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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성공했다 싶었는데, 암이란다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의 동화 '일생일대의 거래'

등록 2019.11.29 16:33수정 2019.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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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표지 ⓒ 다산책방

  
김영하 작가는 동화가 잔인한 이유에 대해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지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가 있다. 동화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와 깨달음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슬픈, 또 때로는 잔인한 이야기를 선사한다.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의 죽음이나 <빨간 구두>에서 소녀의 발목을 자르는 결말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동화 <일생일대의 거래>는 도입부부터 '나는 사람을 죽였다'라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남자는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이다. 그는 부족함이 없는 돈과 명예를 얻었고 이를 위해 악착 같이 살아온 자신의 삶이 올바른 매뉴얼이라 생각한다.


그는 아들에게도 자신과 같이 살아갈 것을 강요한다. 성공을 위해 더 독해지고 악착 같이 살 것을 요구하지만 아들은 따르지 않는다. 이기적인 남자에게 염증을 느낀 아내는 이혼을 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도움을 거절한 채 낡은 술집에 취업한다. 혼자 남게 된 남자는 실의에 빠지고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남자는 병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는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지만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와 함께 내일 할 놀이를 정한다. 토끼 인형을 안고 다니며 의자를 빨간 색으로 칠하는 소녀의 모습에 남자는 무의미함을 느낀다. 크레파스로 열심히 의자를 칠하는 행동도, 내일 어머니와 할 놀이를 정하는 모습도 그저 삶에 대한 의미 없는 미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소녀와 교감을 하는 순간 남자는 알게 된다. 삶에서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닌 그 시간을 가치 있게 채우는 행복이란 걸 말이다. 남자는 훌륭한 시간들을 보내왔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만큼 명성을 세웠고 부족함이 없을 만큼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을 위해 그 시간을 쓰지 않았다.

똑바로 달려왔다 여겼던 그의 인생은 행복이란 정류장에 한 번도 멈췄던 적이 없었다. 이에 남자는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그 행복을 아이에게 주기 위해 일생일대의 거래를 준비한다. 그 거래와 관련된 내용에서 남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 말한다.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사신을 볼 수 있었다.

사신은 남자의 주변에 존재했고 그의 주변 사람들을 데려갔다. 어린 시절에 죽은 동생과 친구, 그리고 부모님. 남자는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였고 그 죽음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래서 남자에게 시간은 중요했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 성공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성공에 행복은 포함되지 않았다.


본인이 느끼지 못한 행복을 앞으로 행복을 느낄 나날들이 많이 남은 아이에게 주기로 결심한 남자는 사신과의 거래를 결심한다. 동화의 측면에서 죽음을 주된 주제로 내세우는 이 작품의 무게감은 상당히 거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시간에서 비롯된다.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1초는 동등하게 주어진다. 그 1초의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정해진다.

그 시간의 중요성은 죽음이란 도착점이 있기에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에 작품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을 가져와 경각심을 심어준다. 아들에게 지난 삶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교훈을 전해준다. 거대담론이나 집단의 성공이 아닌 소소하지만 확실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동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다산책방, 2019


#일생일대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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