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예술로 만드는 주문, "보고 싶었어!"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生의 命, 農농·革혁·美미·言언 3.미] 유순혜 교수

등록 2019.12.06 16:01수정 2019.12.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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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배움터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매해 가을, '교육'(2014), '글쓰기'(2015), '역사'(2016), '마을'(2017), '진실-언론과 정치'(2018)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뜻깊은 배움을 이어온 지난 시간을 발판 삼아 올해도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엽니다.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주제는 '生의 命 - 農농·革혁·美미·言언'입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의 질문 앞에 애타는 목마름으로 그 이유와 길을 묻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김준권 평화나무농장 대표(農농) ·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革혁) · 유순혜 화가(美미) ·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대표(言언). 주제마다 이끌어주실 길잡이 선생님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生의 命'의 음성을 좀 더 선명히 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9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열립니다. (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소개 보러가기) - 기자 말
  
중고생 시절, 수능에 예체능 과목은 없었고 당연히 그건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다. 체육시간 운동장에 영어 단어집을 갖고 나갔고, 미술시간에는 빨리 그림을 그리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싶었다. 귀에 꽂고 듣는 음악은 집중을 돕는 도구에 불과했다.

성인이 됐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옷을 구매하는 중요한 기준은 달려있는 가격표이지 디자인, 색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미술 전시관, 콘서트 등의 예술 행사는 이역만리 해외여행보다도 머나먼 곳이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더 늦기 전에 음악 한번 배워볼까 싶었는데, 악기를 배우려니 손에 물집 잡혀가며 기타줄을 잡는 수고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저 성악 레슨 몇 달 배워본 게 전부다.

그런 나에게 '생生의 명命'을 찾으라 한다면, 적어도 삶을 바쳐 생명을 일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기대대로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생生의 명命' 첫 시간(관련 기사: 농부가 되고, 나는 매일 두근거립니다)은 '농農'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을 물었고 두 번째 '혁革'의 시간(관련 기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기필코 불려야 할 이름이여)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온 존재를 불태웠던 의열단과 약산 김원봉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강의 시작 전, 배움터경당의 양하늘(16세) 학생이 강의장 앞 화이트보드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아름답다: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아름다움은 삶의 부차적인 요소로 여겼다.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이라니. 그런 것들이 중심이 되기에 우리 삶은 너무나 치열하고 처절하다 싶었다.

문제의 세 번째 시간. '생生의 명命'과 '미美'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생명, 혁명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정도의 짐작만 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하자. 아름다움만큼 중요한 '생生의 명命'은 없다.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세 번째 '미美-일상을 예술로' 시간을 통해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생의 의지로 이뤄지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경천동지(驚天動地) 수준의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 변화를 이끈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부터 그 내막을 소개한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강의를 하는 유순혜 교수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강사는 수원시 창룡마을창작센터의 센터장으로 있으며 수원시 지동예술프로젝트 총괄작가로 8~9년을 벽화 작업에 매진했던 유순혜 한신대 교수였다. 유 교수는 이미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를 통해 만난 인연이 있다.(관련 기사 : 순댓국 못먹던 그녀, 무엇이 그를 바꾸었을까)

"너무 보고 싶었어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강의장을 들어오자마자 외친 유 교수의 일성이다. 이는 강의 내내 수차례 반복됐다. 마치 수년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전우를 만난 느낌으로 말이다. 사실 유 교수와는 교육문화연구학교 강의 외에 배움터경당의 학생들이 지동으로 찾아가 벽화 그리는 작업을 두 차례 함께 했을 뿐이다.
         
인연이라는 게 만난 시간의 양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고 싶었다는 말이 재차 되는 게 좀 과하다 싶을 수 있겠다. 그러나 유 교수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 교수 작품의 주요 주제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고 지대하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지동마을에 방문했을 때 마침 창룡마을창작센터에서 유 교수의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기서 봤던 그녀의 작품들은 온통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심지어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을 그린 작품에도 주인공은 그 유적지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무수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사람을 그리는 작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한 작품에 한 명이 아닌 무수히 많은 사람을 담아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사람이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됐단다. 한 화면에 문제, 풀어가는 과정, 찾아낸 답을 다 표현하고 싶어 사람을 가득 그리게 된 것이다.

