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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몸은 어디까지 음란한 걸까

다음에서 내 블로그 게시물을 차단했다... 인간을 존중하는 '검열'은 불가능한가

등록 2019.11.14 13:40수정 2019.11.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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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게시물이 검열당했다. '해당 글은 관리자에 의해서 삭제 조치된 글입니다'라는 공지문과 함께 게시물 앞에 빨간 글자로 '규제'가 떴다. 너무 놀라 메일을 확인해 보니 다음(Daum)으로부터 게시물이 '청소년유해물(음란물)'로 분류되어 조치되었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검열 통보 메일 블로그 게시물이 '청소년유해물'(음란물)로 분류되어 블라인드 처리되었다는 다음클린센터의 메일. ⓒ 다음클린센터

 
나는 여성들의 이야기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매번 모임 후에 모임후기를 블로그에 남기는데, 이 때마다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미지들을 넣어서 작성한다.

몇 주 전의 모임 주제는 '유방, 성기, 성기기관'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몸이지만 마음대로 만지지도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한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재클린 세커(Jacqueline Secor)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는 몸에 대한 강박장애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여성성기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업물들이 주변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자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성기 그림을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jacquelinesecorart/)과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jacquelinesecorart)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나는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과 그의 그림이 딱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의 그림 중 하나를 게시물에 넣어 후기를 작성했었다. 그 게시물이 검열된 것이다.

글의 맥락 안에서 이미지를 살펴보지 못해 오해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고객센터를 통해 여러 번 이의를 접수하였으나 돌아오는 건 기계식 답변뿐이었다.

나는 내용의 맥락상으로도 이미지가 유해하다고 판단되는지 계속 문의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와 인터넷 뉴스에서도 재클린 세커의 그림이 올라와 있는데 다음(Daum)만 유해음란물로 판단하는 기준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고객센터의 답변은 매번 같았고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기계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매번 반복해서 내미는 '운영정책'과 '법률에 의거한 청소년 보호정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서로 꼬리를 무는 도돌이표에 불과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과도한 신체노출이나 음란 행위를 묘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해하기 때문입니다'라는 식이었다. 즉, 다음(Daum)은 과도한 신체노출 중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신체 노출' 자체를 맥락없이 청소년 유해로 등식화하고 있는 셈이었다.


여성의 몸이 여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여성의 몸은 음란한 대상이 아니라는 글과 이미지가 '여성의 몸은 음란하다'는 규제에 검열 당했다. 나는 이상을 이야기하다 현실에게 멱살을 잡힌 느낌이었다.

여성의 몸, 그 검열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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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의 '네이팜 소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가장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평가되는 '네이팜 소녀'의 사진 ⓒ AP=연합뉴스

 
개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린 요즘 검열 전쟁은 전에 없이 치열해지고 있다. 하루에 몇억 개씩 쏟아져 나오는 개인 콘텐츠 중 '유해한' 것들을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콘텐츠 양과 그에 비례한 무거운 책임론에 짓눌려서인지 인터넷 미디어 업체들은 '일부 영역'에서 과도하게 예민하고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서 그렇다.

인스타그램은 페미니즘 시인인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상황 사진을 삭제했고, 최근에는 여성의 유두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죄없는 케이크 사진을 검열하여 해당 계정을 차단했다.

검열에 관해서라면 페이스북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몇년 전 페이스북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여인의 나체 모습이라며 삭제했고, 베트남전의 참상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을 소아 누드로 여겨 삭제했다가 호된 반발에 부딪혔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을 멈추라는 시위를 위해 상의를 탈의한 여성활동가들의 사진을 삭제했다가 다시 복구한 적도 있다.

가장 황당한 일은 유방암 예방 단체가 올린 영상에서 두 개의 분홍 동그라미가 여성의 유방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이다. 이에 반발해 이 단체는 네모 유방 그림을 올려 이를 비꼬았다.

유독 '여성의 유두' 노출에 예민한 포털과 소셜 미디어들의 검열에 반발하며 한 사진 예술가는 유명인이 기부해준 '남성 유두' 사진으로 사람들의 중요부위를 가리고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유방암예방 캠페인 속 유방 검열 스웨덴의 유방암 예방단체가 검열당한 둥근분홍유방 그림 대신 네모유방 이미지를 올리며 페이스북의 검열을 비꼬았다. ⓒ swedish cancer society


"음란하고 유해한 성적 흥분을 일으키며..." 

