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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괴롭힌 인사가 총장, 예술대학 맞나?

계원예술대 학생들, 블랙리스트 책임 송수근 총장 사퇴 압박

등록 2019.11.17 19:12수정 2019.11.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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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계원예술대학 법인 사무국 앞에서 열린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규탄 집회 ⓒ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블랙리스트 총장 송수근은 사퇴하라!!!"
 

15일 오후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계원예술대학교 법인 사무국 앞에서 열린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송수근 총장의 사퇴를 하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예술인 괴롭힌 인사가 예술대 총장이라니

지난 8월 임명된 계원예술대학교 송수근 총장 논란이 2019년 2학기로 이어지고 있다. 송수근 총장은 박근혜 정권에서 문체부 기획조정실장과 차관을 거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실행에 책임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재판 결과 등을 통해 드러난 인사다. 지난 9월 2학기 개강과 함께 시작된 반대 투쟁이 한 학기 내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블랙리스트 실행자가 예술대학 총장? 즉각 사퇴해야")

학생들은 송수근 총장을 '블랙리스트 총장'으로 지칭하면서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나, 송 총장을 이를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은 학교 이사회나 문체부의 결단을 요구하며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교수들이 블랙리스트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교수 비대위 대표인 융합예술과 성기완 교수는 즉석 연대발언을 통해 "자격이 없는 총장이 오는데 교수들이 막지 못해 미안하다"며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학생들의 투쟁에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나타냈다. 아울러 "송수근 총장이 학교를 떠나고 이 사태가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15일 오후 열린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규탄 집회 후 학내를 돌며 시위를 벌위고 있는 학생들 ⓒ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임인자 연극연출가는 송수근 총장을 히틀러의 측근으로 나치 독일의 핵심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비유하며 "아이히만도 자기가 주어진 일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재판기록 등을 통해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게 드러났음에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송수근 총장은 학내 공청회에서 "블랙리스트에 관해, 나는 취합 보고만 했을 뿐 총괄 기획자도, 실행자도 아니다"거나 "죄송하게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내 과거의 혐의가 총장직을 그만둘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실행으로 실형을 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1심 판결문에는 송수근 총장이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취합·정리한 후, 이를 장관을 통해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자 김기춘이 기뻐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날 자유발언에서 총장 퇴진을 요구한 한 학생은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예술'을 빼야 한다"며 "어떻게 문화예술인들을 괴롭힌 인사를 총장으로 앉힐 수 있는지, 이게 예술학교가 맞냐"고 분노를 나타냈다.

블랙리스트 총장 물러나고 자숙해야

학생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이날 '송수근, 계원예대, 법인계원학원, 파라다이스 그룹, 교육부, 문체부에 부치는 요구안'을 통해 총장퇴진에 미온적인 교수협의회와 노조의 태도에도 비판을 가했다.

계원예대 교수협의회와 노동조합이 지난 10월 11일의 3주체 회의에서 '대학평가대비'라는 명목 하에 사실상 블랙리스트 총장을 지지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이 있어야 우리가 모두가 있다'며 총장 사퇴요구에 반대하는 노조의 주장은 블랙리스트 총장과 계원예술대학교를 동일시하는 처참한 인식을 드러냈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는 교수협의회의 주장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적당히 타협 가능한 사안으로 간주하는 후퇴한 인식을 스스로 폭로했다"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학생들은 '송수근 총장이 학생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학내 운동의 동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개인 사비로 학교에 기부금을 내거나, 졸업전시 다과 비용을 지원하며 학내 주체들을 회유해가고 있다"면서 "그러나 학생들이 요구한 것은 적당한 선행으로 미담을 만들어내라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인 탄압의 선봉에 섰던 '건전콘텐츠 TF'의 단장으로 복무하며 블랙리스트에 공모했던 책임을 인식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나 자숙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었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또 "일찍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서도 적시되어 있듯, 그의 블랙리스트 공모 사실은 명백하며, 어설픈 기부금으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최소한 그의 기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블랙리스트에 선정됨으로써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왔을 피해자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5일 오후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규탄 집회 후 학내를 돌며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규탄 집회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기여했던 인사가 예술대학 총장을 맡는 것 자체가 염치도 없는 데다, 블랙리스트 문제의 해결이 아직 멀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학생들과 문화예술인들은 교육부와 학교 재단이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는 "계원예대 이사회와 계원학원, 파라다이스 재단은 송수근 총장을 파면시키고 그간의 일방적이고 파행적인 총장 선출과정에 대한 사과와 민주적인 개선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공모자가 총장으로 승인된 사태에 대해 교육부가 입장을 밝히고 개입할 것과, 송수근을 비롯하여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문화예술 관련 부처의 차관급 인사들에 대해 블랙리스트 공모 혐의를 문체부가 재조사하라"고 압박했다.

이날 집회가 끝난 후 학생들과 문화예술인들은 퍼포먼스와 공연을 한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와 함께 학내를 돌며 블랙카페트를 설치하고 총장실에 항의 성명을 전달했다.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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