유 교수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꼭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이 그림에는 사람이 몇 명이 있나요? 그럼 이렇게 대답을 해 준다. 우문에 현답이다.

"잘 찾아보세요. 거기에는 당신도 있을 거에요."
 

지난 2016년 유 교수의 작품전시회에서 ‘사람’이 화면을 가득 메운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그렇다면 그렇게 사람을 관찰하고 그리며 얻게 된 사람에 대한 통찰은 무엇일까. 솔직히 수십 년을 그렸지만 잘 모르겠는 게 사람이라고 유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철학은 있었다. 그 깨달음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 함께 불러보자고 그녀가 추천했던 노래 '사랑으로'의 가사에 담겨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따라 흐르고
우리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아 영원히 변치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중에서
 
유 교수는 노래 제목을 '사람으로'로 바꿔도 되겠다고 했다. 가사에 표현된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 본인이 오랜 동안 사람을 관찰하고 나서 진짜 사람이 무엇인지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바람부는 벌판에서도 홀로서기가 가능한 사람. 그러나 떨어지는 솔잎하나에도 눈물 흘리는 뭉클한 감성이 피어오르는 사람. 그 가슴 속에는 햇살과도 같은 뜨거움이 있는 사람.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을 만날수록 마음을 나누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나 보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만났던 터라 배움터경당의 학생들을 그리워했고 교육문화연구학교에 또 오고 싶었으리라. 실제 그녀는 올해 배움터경당을 졸업한 친구들에게 멀리서나마 졸업선물을 보냈고, 졸업한 친구들 역시 유 교수를 만나기 위해 졸업 후 인사를 드리러 가기도 하고 이날 강의에도 참석을 했다.

예술에 정답은 없다
  

참가자들 모두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사람을 그리는 작가.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던 이들을 3년 만에 만나 '아름다움'에 대한 강의로 선택한 제목은 '일상을 예술로'였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동마을을 벽화로 바꿔낸 그녀가 벽화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전해주고 싶은 것인가. 그렇게 추측했다. 벽화가 일상을 이렇게 바꿨으니 우리 모두 자기 마을에 벽화를 그립시다.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아. 얕은 헤아림의 비루함이여.

무안할 정도로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미술 사조 즉 미술의 역사 공부가 시작됐다. 미술의 역사이니만큼 준비된 화면에 그림이 펼쳐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유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직접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는단다. 그렇게 한번 이미지가 각인되면 거기에서 벗어나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상이 또 빗나갔다. 말로 이뤄지는 미술과 예술의 세계. 복잡한 미술의 역사가 단순하고 명쾌한 말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역사는 AD 10세기 굴곡진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한 작품이 많았던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시작했다. 이후 최대한 사실을 원칙에 의해 묘사하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꾸미고 장식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등장한다. 또 다시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사실주의, 그 반대편에 있는 낭만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도 그리고 싶어 등장한 상징주의가 교차했다. 이후 사물을 비추는 빛에 대한 주관적 느낌을 표현한 인상주의. 유럽의 전통적인 고전주의를 탈피하고 싶었던 아르누보. 색채를 파괴하고 싶었던 야수파. 다초점 구도를 통해 형태를 파괴하고 화면을 입체화시킨 입체파. 1차 세계 대전 이후 달라진 예술가들의 관점을 반영한 허무주의. 현실에는 없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한 초현실주의. 다 정답이고 다 정답이 아니라는 다다이즘. 장대한 미술의 역사가 강의장을 스쳐 지나갔다.

엎치락뒤치락 미술 사조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답은 없구나. 그 시대 인정받는 사조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대세는 바뀐다. 다만 거기에 나름 규칙이 있다. 하나의 풍조가 시대를 휩쓸더라도 이내 곧 기세는 꺾인다. 그래서 다시 이전의 것으로 돌아가지만 마냥 돌아가지는 않는다. 약간의 변화를 주며 예전의 것을 재창조한다. 그런 흐름이 반복된다.

