련을 고민하려 합니다.[편집자말]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 유성호

 
☞ 이전기사
 : "CGV로 달려가고..."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쓴소리 http://omn.kr/1le81 

보수 정권 아래 사실상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이라는 오명을 썼던 영화진흥위원회는 쇄신 2년 차를 지나고 있다. 지난해 2월 오석근 신임 영진위원장은 지난 10년과 다른 길을 간다는 각오로 대국민 사과부터 했다. 전임 위원장과 임직원의 잘못이었지만 기관 차원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변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올해 영진위의 역점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영화산업 공정환경' 조성이었다. 영화산업의 양극화 현상, 창작자와 유통사 사이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성평등 문화 확산에도 기여한다는 취지였다. 그걸 반영하듯 쇄신 원년인 지난해 공정환경조성센터는 기존 구조에서 독립해 본부급 독립기구로 개편됐다. 예산 역시 기존보다 10억 9천만 원이나 증액해 약 16억 6천만 원의 재원을 확보하게 됐다. 앞서 언급한 여러 과제는 모두 '공정한 환경'에서 영화를 진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질문이 남는다. 한국독립영화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것일까.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김혜준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을 만나 자세한 얘길 들을 수 있었다. 그는 1999년 영화진흥공사 시절, 배우 문성근과 함께 지금의 영진위 구조로 가기 위한 실무 작업을 했던 인물. 영진위 사무국장을 거쳐 한동안 재야에 있다가 지난해 11월 센터장에 임명되며 영진위에 합류하게 됐다.  

"이제 틀을 잡아서 시작하는 중"이라며 그는 운을 뗐다. 그간 블랙리스트 건 등으로 침체한 영진위 내부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계에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고,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 역시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있었다.

"영화계에선 답답할 수 있다. 독과점 문제에 집중하라는 요구도 있고. 근데 영진위 내부는 또 그렇지만은 않다. 노동 환경 개선, 성평등 이슈도 있어서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다. 동시에 틀을 잡고 있는데 특히 독과점에 대해선 대략 틀은 잡혔다. 구조규제와 행위규제로 나눠서 하자는 거다. 전자는 영화계 내부의 합의가 필요하고, 후자는 제도로 해결하는 식이다. 스크린 상한제도 우상호 의원 발의한 게 탄력을 못 받고 있어서 부산영화제 동안 영화인들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독립영화 정책은 공정 센터에서 확실한 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우선 독립영화배급지원 센터 예산이 곧 통과될 것 같다.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독립영화 정책에 접근하지 않을까 한다."

공정환경조성센터 독립 이후 성과와 이후 과제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 김 센터장은 위와 같이 요약 설명했다. 여러 현안 중 영화산업의 양극화에 한정해 가장 큰 원인을 물었다. 그 역시 "(대기업의 상영, 배급, 투자 등) 겸영에 의한 독과점"이라 답했다. 앞서 그가 말했듯 이는 결국 영화 산업 구조에 대한 논의, 그리고 2016년 안철수, 도종환 의원, 2017년 조승래 의원, 2018년 우상호 의원 등이 발의만 했지 한 번도 상정 및 통과되지 못한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 개정안'(아래 영비법)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김혜준 센터장은 '당위성'과 '한계'를 언급했다. 

"과거 프리머스라는 극장 체인을 CJ가 인수할 때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금처럼 대기업 극장이 전체 시장의 97%를 차지하는 걸 막자는 취지였지. 결국 의지 문제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 민주화와 공정하고 상생하는 경쟁을 말했는데 이게 실현되려면 독과점을 규제할 수밖에 없다. 근데 현재로선 (그나마 온건하다고 평가받는) 우상호 의원 법안이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우선 스크린 상한제라도 해보자는 말이 있는데 이것조차 될 수 있을까 하는 시각이 있다. 

