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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영의 선구자? 김우중이 남긴 '검은 유산'

세계경영 신화가 그룹 몰락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83년 굴곡의 삶

등록 2019.12.10 16:59수정 2019.12.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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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 들어선 상경관은 이내 곧 논란을 불렀다. 이름이 문제였다. 연세대는 건물을 짓는 데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감사 표시로 '대우관(김우중기념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는 김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자신의 책 제목이자 어록을 유행시키며 '세계경영'에 매진하던 때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반발했다. 정경유착과 불법 경영을 일삼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재벌의 이름을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에 붙여서는 안된다며 '이한열관'으로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학교 측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수사, 김 전 회장의 해외도피가 이어지면서 반발은 더 커졌다. 학생들은 '김우중관 명칭 변경을 위한 마라톤 대회'까지 열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공이 더 많다는 기성세대와 불법 경영으로 국민경제에 큰 해악을 끼쳤다는 학생들의 인식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 컸다.

90년대 굳건했던 '김우중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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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6월 14일 새벽 5년 8개월동안의 해외 도피를 마감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대우의 '세계경영' 신화가 굳건하던 시절부터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 전 회장의 공과에 대한 논란은 아직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경영방식에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우리나라 재벌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농축돼 있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정경 유착을 통한 방만한 차입경영, 대마불사를 앞세운 문어발실 사업 확장, 이로 인한 천문학적 부채로 사상누각을 쌓았다는 지적이다. 결국 41조원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그룹이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다.

대우가 남긴 부채 60여조원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불렀고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국민 혈세인 30조원의 공적자금까지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우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당했고, 대우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은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1980년대만 해도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통했다. 1967년 서울 충무로에 있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5명의 직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우면서 '대우신화'는 시작됐다. 셔츠와 내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하던 대우실업은 1970년대 조선·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부실기업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세계경영'을 발판으로 창업 30여년 만에 재계 2위 그룹으로 도약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자산 83조원, 매출 62조원에 국내 계열사 41개와 국외법인 396개를 거느렸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작동하던 당시 경제상황에서 대우그룹의 몰락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세계경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무리한 차입을 통한 외형 확장은 몰락을 자초했다. 기술과 품질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한 확장에만 몰두한다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당시 우리나라 재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던 견제와 균형이 없는 '황제식 경영'과 '빚더미 경영'은 IMF 외환위기 속에 그 민낯을 드러냈다.

재계 2위 그룹으로 도약시킨 세계경영, 몰락의 씨앗
이어진 해외도피, 분노한 노동자들의 '체포결사대'


게다가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가 닥치자 다른 재벌들이 과잉중복투자 해소를 위한 사업구조조정에 돌입한 것과는 반대로 수출을 통한 외환위기 극복을 외치며 무리한 외형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당시 김대중 정부 경제 관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는 정치권 압력에 의한 대우그룹 기획 해체라는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대우 해체 당시인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던 고 강봉균 전 의원은 과거 이 같은 대우그룹 출신 정·재계 인사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을 적극 반박한 바 있다. 강 전 의원은 "대우그룹의 해체는 정책당국자들의 판단에서 초래된 결과라기보다는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김우중 회장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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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김우중 체포결사대. ⓒ 김제완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의 책임론이 거세지고 검찰 수사 가능성이 커지자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그는 1999년 10월 중국 엔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모습을 감췄다. 이 때문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2001년 '김우중 체포 결사대'를 만들어 해외 원정 투쟁이 나서기도 했다. 

도피 6년여 만인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김 전 회장에 대한 법원의 평가는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보다 회계부정 등 불법 경영으로 국민에게 큰 피해를 안긴 과를 더 크게 봤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고통스런 체질개선 대신 방만한 기존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점, 분식회계로 금융권으로부터 사기 대출을 받아 피해자를 양산한 점, 대우그룹 도산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점, 해외금융조직을 통해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도피시킨 점 등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하지만 생전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에 대해 당시 경제 관료들의 판단 오류 때문이었다며 여러 번 억울함을 토로했다.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해 주길"... 억울함 호소했던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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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8월 26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대우특별 포럼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그는 2014년 8월 전직 대우그룹 임원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방만한 경영을 하고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대우그룹 해체는 사실과 달리 알려져 있다"며 "이제는 시간이 충분히 지났기 때문에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14년 10월엔 모교인 연세대를 찾아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IMF가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우리 경제에 많은 불이익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전 회장과 대우 출신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 경제팀이 국제 금융자본의 논리만을 대변하는 IMF에 포획돼 국내 산업자본을 희생시켰다", "대우는 구조조정을 게을리 해서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망칠 IMF식 구조조정을 반대하다 몰락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 인사는 당시 기자와 만나 "IMF 당시 경제관료들은 한국기업의 부채를 줄이라는 IMF의 가이드라인을 무비판적으로 따랐는데 회장님은 'IMF의 요구대로만 가면 안된다, 수출 확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미움을 샀다"며 "결국 경제관료들이 대우그룹 해체에 나서면서 대우가 힘겹게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붕괴된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었다"라고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진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등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모순을 외면한 이 같은 주장은 큰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미납 추징금 17조원에 재산은닉 의혹도

김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생의 마지막 10년을 청년인재 양성 사업에 주력했다.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했던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글로벌 청년사업가)을 운영하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취업이나 창업하려는 청년들을 선발해 교육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17조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 재산 은닉 의혹 등 아직도 풀지 못한 '검은 유산'을 남기고 1년여 투병생활 끝에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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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아주대병원에 차려졌다. ⓒ 오마이뉴스 이민선

 
#김우중 #대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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