예술에 고정된 정답은 없다. 틀에 맞춰놓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가 예술적이지 않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유 교수는 그런 흐름을 읽어내고 흐름을 타는 것이 예술성을 갖추는 방법이 될 것이라 한다.

예술은 일상에서 이뤄진다

아직은 어렵다. 머릿속에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예술성을 갖춘다는 게 무엇인가. 예술성을 꺼내는 방법이 무엇일까?

"나의 예술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은가요. 일단 자기의 예술성을 꺼내 쓰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자꾸 가까이에 예술을 둬야 해요. 특히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해요. 소질이 없다고 판단하면 안돼요. 싹을 잘라버리면 안돼요. 결국은 예술로 승부를 볼 사람들이에요. 수학을 하던 과학을 하던 예술로 승부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알듯 말듯 하다. 조금만 더 구체적이면 좋겠다.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유 교수는 아이들이 예술성을 꺼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해 준다.

"깍두기 담글 때 혼자 담그지 마세요. 얼른 오라고 해요. 무를 썰면 흰색인데 거기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점점 빨개지잖아요. 그 색감을 느끼게 하세요. 수제비 할 때 꼭 오라고 하세요. 반죽에 물을 넣으면 점점 농도가 달라지고 손의 맛이 달라지잖아요. 색깔은요. 시금치를 갈아 넣으면 초록색이 되고 비트를 넣으면 빨간색이 되잖아요. 이런 손맛으로 가르치세요."

그림 가르치려 어디 보내지 말라고 한다. 그냥 그릴 걸 많이 주란다. 자꾸 가까이에 기회를 줘야 한다. 벽이던 천장이던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그려야 하고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짓지도 말라고 한다. 그저 자주 접하고 자기 감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두는 것. 그게 일상에서 예술성을 갖춰가는 방법이다. 비법을 배우러 따로 학원 갈 필요 없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예술성을 끄집어 내가는 거다.
     
모두를 예술가로 만드는 비법은 이것
   

다음 날 결혼식을 앞두고 강의에 참석한 이재호(36세)씨와 김윤미(34세)씨 부부.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유 교수가 미술 사조를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소박파. 그들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오직 열정만 있었다. 당대에는 무시당했지만 결국 현대에 와서 인정을 받는 이들이다. 그녀가 이들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예술성의 정의가 바로 '이들처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다.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기회를 허락해서 그들의 예술성을 꺼낼 수 있다지만, 나이 마흔이 다 된 나는 주어진 기회도 별로 없는데 어떻게 삶에 예술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이들이 자기 삶에 예술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유 교수의 해법은 정성이었다. 극치에 다다를 정도로 간절하게 정성을 다하면 예술성은 따라 온다는 것이다.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가로 칭송을 받는 건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극도로 무언가에 정성을 담아 매진했기 때문이고 노벨상 수상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도 역시 복잡한 과학 공식 위에 극치에 다다른 예술성을 담았기 때문 아니겠냐고 역설한다. 심지어 흔히 볼 수 있는 자기소개서 양식에서도 예술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세요. 고딕체, 주어진 양식대로 그냥 했는지. 글씨체도, 글의 정렬도 신경 써서 서류를 가지런하게 정리해서 냈는지. 이것만 봐도 누굴 뽑을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일상의 예술입니다. 그건 정성이에요."

