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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역 유명 빵집의 위기 "이럼 우리만 죽습니다"

[인터뷰] 빵집 주인 이향실씨가 서울'고통'공사 팻말 든 까닭

등록 2019.11.15 07:23수정 2019.11.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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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위기에 놓인 서울지하철 6·7호선 전차상인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화랑대역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이향실씨는 기자회견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김종훈

    
"맨 죽는 건 우리 서민들뿐이다. 결국 우리만 죽어나갈 뿐이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안에서 3년째 빵집을 운영하는 이향실씨가 씁쓸하게 웃으며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2017년 2월에 대출을 받고 이것저것 다 끌어 모아 2억여 원을 만들어 매장을 인수했는데 (서울교통공사로부터) '가게를 빼라'는 소리만 듣고 있다"면서 "새벽 5시에 제가 출근하고 남편이 새벽 1시에 퇴근하며 자리 잡은 곳이다, 이제 겨우 대출금 반 정도만 갚은 상태인데 이렇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이씨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위해 지난 10월 25일 장사를 중단한 이후 2주 만에 잠시 빵집 불을 켰다. 인터뷰 시간은 불과 한 시간 남짓. 그런데도 십 수 명의 시민이 "이제 다시 장사하는 거냐?", "빵은 없는 거냐?", "커피는 안 파느냐?"라며 매장 문을 열었다. 그 때마다 이씨는 "죄송하다"면서 "곧 방법을 찾겠다"라고 답했다.

이씨가 지난달부터 장사를 못하는 이유는 표면상으로는 단순하다. 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내를 살피면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만 않다.

지난 2014년부터 지하철  6·7호선 지하철 상가 점포 406곳을 임대 관리하던 GS리테일이 서울교통공사와의 계약 연장을 '포기'하면서 이씨와 같은 전차인(임차인에게 다시 임차를 하는 형태)들은 갑자기 영업을 못하게 됐다. 보통 2억 원 가까이 투자한 전차인들은 계약만료 기간까지 원상복구를 하고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 기한이 11월 24일까지다. 이씨는 매장 앞에 '단전‧단수 하지 마시오'라는 손 글씨 메모를 붙여놨다.

GS리테일과 지하철  6·7호선 운영주체인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3년 10월 지하철  6·7호선 역사 내 유휴공간을 상업 및 휴게 공간으로 개발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기본 5년 계약에 추가 5년이 연장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GS리테일은 2014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406개 매장을 사용할 전차인을 모집했다.


당시 GS리테일과 계약을 맺은 전차인들은 화랑대역 빵집 주인 이씨와 같은 중소상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GS리테일 같은 대기업이 서울교통공사와 5년 기본에 5년을 추가로 계약한 만큼 10년 정도 장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약했다. 이씨는 "GS리테일도 그렇게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GS리테일은 공실이 생겨 적자가 늘자 계약 연장을 포기해 버렸다. GS리테일은 지난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후 5년 계약을 유지하는 건 기업의 존립 목표에 맞지 않다"라면서 "후속 사업자가 빨리 결정돼 기존에 입점한 분들의 임대계약이 승계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법적인 의무는 아니지만 도의적인 부분에서 해결해 드리려고 노력 중이다. 다만 (서울교통공사가)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힘든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서울교통공사는 같은 날 통화에서 "(전차인) 계약을 맺은 건 GS리테일과 상인들"이라면서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계약된 대로 깨끗하게 돌려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이행이 안 되면 보증금 압류 등 페널티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계약 만료 2주를 앞둔 11일 오후 이향실씨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매장 정문에 "단전-단수 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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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실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화랑대역 빵집 매장. ⓒ 김종훈

  
- 문 앞에 '단전‧단수 하지 말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그렇다. 전기를 끊고 물도 끊는다는 연락이 와서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7호선) 신풍역 빵집에는 연락도 없이 끊어 버렸다. 그래서 먼저 써 붙였다. 다행히 단전과 단수를 한 상황은 아니다."

- 문을 닫았는데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장사를 언제 하냐'라고 묻는다.
"손님들한테는 그저 죄송할 뿐이다. 단골이 참 많았다. 보다시피 계속 와서 상황을 묻는다. 저희가 커피랑 샌드위치를 맛있고 싸게 만들어 팔았다. 이 때문에 출근하는 직장인과 (서울여대) 학생들이 8시부터 9시까지 정말로 많이 왔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 언제부터 장사를 하지 못한 것인가?
"9월 초에 '더 이상 장사를 해선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대응할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포기하고 접어야 할지 추석 내내 고민한 뒤 국민청원에 올렸다. 억울해서 안 되겠더라. 국민청원을 올린 다음 국민신문고에도 올렸다. 그랬더니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연락이 왔다. 덕분에 6·7호선 매장을 조회해 신풍, 합정, 건대 등 빵집 점주님들을 만났다. 같은 상황인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공동대응을 하게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확인하고 시정한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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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위기에 놓인 서울지하철 6·7호선 전차상인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김종훈

