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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팬레터입니다, 수신자는 '아이유'

[염치주의] 그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키워드 '염치'

등록 2019.11.22 13:49수정 2019.11.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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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이것은 팬레터다. 수신자는 아이유다.

12년 동안 그는 나름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간 해온 인터뷰를 톺아보면, 정상에 서 있었을지언정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듯하다.

18살의 그는 "스무 살이 넘으면 마음이 편해질 거"(2010년, GQ 인터뷰)라고 생각했다. 20살에 그는 "아이돌다운 반짝반짝함은 이제 끝"(2019년, 데이즈드 인터뷰에서 밝힌 김이나 작가와의 대화)이라 여겼다. "'다음에 잘 안 될 거야'를 생각하느라 행복할 틈이 조금도 없었"던, "평정심에 집착"하던(2017년, JTBC <효리네 민박>) 25살의 그. 그 해 발표한 4번째 앨범에서 "못 잊게 행복했던 어린 날의 나도 안녕"(4번째 정규앨범 <팔레트>중 '마침표')이라며 그의 과거에 짙은 점 하나를 찍었다. 

27살이 된 지금, 그제야 겨우 "즐기면서 일한다"고 했다.

"지금, 절정이지 않을까요? 제가 그렇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게 20살 때는 끝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물일곱이 된 지금 기자님한테 '지금이 절정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니까, 그 때보다 7년이나 보너스를 얻은 거잖아요." (2019년 10월, 데이즈드 인터뷰)

올해는 연기자이기도 한 그가 출연한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소위 '대박'이 났다. 그를 캐스팅한 감독과 작가가 입을 모아 "아이유가 아니면 이 작품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할 정도로 연기자로서도 독보적 위치에 섰다. 11월 18일에는 5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차트를 석권했다. 2019년은 또 다시 '그의 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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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아이유는 5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차트를 석권했다. 2019년은 또 다시 '그의 해'가 됐다 ⓒ 카카오M

  
'아회장' 아이유의 특별한 리더십

그런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그는 '아이유 팀'과 '팬'을 꼽는다.


그의 이름 뒤에는 '회장'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일명 '아회장'. 마흔 명에 가까운 사람이 '팀'으로 묶여 있고 그를 위해 일한다고 한다. 아이유는 '팀 아이유' 덕분에 지금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지금 정도 건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그 사람들의 '좋음' 때문이에요. 스텝들이 바른 사람들이에요. 원칙적이기도 하고요. 그런 우직함이 항상 저를 정신 차리게 해요." (2018년 10월 27일 KBS <대화의 희열> 중)

그는 2018년 7월 기존 소속사인 카카오M과 재계약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이유가 재계약을 위해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고 한다. '아이유 팀의 고용보장과 연봉인상.'

그 해 10월 아이유는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해 "(재계약에)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스태프 복지에 신경 써줄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다른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조건이 들어오면 다른 데랑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도 기존 소속사의 손을 잡은 이유로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줬다"는 점을 들었다. 인간적인 대우에 아이유는 인간적으로 답했다. 자신의 '팀'에게, 자신의 소속사에게. 아이유의 '의리'다.

KBS <대화의 희열>에서 진행자 유희열씨는 이런 아이유를 향해 "리더십의 증거"라고 말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아이유만의 염치가 작용한 결과로 읽힌다.

물질적 조건과 자신을 지탱해준 관계를 맞바꾸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지금 이상의 재산은 사실상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2015년, 쎄씨 인터뷰)는 3년 전 그의 말은 '떳떳함'을 얻었다. '남을 대하기 떳떳한 도리', 즉 염치의 한 자락이다.

아이유는 '관계에 대한 염치'를 지킴으로서 자신을 "정신 차리게 하는" 팀원들,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소속사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다시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선택을 '의리'라는 말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안에는 '내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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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는 기존 소속사와 재계약하며 '아이유 팀의 고용보장과 연봉인상'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알려져있다. 그 결정 안에는 '내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 아이유 공식 페이스북

  
"누군가 아무리 저를 하찮게 봐도, 저보다 저를 하찮게 볼 수는 없어요"

이 같은 성향은 팬을 향한 마음에도 드러난다.

"나는 우리 팬들한테서 정말 많은 힘을 얻는다고, 나는 내 팬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계속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그게 다 전해져서 여러분이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거 같은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략) 이제 팬질 손 털자 할 때 하더라도 내가 내 존재도 모르는 사람한테 혼자만 일방적으로 시간 낭비했구나, 하면서 후회하지는 않게 해주고 싶어요." (데뷔 6주년 팬미팅에서 읽은 아이유가 직접 쓴 손 편지 내용 中)

아이유는 팬들에 역조공(연예인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선물을 주는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팬들을 위해 분식차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등의 일화를 숱하게 남겼다. 팬 미팅 때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팬들에게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주년 팬 미팅에서 고3팬이 '졸업식에 와달라'고 소원을 말하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 초 전라북도 김제 고등학교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팬클럽 유애나와 공동 이름으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역시 스타와 팬 관계의 고정관념을 깬, 그만의 염치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잘 해나가는 것이 팬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고 했다. 본인 팬인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부끄럽지 않은 필모그래피와 음악 활동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역시나 염치의 한 단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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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팬인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부끄럽지 않은 필모그래피와 음악 활동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 로엔