사실 우상호 법안이 너무 단순하게 짜여 있다. 스크린 상한제라는 게 프라임 타임(오후 1시~오후 11시)에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50%를 넘지 못하게 한다는 건데 나머지 비 프라임 타임 때 2위 영화가 독식할 수도 있다. 비 프라임 타임에 작은 영화들이 걸리게끔 해야 한다. 우상호 의원 법안으로 1등을 견제할 수는 있는데 다양성 확보 면에선 부족하다. (법안) 자체가 수정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는 게 김혜준 센터장의 영비법에 대한 생각이었다. 즉, 법안 발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이 영화 산업과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다시 제안하거나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김 센터장 말대로 지금의 스크린 상한제로는 1위만 견제할 뿐, 다른 2위, 3위 상업영화들만의 또 다른 독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독립예술영화엔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일각에선 차라리 독립예술영화가 최소한의 스크린을 갖고 시작하도록 하는 '스크린 하한제'가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건 정책적 설계가 쉽지 않다"며 김 센터장이 말을 이었다. 

"메이저 영화관 입장에선 손해가 날 게 확실한데 어쩌라는 거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들 영화관을 활용하는 거니까. 그래서 대안 극장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고, 비상설 상영관, 모바일 시네마, 움직이는 극장 등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데 영화제들이 하고 있는 걸 독립영화에 활용해 보는 방안도 있다. 독립영화를 활성화시킨다는 건 커뮤니티 활성화와 연결돼 있다. 단순히 영화표를 사서 보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영화의 의미를 함께 알고 토론하는 다채로움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 같은 OTT 사업자 중심으로 매체 환경이 변하고 있다. 영화 수입배급업 종사자 분들을 만나면 극장만이 답이 아니라고들 하더라. 물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더 만들어 의무화하는 게 가장 센 방법이겠지만 (실행하기) 손쉽지 않은 대책이다. 배급업자들도 1개의 상영관에서 (독립예술영화가) 온전하게 상영되는 게 어렵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 차라리 지속적으로 그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음을 보이는 게 해법 아닐까 싶다. 커뮤니티 시네마를 확대해 오래 상영되도록 하는 거지. 여기엔 물론 저작권법 이슈가 생긴다. 매체 환경 변화 적응 문제와 함께 우리 센터의 연구 과제기도 하다." 


조금 더 깊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김혜준 센터장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기존 극장 상영보단 다른 대안 마련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예술영화전용관과 독립영화전용관에만 해당하는 '한국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의무 상영일수' 규정을 모든 상영관으로 확대하거나 실질적으로 고르게 독립영화를 상영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인들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독립, 예술영화 전용관은 의무 상영일수만 채우면 되기에 1년 중 특정 기간에 몰아서 상영하는 식으로 운영해 독립영화 배급업자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건 아니다"라며 김 센터장은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정책에 역량을 쏟아부을 수는 없으니 대안도 고민하자는 것"이라며 설명했다. 

"큰 틀에서 보면 도종환, 안철수 개정안이 좋지만 논의 자체가 안 됐잖나. 거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제도 정비에서는) 결국 마지노선이 있을 수 있다. 손봐야 할 땐 봐야겠지만 독립 및 예술영화 쿼터제를 시행하자는 것보다 현재로선 전용관을 만드는 게 쉽다. 시기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는 게 가장 좋지만 정책연구자 입장에선 같은 효과를 내는 여러 방법이 언제 시행돼야 좋은지도 봐야 한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늘릴 거나 마이너리티 쿼터제(독립예술영화 쿼터제)를 할 거냐 결정해야 한다면 전자가 후자보다 더 동의가 많은 현실이다."