 
- 공동대응을 결의한 후 어떤 활동을 했나?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을 만났다. 정동영 의원 사무실도 찾아갔다. 시의원과 구의원도 만났다. 이후 지난 10월 17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련 질문을 받고 '확인하고 시정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길래 시장 비서실에 문의했다. 답이 왔는데 '서울시는 그 문제에 대해 조치하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발 시장님께 관련 기사라도 올려 달라'라고 사정했다. 편지도 보내고 공문도 보냈다. 모두 허사였다. 서울시 대신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서울교통공사는 2017년 5월 31일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합병으로 신규 설립된 지방공기업이다. '서울교통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의해 서울특별시가 100% 출자 하고 있다. 이향실씨를 비롯해 서울  6·7호선 상가 점포 전차인들이 박 시장에게 관심과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서울교통공사와 GS리테일 등과 직접 만난다고 들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11일 기준) 네 번 만났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같은 말만 반복됐다. 계약이 끝나면 장사 접으라는 것이다. '다음 계약이 결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장사를 하게 해달라'라고 요청했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어렵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차인과 직접 계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약이 만료되면 예외 없이 폐점을 강행했다'라며 '같은 장소에서 계속 영업하고 싶으면 10월 24일까지 모든 시설을 자발적으로 철거한 뒤 새롭게 임차한 업체를 통해 전차하라'라고 한다. 시설투자에 이미 2억 원이 넘게 들어갔는데, 계약이 종료되면 내 손으로 철거하고 다시 새로운 임차인과 새로운 계약을 하라는 뜻이다. 다시 2억 원이 넘는 돈을 또 들여서 들어와야 한다."

"안 나가면 위약금 1/n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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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실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화랑대역 빵집 매장. ⓒ 김종훈

 
- 일부 빵집은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도 남편과 함께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GS리테일이 10월 25일부터 1주일간만 문 닫으면 자신들이 어떻게든 서울교통공사와 협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다시 문을 열려고 하니 재료부터 감당이 안 됐다. 당장 11월 24일에 어떻게 될지 몰라 장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지켜보고 있는 거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건 GS리테일이 왜 문 닫으라고 했느냐는 거다. GS리테일은 협박도 했다. 우리가 계속 문을 열면 자신들이 위약금을 내야 하는데 그걸 우리에게 1/n로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시라고 했다."

- 이대로 버티다 강제철거가 들어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신풍점은 이미 계고장이 나온 상황이다. 어떤 상황도 예측할 수 없다. 답답할 뿐이다. 24일까지는 일단 지켜봐야 한다."

-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빵값이 밀렸다고 독촉 전화를 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소득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고 있다. 우리가 매월 10일, 20일, 30일에 빵값을 프렌차이즈 본사에 내야 하는데 지난달 말에 장사를 중단한 이후 30일 빵값을 못 냈다. 그랬더니 다음날 연락이 와서 '연체 됐으니 돈 보내라'라고 말하더라. 본사는 지금 우리 상황을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빵값 하루 밀렸다고 바로 연락해 돈을 보내라고 한다. 죽는 건 우리 서민들뿐이다. 정부나 대기업은 절대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다."
  
- 압박과 부담이 클 텐데 어떻게 버티나?
"서울교통공사 담당 직원들은 의지가 전혀 없다. 우리가 윗사람 좀 만나게 해달라고 기자회견도 하고 노력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렵게 만난 회의 자리에서도 '빨리 시간만 지나가라'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귀찮아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너무하다. 그런데도 버티는 건 단골과 시민들 때문이다. 방금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었는데 사장님이 '힘내라'면서 밥값도 받지 않았다. 단골들도 불 켜져 있으면 들어와 항상 '힘내라'라고 말한다. 이 힘으로 버티고 있다."

이에 대해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에 "이 모든 사태는 처음부터 판을 이렇게 짜고 변칙계약을 한 서울교통공사에 책임이 있다"면서 "잘못한 서울교통공사가 결자해지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13년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지하철  6·7호선 내 유휴공간에 대한 개발을 시작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일일이 중소상인과 임대차 계약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변칙적인 방법을 쓴다. 중소상인들 대신 GS리테일과 임대차 계약을 해서 GS리테일이 개별 상인들과 전대차 계약을 맺도록 했다. 이렇게 설계를 하면 서울교통공사는 아주 좋은 구도가 된다. 공실의 위험을 GS리테일에 떠넘겼고, 계약만으로 1000억 원 정도의 이익을 봤다. 상가 개발 역시 GS리테일에 넘겼다. 400여 명이 넘는 상인과 진행한 계약 관련 행정절차도 모두 넘겼다. 문제는 상인이다. 갑인 서울교통공사와 을인 GS리테일이 계약을 임의대로 종료해 버리면 병인 상인들은 공중분해 된다. 지금  6·7호선 상인들이 이 상황에 놓인 거다. 서울시와 교통공사가 해결해야 한다."

이날 이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에게 "더 이상 팔 수 없다"면서 빵집에 남아 있던 쿠키와 과자를 건넸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안부를 묻는 시민들에게도 "커피콩이 남았다"면서 공짜로 커피를 내려 건넸다.
#서울지하철 #박원순 #서울교통공사 #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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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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