왜 예술성을 그토록 강조할까. 그건 사람을 오래 관찰한 결과이다. 지식, 스펙만 따지는 사람은 오히려 문제만 만들어내고 해결도 못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뿐 아니라 이제 지식으로는 기계를 이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온갖 것을 알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어차피 안 되는 싸움.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성이다. 예술만이 기계를 이길 수 있다. 변해가는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강의를 들으며 불현 듯 학부생 시절이 떠올랐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과제를 손으로 써오라는 교수님이 계셨다. 내용은 수업 때 필기한 내용이 전부였기에 어디에 변별력을 두고 평가를 하는지 궁금했다. 조교가 대답했다. 예쁘게 꾸며온 과제에 점수를 높게 준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심하게 반발했다. 대학생 정도 되는 우리가 겨우 과제를 어떻게 꾸몄느냐에 점수가 갈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이다. 이제야 그 때 교수님의 의도를 깨달았다. 과제에 담긴 정성을 평가한 거다. 어차피 내용이야 이해하면 비슷한 거니 너희들의 정성을 보겠다는 거였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2016년에도 제일 앞자리에서 유 교수의 강의를 경청했던 두 학생이 이날도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유 교수는 배움터경당의 학생들에게 예술성을 겸비한 이들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예술은 누가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든 궁극의 것을 이루고자 자기의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맞다.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에 정성을 다하고 극치에 다다를 만큼 삶을 걸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예술이다. 아름다움이다.
  
앞서 말했던 결론이 이것이다. 아름다움을 '생生의 명命'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그저 내용물과 상관없는 예쁜 포장, 과대 포장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생을 걸고 온 힘을 다할 때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예술성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렇게 애를 쓸 때 자기 안의 예술성이 발현될 수 있다. 그런 예술성을 갖춘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고 기계를 이기는 사람이 된다. 그 명을 따라 살자.
  
정성을 다하며 만난 새로운 세상
  

프랑스어로 번역된 본인의 책 <세상이 깜짝 놀란 발명·발견>을 보여주는 유 교수.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유 교수는 사람을 그리는 작가로 한 우물을 팠다. 그 결과, 본인의 책이 프랑스에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 분야에 정성을 다해 프랑스까지 진출했다는 것만 인상 깊은 건 아니다.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지동 마을에서의 벽화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사람을 만났다. 사실 화가로서 혼자 오래 작업하며 사람과 소통하는 걸 잘 못했단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주민들 때문에 지금껏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데, 90세 노인이 혼자만 먹으라고 작은 귤 두 개, 익지도 않은 감 한 개를 건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 덕에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제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그리는 작가가 거기에 정성을 다하다 보니 만나게 된 새로운 세상. 주민과 만들어 낸 10km의 벽화길은 그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만남의 이야기가 진짜 예술이 아닐까. 그런 그녀가 이제 예술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이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간절함이 현실로 이뤄지기를 응원한다.
  

강의에 참석한 배움터경당의 학생, 졸업생들과 유 교수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강의의 마지막, 유 교수는 청중에게 숙제를 던졌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본인의 이야기는 개인에 한정되어 있었다며, 그렇다면 공동체가 오래도록 유지되기 위해 예술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을 화두로 고민해 볼 것을 제안했다. 답이 듣고 싶어 찾은 강의에서 오히려 해결할 문제가 생겼지만 기쁘게 고민해 보련다.

덧붙여서, 그녀가 들어오며 보고 싶었다고 외쳤을 때는 단지 그녀만 보고 싶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도 그녀가 보고 싶었을 거다. 나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간에 사랑의 파동을 주고받았고 그 파동이 만나 그 시간을 빛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정성이 만났던 우리의 시간은, 예술이었다. 아름다웠다.

참가자들이 그 예술의 시간을 돌아보는 소감을 남겼다. 그 중 일부를 전한다.

이달님(37세)씨는 일상을 궁극의 경지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간절해야 할까 얼마나 진심이어야 할까 생각하니, 조금의 왜곡도 없이 투명하게 예를 다해 매순간을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머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머리에 있는 것이 가슴, 손, 발로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며 유 교수를 또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윤주(36세)씨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부를 노래 한 곡을 선택하는 데도 정성을 다한 유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런 일상의 순간에 일어나는 만남이 결국 예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가 2020년 1월 31일(금) 오후 7시 30분에 '말言'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한다. '생生의 명命'을 모색하는 마지막 자리인 만큼 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강의를 마치고 다같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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