무조건 규제가 아니라 대기업 중심으로 짜인 지금 시스템에서 독립예술영화 상영 및 배급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건 어떨까. 수익 배분율을 조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현재 한국영화의 경우 제작 및 배급사와 극장 간 수익 배분이 5.5 대 4.5, 혹은 5 대 5인 고정 부율이다. 미국 극장의 경우엔 개봉 첫 주엔 배급사가 월등히(약 80%) 수익을 챙기다가 오래 걸릴수록 극장 측이 수익을 더 가져가는 슬라이딩(변동) 부율을 적용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제작과 배급, 극장 사업을 한 기업에서 운영, 즉 사실상 수직계열화한 기업 입장에선 매력적이진 않겠지만 그 기본 정신만큼은 참고할 거리가 된다. "난망하지만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한 시스템"이라 그가 답했다.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정책 방향과 독립예술영화 정책을 얘기했지만, 영진위 그리고 공정환경센터의 권한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올해만 해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변칙 개봉,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를 CGV와 메가박스가 불공정하게 상영한 행위에 대해 영진위는 유감을 표명했다. 2013년 4월 8일에 합의한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이 근거지만 사실상 규제가 아닌 권고 정도만 할 수 있는 현실이다. 국내 개봉 영화 중 역대 세 번째 상영점유율을 차지한 <겨울왕국2> 역시 불공정 상영이라며 최근 결산 자료로 비판했지만 대기업 극장의 자발적 변화 없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상생협약 틀이 되게 약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비공식이 아닌 공식적으로 드러내서 논의할 필요는 있다. 또한 상생협약 말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규제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틀을 바꿔가야 한다고 본다. 영진위가 모든 의제를 설정하고 끌고 갈 입장은 아니다. 중요한 플레이어지만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수시로 하고 그걸 영진위가 받아들여 문체부를 통해 공정위에 고발한다거나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좀 더 강화된 협약을 만들 수도 있겠는데 여러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결국엔 누가 봐도 타당한 안은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수가 동의하는 안을 찾아야 하겠지. 조사하든 연구하든 그게 우리 센터의 역할이다. 토론도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말이다. 우리가 과연 정책적인 실험을 했었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특정 영화관을 지정해서 운영해 볼 수도 있고, 한국의 정책 현실에서 핀란드가 시도하고 있는 기본 소득 실험 같은 게 가능하냐는 비판이 있겠지만 전 그런 정책 실험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 ⓒ 유성호

 
느려 보이지만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구체적으로 성과를 낼 올해 사업을 묻는 말에 VPF(Virtual Print Fee) 문제 공론화를 꼽았다. VPF는 필름 상영에서 디지털 상영 방식으로 극장 시스템이 바뀌면서 들여온 설비 시설을 말하는데 지난 2008년부터 CGV와 롯데시네마가 공동출자한 DCK라는 회사가 각 배급사로부터 관행적으로 비용을 받아오고 있다. 영진위에 따르면 이미 2014년 모든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가 보급됐고, 2016년 초기 사업비가 모두 충당되면서 이 모델이 사실상 종료됐음에도 지금까지 일부 극장이 배급사들에게 비용을 받아가고 있다. VPF 부과의 부당성을 공정환경조성센터에서 우선 드러내겠다는 취지인 것.

"VPF 문제를 드러낸다는 건 독과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배급사들 입장에선 자포자기 상태였다. 이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정치권에 호소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단순히 그 비용을 줄여주는 정도가 아니다. 공공연한 비밀인데 할리우드 직배사는 VPF를 내지 않고 있다. 디즈니도, 워너브러더스도 말이다. 모든 배급사가 디지털 영사기를 공동 구입한 형식인데 워너와 디즈니는 안 내고, 중소배급사만 내고 있지. 불합리한 건데 롯데컬쳐웍스는 왜 롯데시네마에, CJ는 왜 CGV에 VPF를 없애자고 얘기하지 않을까. 조만간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다." 

"영진위는 영화계의 거버넌스 시스템이다" 오래 전부터 김혜준 센터장이 영진위를 정의해온 말이다. "영진위가 갖는 한계는 영화계의 한계를 반영하고 투영하는 것"이라며 그는 "결국 독립영화계 내에서도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호신뢰' 안에서 영진위에 적극 제안해 달라는 말로 김 센터장은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불공정 얘기하면 항상 대안으로 나오는 프랑스 사례를 많이 참고하며 한국적으로 바꿔오긴 했지만 독립영화인들이 적극적이었기에 파트너십이 생겼다. 지금 독립영화계 내부도 많이 다양해졌는데 그걸 모아서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위원회 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본다. 함께 모여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해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영진위 CGV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