  
"어디 가서 '나 아이유 좋아해'라고 했을 때 창피하지 않은 내가 돼야 하니까. 그러려면 뭐든 잘해야죠. 연기에 도전했으니 욕먹지 않게 해야 하고. 나를 믿어주는 이들이 창피하지 않게 노력해야 해요. 그게 스물한 살의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2013년 12월, 엘르 인터뷰)

이를 아이유는 '책임감'이라 표현했다. "책임감이 제일 저를 이루는 말 같다"(2018년 4월, 데이즈드 인터뷰)고 했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이 일을 이어온 데는 책임감이 가장 컸어요. 책임감이란 팬들에게서 와요. 내가 그만큼 받아먹었으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겠고." (2013년 11월, 엘르 인터뷰)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누군가 아무리 저를 하찮게 봐도, 저보다 저를 하찮게 볼 수 없다"(2013년 11월, 쎄씨)고 단언할 만큼 스스로에 냉정하다.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해요. 연예인으로서 예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니 체중 관리도 해야 하고. 그 중 가장 엄격한 건 가사 쓰는 거죠. 곡 쓰는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피곤하게 구는 거 같아'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해요. 가장 까다로운 잣대를 든 사람은 제 자신이고요." (2015년 10월, 쎄씨 인터뷰)

판사 박주영, 배우 김남길... '염치주의자'와 아이유의 공통점

자연인 이지은과 연예인 아이유와의 간극을 인식하고 노력한다는 점, 스스로가 자신의 기준점이 되는 것, 자신의 일에 대해 엄격한 책임감을 갖는 것, 이제까지 '염치주의'로 인터뷰한 이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지점이다.

박주영 판사는 "법정에서의 모습을 자연인으로서 못 따라갈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 개인적인 모습을 최대한 공적인 모습에 가깝도록 도와주는 게 염치"라고 했다. 아이유 역시 '이지은'과 연예인 '아이유'의 간극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이지은'은 최대한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단순하려고 하죠, 그리고 '아이유'는 좀 더 신중히 행동하고 생각이 무척 많아요. (대중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달라요"(2015년 10월, 쎄씨 인터뷰)라고 말했다. '아이유'로서 자기만족 기준치를 높게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나(이지은)를 혹사시켰다"(2019년 10월, 데이즈드)고도 했다.

배우 김남길은 "나 자신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지고 작아지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없어졌다"고 했다.

아이유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말에 책임감을) 많이 느끼죠, 말을 내뱉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요즘 어휘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유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가장 까다로운 잣대를 든 사람은 나 자신"(2015년 10월, 쎄씨 인터뷰)이라고 말한다.

비로소, 행복

그렇게 스스로를 닦아 세운 지금, 그는 "내 안에 좋은 게 꽤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무대를 하고 났을 때 '아, 나 너무 멋져, 나 너무 좋아' 이랬던 적이 10년 동안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근데 희한하게 가사를 딱 완성하고 나면 제가 너무 좋은 거예요, 스스로가. 가사는 꼭 남겨야겠다 싶은 것만 딱 함축적으로 남겨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남은 핵 같은 거죠. 그런 걸 보면 '내 안에 꽤 좋은 게 있네' 생각이 들어요." (2018년 4월, 데이즈드)

내 안에 '좋음'을 발견하게 된 건, 본인 음악 작업에 지휘자로 두 발을 단단히 뿌리내리면서 가능했던 듯하다.

"(슬럼프 때) 프로듀싱을 내가 해야겠다 결심했어요. 거품이 날아가 요만해지든 간에, 불안하고 근사하게 사느니 초라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 해서 프로듀싱 하게 됐어요." (2018년 KBS <대화의 희열>)

그리곤, 비로소 "행복하다"고 했다.
   
"저는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땐 행복할 틈이 없었거든요. (자기만족) 기준이 높아 저를 혹사시킨 것 같고요. 그러다 <팔레트> 앨범 내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좀 더 마음을 내려놓게 됐어요. 요즘은 사랑이 중요한 거 같아요. 일에 대한 사랑, 하루에 대한 사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사랑 등 다채로운 사랑을 음악에 담고 있어요." (2019년 10월, 데이즈드)

이제 그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그것도 노래 <백만송이 장미>같은 사랑을 주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진짜 성공한 인생 같아요. 진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18년 6월, 유튜브 채널 IU TV)

19살의 아이유는 "날 쳐다봐줘 안쓰러운 날 예뻐해 줘"(2집, 길 잃은 강아지)라는 가사 속 주인공이 "스스로의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8년 후 그는 한껏 성장해 이제는 '포용하는 사랑'을 얘기하게 됐다.

그런 그에게 직접 묻고 싶다. 당신을 이토록 성장시킨 건 무엇인지, 아이유에게서 '염치'를 발견한 것이 오독은 아닐지. 아이유와 얘기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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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아이유! 27살, 아이유는 비로소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유에게 직접 묻고 싶다. 당신을 이토록 성장시킨 건 무엇인지, 아이유에게서 '염치'를 발견한 것이 오독은 아닐지.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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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염치주의 #팬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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