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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송년 모임에서 받은 시계가 참 특별한 이유

어렵게 공부했던 그 시절... 45년 전 전당포에 맡긴 시계를 되찾은 기분

등록 2019.12.13 13:57수정 2019.12.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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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송년모임 사진 12월 6일(금) 고등학교 동기 150 여 명이 참석해서 오랜만에 우정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이명재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이즈음 우리는 '연말연시'(年末年始)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연말이면 만남의 장이 여럿 마련된다. 이른바 '송년회'다. '보낼 송(送)'에 '해 년(年)', '묵은해를 보낸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주로 '망년회'(忘年會)란 말을 썼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것이 송년회로 전화(轉化)돼 쓰이고 있다. 막연히 생각해 보기로는 '망' 자가 '망할 망(亡)'을 연상케 해 송년회로 바꿔 쓰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올해도 몇 군데 송년 모임엔 꼭 참석하려 한다. 지난 6일 고등학교 동기회 송년회가 서울 한복판 공군회관에서 열렸다. 150여 명의 부부가 참석해 오랜만에 우정을 두텁게 나누고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 이상 지났고 친구들은 환갑을 지났지만, 건강한 모습에서 삶의 생기를 읽을 수 있었다. 

정기총회를 마치고 여흥의 시간엔 각자 갖고 있는 '끼'들을 맘껏 발산하는 게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개중에는 평소 얌전을 빼던 친구가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 좌중을 쥐락펴락해 눈을 의심케 만들기도 했다.

손목시계가 선물이라고?

이런 송년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올 때면 기념선물 한두 개씩 손에 쥐어준다. 몇 년 전 갔을 때는 도자기가 선물로 주어졌고, 또 그 이태 뒤인가에는 은수저 세트를 선물로 받아왔다. 올해 송년모임엔 철 지난 손목시계가 선물 목록에 올랐다.

시계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왜 시계 선물이냐고 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듯하다. 전 국민이 휴대전화 하나씩 소지하고 있는 때에 손목시계는 선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휴대전화에는 시뿐 아니라 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이 있지 않나.

초로의 친구들이 향수(鄕愁)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순진무구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손목시계 하나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향수의 작은 부분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40여 년 전에는 살기가 괜찮은 집 자제들만이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특별하게' 그때의 꿈(손목시계를 갖고 싶은)을 이룬 게 된다. 선물에 이런 추측성 해설을 곁들이는 것도 유별나다. 어떻든 손목시계 선물을 생각해낸 동기회 임원들을 나는 칭찬하고 싶다.

고등학교 송년 모임이라고 했다. 기념선물로 준비한 손목시계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40년 세월을 되돌리는 향수를 일정 부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로 역할을 한다고 정리했다. 

고학생과 '오리엔트 손목시계'

고등학교와 손목시계라는 단어는 내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인(動因)도 여기에 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수 없었던 나는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유가 가장 컸다. 어린 나이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남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천으로 있는 게 시계인데, 시간을 몰라 일하러 가는 데 어려움을 겪다니! 나는 중학생 나이 때부터 혼자 자취를 했다. 어떤 때는 두어 시간 전에 일터로 갈 때가 많았고, 또 한 시간쯤 지난 뒤 출근해 주인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 주인의 배려로 구입한 게 '오리엔트 손목시계'였다. 중고라고 하지만 쓸 만했다. 주인의 친구가 전당포를 운영하는데, 오래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은 것을 헐값에 가져 왔다고 했다. 주인은 무용담 들려주듯 말하며 내 손목에 시계를 채워줬다.

이 '오리엔트 손목시계' 덕분에 시간을 지켜 일터로 나갈 수 있었으니 내겐 은인인 셈이다. 학교 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틈틈이 공부해 고입 자격 검정고시를 보게 됐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준비 없이 학교부터 간 게 실수였다고나 할까.

입학식 날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는 뚝방의 판잣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궁색 맞은 얘기가 될 줄 알지만, 입학식 날 차비가 없었다. 주위에 빌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빌려 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갚을 자신이 없었다. 첫 입학식 날 결석하면 3년의 학창 시절이 어려움의 연속일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혈혈단신의 신세가 이런 상황까지 몰고 가다니! 비상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버팀목이었던 오리엔트 손목시계!

그것을 갖고 아침 일찍 전당포로 달려갔다. 저당 잡히면 200원까지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학생 버스요금이 15원 정도 할 때다. 순간의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스스로 위로했지만, 시간 때문에 또 마음 조일 일을 생각하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마치 그 때 그 시계처럼
 

개인의 이름이 박힌 손목시계 뒷면 출신 고등학교의 사자 그림 위에 개인의 이름을 깨알같이 박아놓았다. ⓒ 이명재


난 그때 전당포에 맡긴 오리엔트 손목시계를 다시 찾지 못하고 말았다. 공부하랴, 생활 앞가림하랴, 형편이 나아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학생의 힘겨운 일상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생존을 위한 전쟁 말이다. 다행히 어렵게 3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올 고등학교 동기 송년모임 선물로 손목시계를 준비하니 많이 참석하라는 공지가 올라왔었다. 참석자의 이름을 시계에 일일이 새겨준다는 '달콤한' 문구까지 포함돼 있었다.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더해 손목시계 선물에도 솔직히 마음이 갔다.

45년 전에 전당포에 잡힌 시계를 찾는 기분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시계를 선물로 준비한 임원들이 내 마음을 엿본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덤으로 아내 것까지 커플 시계를 받아들고 송년모임을 뒤로 했다. 

참으로 힘겨웠던 학창 시절, 해를 거듭할수록 한 편의 드라마가 돼 내 주위를 에워싼다. 한동안 이 손목시계가 내 몸의 한 부분처럼 같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큼직한 시계가 더 든든하게 보인다.
덧붙이는 글 김천일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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