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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태인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회] 김개남의 집안은 근대에는 벼슬아치가 없었으나

등록 2019.12.17 17:38수정 2019.12.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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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사진 동학농민혁명 기록 ⓒ 허영진

 
김개남은 1853년(철종 4) 9월 15일 당시 전라북도 태인군 신외면 동곡리 상지금실(현 정읍시 산내면) 630번지에서 도강 김씨인 아버지 김대흠(金大欽)과 어머니 익산 이씨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태인(泰仁)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신외면은 서쪽으로 옹동면ㆍ칠보면과 남쪽으로 왕자산ㆍ성옥산 등을 경계로 선내면과 동쪽은 묵방산 등을 경계로 임실군 운암면과, 북쪽과 북동쪽은 국사봉 등을 경계로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과 인접하고 있다.

섬진강과 동진강의 분수계가 되고 도원천 주변에 기름진 평야가 있어 쌀을 비롯 잎담배ㆍ고추ㆍ양잠업 등이 이루어진다. 전라북도 동부 산간지방과의 남쪽 길목이 되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동학농민혁명 제2차 봉기가 이곳 평사리에서 시작되었다.

김개남이 태어난 1853년 4월에 러시아 함대가 영일만까지 남하하여 동해안을 측량하고 6월에는 조정에서 각지의 유랑민이 증가하여 한성(서울)에 모인 유랑민을 강제로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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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파리지리학회지에 실린 지도의 일부. 1846년 김대건 신부의 지도라고 설명이 붙어있다. 오른 쪽 상단의 지도를 보면 압록강 이북도 조선영토로 되어있다. (박선영 교수 제공) 1855년 파리지리학회지에 실린 지도의 일부. 1846년 김대건 신부의 지도라고 설명이 붙어있다. 오른 쪽 상단의 지도를 보면 압록강 이북도 조선영토로 되어있다. (박선영 교수 제공)

 
1855년 영국군함이 독도를 측량하고, 프랑스 군함이 동해안을 측량하는 등 서구열강의 침투가 시작되었다.

김개남이 7살되는 1860년 그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하고, 1862년 2월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임술민란'이 발발했다. 4월에는 익산ㆍ개령ㆍ함평, 5월에는 충청ㆍ경상ㆍ전라 각지에서, 10월에는 제주ㆍ함흥ㆍ경기도 광주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1863년 11월 동학교조 최제우가 체포되고, 12월 고종이 즉위하면서 대원군 이하응이 정권을 장학하고, 이즈음 남해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1864년 3월 동학교조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대구감영에서 사형당하였다. 1865년 4월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공사를 시작하면서 농민들을 동원하고 원납전을 강요하는 등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등 내외정세가 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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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도운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 ⓒ 서울옥션

 
김개남의 16대 할아버지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기여하여 공주목사 겸 병마어사ㆍ한성부윤 등을 지내고 사후 조정에서 충민공의 시호를 받았으며, 10대 조인 원모당 후진은 임진왜란 때 모병과 군량미 조달에 크게 공을 세워 둔자감직장의 벼슬을 내렸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여러 명의 장수가 도강 김씨 문중에서 배출되었으며, 상지금실과 하지금실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도강 김씨 집성촌을 이룰만큼 이곳에 터를 닦고 살았다.

김개남의 집안은 근대에는 벼슬아치가 없었으나 전통적으로 부농측에 돌만큼 여유가 있었다.

"(김개남집안)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후예인 도강(道康) 김씨로 당시 천여석을 하는 부농이었다. 그의 집안은 벼슬살이는 못했으나 인근에서는 글 잘하는 사족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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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 최장문

 
어렸을 때부터 김개남은 영특하여 재주가 많았으며 똑똑하고 야무진데다 날쌔고 비록 체구가 작았지만 눈에 광채가 나서 상대방이 김개남의 눈빛과 마주치지 못하리만큼 위풍이 있었다. 특히 병정놀이를 좋아해 언제나 김개남이 대장이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잘 사는 집에서 아들 다산을 위하여 조혼을 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김개남 장군도 열여섯 살 때인 1868년 한 살 아래인 열다섯 살 된 연안 이씨 규수와 결혼하였으나 이듬해 7월 25일에 상처하고 세 살 아래인 전주 이씨(1856년 5월 12일생)와 재혼하여 아들 백술(佰述 1884년 7월 1일생)과 3녀를 낳았다.

백술은 부인 경주 김씨와 결혼하여 환옥과 환섭을 낳았으며 환옥은 남원 양씨와의 사이에서 상기(相基)ㆍ종기(鍾基)ㆍ정기(正基)ㆍ진기(珍基) 4형제를 두었고 환섭은 제주 고씨와 인기ㆍ인형 형제를 남겼다.

김개남은 병서(兵書)를 좋아해서 『손자병법』과 『삼국지』및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읽으며 무술을 잘 닦아 날아다닌다고들 했다 전해진다. 열아홉 살 때부터는 나귀를 타고 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맺었다. (주석 2)


주석
1> 김은정 외, 『동학농민혁명 100년』, 490쪽, 전북일보 동학농민혁명특별취재팀, 나남출판, 1995.
2> 김기전, 앞의 책, 4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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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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