다음고객센터에서 제시한 규정들을 살펴보았지만 모두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내용들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도 살펴보았는데, '성기' 이미지에 대한 규제내용은 있으나 이 또한 이제까지의 재판들에서는 '맥락' 안에서 해석되었던 부분이다.

대법원은 음란의 개념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서, 전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아니하는 것'
- 대법원 2008.3.13, 선고, 2006도3558 판결
 
예술과 외설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되어 왔다. 외설로 단죄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 예술로 재평가되기도 하고, 상까지 받으며 추앙되던 예술이 예술가의 성범죄 행위가 드러나면서 창작자의 삐뚤어진 성인식을 드러내 주는 증거로 바뀌기도 한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내 블로그 글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도 그 이미지가 '음란하고 유해한 성적 흥분을 일으키며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인지 나는 다음(Daum)에 묻고 싶다.

검열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

인터넷 미디어 업체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쏟아지는 게시물의 홍수 속에서 일일이 유해물을 가리기 어려우니 시스템대로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게다가 유해 게시물을 검열하는 직원들의 심리적 어려움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페이스북은 현재 전 세계 7500명의 콘텐츠 검수자를 두고 아동 성적 학대부터 수간, 참수, 고문, 강간 및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와 비디오를 검수하고 삭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게시물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는 취약한 상태다. 인간인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AI에 일차적 처리를 맡길 필요도 있다. 게다가 범죄와 연루된 유해물의 경우에는 신고와 알고리즘, 규정에 따른 신속한 조치가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AI는 아직 맥락을 잡아내지 못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인간을 조롱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삭제된 내용에 대해 이의창구를 마련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잘못 처리'했을 경우에 대해 정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맥락을 살피며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이러한 과정을 '힘겹게' 거쳐서 복구된 경우들이다.

검열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그리하여 검열의 기준도, 검열하는 과정도, 그 이후의 조치도 '인간 존중'이라는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내가 겪은 검열도 제도가 보완되어야 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서 나는 다음(Daum)과 소통하며 미디어가 인간존재에 대한 존중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Daum)은 귀를 닫았다. 내가 이 곳에서 홀로 소리치고 있는 이유다.

검열의 힘은 소통 안에서만 정의롭다
 

다음 측의 검열로 해당 블로그 제목 옆에는 빨간 '규제'딱지가 붙었다. ⓒ 윤주애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은 "소셜 미디어에서 작품을 검열 당하는 건 내 영혼이 파괴되는 것과 똑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생각과 내면을 표현한 창작물은 정체성과 연결된 부분이며, 이에 대한 검열은 '너는 사회에 안 맞는 유해한 인간'이라는 도장찍기와 다름이 없다.

게시물이 검열된 이후 난 위축되었다. 심지어 내가 연거푸 이의를 제기하자 다음은 "추후 운영원칙에 어긋난 게시물이 발견될 경우 블로그 접근 제한, 로그인 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답을 주었다. 이제까지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블로그는 사실 셋방살이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난 이제까지 쓴 내 블로그 글들이 너무 소중하기에 계정 폐쇄를 상상할 수 없었고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내 게시물이 검열되었을 때 정확히 어떤 지점이 유해하다는 것인지 문의했지만 세부규제 사유는 악용의 소지가 있어 안내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명확한 기준도 모르고, 소통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는 일방적으로 조치를 받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은 인간사회가 민주적으로 변화하고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개인 미디어 또한 진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을 서로 존재로 존중하는 문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 존중을 위해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며 책임도 크다. 다른 이를 대상화하지 않는 자기표현에 대해 검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혐오표현에 대해 검열을 들이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열 이후의 소통'에 인력을 투자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번거로우며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거대 인터넷 미디어는 아무렇지 않게 귀를 닫은 것이다.

* 내 블로그는 여전히 검열조치가 풀리지 않았고 나는 다음(Daum)이라는 벽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해당 블로그의 내용(https://findmygoddess.tistory.com/171)과 문제가 된 이미지(https://www.instagram.com/p/BJRHzdYDF9F/?utm_source=ig_web_copy_link)는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올려진 글입니다.
#여성의몸 #인터넷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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