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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동학 입도, 해월선사 옷 지어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8회] 김개남은 적어도 전봉준보다 먼저 동학에 들어

등록 2019.12.19 18:58수정 2019.12.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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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선생과 '매천 야록' 전라도 광양에서 태어난 황현 선생은 한말 4대 시인으로 꼽히며, 젋은 시절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를 보고 성균관 유생이 되기도 했으나 과거제도의 부패를 목격하고 낙향했다. 오른쪽 사진은 선생이 남긴 편년체 역사서 ‘매천 야록’ ⓒ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호남은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족하여 조정의 세력을 등에 업은 탐관오리들이 탐내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 은거하면서 뒷날 '매천필하에 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 즉 "매천 황현의 필봉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섭게 비판했던 황현의 기록이다.

최근에는 욕심을 채우는 더러운 일들이 날로 늘어났는데, 호남은 재물이 풍부하여 그 욕심을 채워줄 만 하였다. 무릇 이곳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양이나 돼지처럼 여기면서 마음대로 묶고 빼앗았으며, 일생동안 종과 북을 치면서 사방에서 빼앗았다. 이리하여 한양에서는 "아들을 낳아 호남에서 벼슬을 살게 하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이에 관리는 도척(盜跖)이 되고, 아전은 창귀(倀鬼)가 되어 (농민들의) 살을 깎고 뼈를 바르며 거두었고, 그 부정한 축재물을 나누어 가지는 데 참여하였다. 감영의 아전은 감사의 권위를 끼고 모든 고을을 집어삼켜버렸으며 그 기세가 더욱 극심하였다.……간혹 청렴하고 명철한 어사가 그 죄를 다스리고자 하면 세도가들이 그들을 극진히 비호하여 서찰을 보내어 용서를 청하였다. (주석 7)


동학은 영남에서 창도되었으나 호남에서 더욱 번창하였다.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호남인들은 동학의 만민평등과 인존사상에 심취하게 되고, 그만큼 지역마다 동학의 일선 조직인 포(包)와 접(接)이 많아졌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최제우가 관군이 쫓겨 피신지를 전북 남원으로 정하고 이곳에 1년여 동안 은거하면서 호남지역 포교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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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 선생 동상 동학의 고장답게 해월 선생의 동상이 위치해 있다. ⓒ 김환대

 
동학은 최제우가 순교하면서 해월 최시형에게 교통이 이어졌다. 해월은 교조의 억울한 죽임을 호소하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1892년 호남지방을 순회할 때 김개남의 집에 유숙하였다. 김개남은 한 해 전에 동학에 입도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개남은 산외면 동곡리 상지금실 630번지에서 태어났다. 320평 되는 집터의 뒤는 상두산 아래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당산(堂山)이었다. 이 유서깊은 고택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92년에 동학교주를 맞이하기도 했다.

해월 최시형 2세 동학교주가 김개남의 자택을 방문하여 1주일간 유숙할 때였다. 의복이 귀한 시절이라 손화중이 옷 세 벌, 최경선과 김덕명이 네 벌 등 모두 합쳐 옷 일곱 벌을 지어다 최교주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주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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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가묘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에 위치해 있다. 효수 당시 시신을 거두지 못하여 1995년 4월 가묘를 만들었다. ⓒ 류효정

 
김개남이 언제 누구의 주선으로 동학에 입도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음의 글에서 추론이 가능할 것 같다.

그는 자라서 상두재를 넘어 전주로 넘나들었고, 이때 일가붙이인 전주 영장 김시풍과 교분이 두터웠다 한다. 그리고 그가 이때쯤 사귀던 사람들은 시세에 불평불만을 가진 사람, 기개가 있고 호걸스러운 사람 그리고 양반이나 벼슬아치보다 고통에 신음하는 서민들이었다 한다 (김동기의 증언).

이런 그였으니 동학에 입도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적어도 전봉준보다 먼저 동학에 들었고 도강 김씨의 자제들을 여기에 끌여들였던 것이다.

1890년대 초 최시형은 전라도 일대를 자주 순행하며 포덕에 열중했다. 1891년 최시형은 부안을 거쳐 태인 땅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실 김개남의 집에 찾아 갔고 이때 김개남은 여름옷 다섯 벌을 지어 올렸다 한다. (주석 9)


주석
7> 황현, 『오하기문(梧下記聞)』, 양정석, 『호남의 한』, 96~97쪽, 재인용, 징소리, 2013.
8> 김기전, 앞의 책, 54쪽.
9> 이이화, 『발굴 동학농민전쟁 - 인물열전』, 84~85쪽, 한겨레신문사, 1884.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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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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