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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도 오르지 못한 그곳, 제가 넘었습니다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탐방기 2] 해발 3000m에 닿기 위한 왕복 10시간의 여정

등록 2019.11.15 16:00수정 2019.11.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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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으면 물도 많은 법이다. 산림지대의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 작은 폭포도 많이 있었다. ⓒ 박태상

 
킬리만자로 산의 성수기는 1월과 2월, 그리고 9월이다. 이때가 가장 따뜻해서 다양한 식물과 청아한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월부터 5월까지는 구름이 많이 끼고 비와 눈이 많이 와서 비수기다. 6월에서 8월, 9월에서 12월은 준성수기에 해당한다.

우리 팀은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누우 등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이동하는 시기를 선택하다 보니 준성수기인 8월에 킬리만자로를 찾게 되었다. 그래도 유럽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마랑구 게이트는 상당히 붐볐다.


킬리만자로의 등반 루트는 크게 대여섯 코스로 나뉜다. 룽가이(Rongai), 마랑구(Marangu), 응웨카(Mweka), 음브웨(Umbwe), 마치메(Machaime), 쉬라(Shira) 루트 등이 그것이다.
 

한스 메이어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 한스 메이어(Hans Meyer)는 1889년에 유럽 최초로 킬리만자로산을 등반한 산악인이다. ⓒ 박태상


많은 관광객과 여행사들이 마랑구 루트를 선호한다. 경사가 완만해서 등반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올라갈 수 있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다른 코스에는 가파르고 돌이 많거나 절벽과 벼랑이 있는 등 험난한 코스가 자리잡고 있다.

킬리만자로 산의 가장 높은 지점은 바깥쪽 분화구의 남쪽 가장자리이다. 키보와 마웬지 사이에는 면적이 약 3600㏊가 되는 고원이 있는데, '안장(the Saddle)'이라 부른다. 이는 아프리카 열대지역에서 가장 넓은 고지대 툰드라이다. 특히 서쪽과 남쪽 산비탈에는 깊은 방사상 계곡이 있다. 킬리만자로 산에는 현재 휴화산이지만, 화산 폭발 때 생긴 분화구가 곳곳에 있다.

마랑구 루트는 진입로부터 마치 영화 <쥬라기 공원> 같은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가득 들어찼는데, 눈에 보이는 나무들이 키가 매우 큰 교목에다가 줄기와 잎이 풍성하게 늘어져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괴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마귀가 사는 동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는 의구심도 들며 비장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산지림 지대는 고도 1300m(건조한 북쪽 산비탈에서는 약 1600m)와 2800m 사이에서 킬리만자로 산을 둘러싸고 있으며, 2700m 위의 산림은 국립공원의 영역에 속한다.

진입로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드디어 조용필(<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의 가수)도 오르지 못한 '킬리만자로'를 등반한다.


무섭다는 고산병, 이 정도일 줄이야
 

킬리만자로 산림지대인 몬타네 숲의 모습 영화 <아바타>, <쥬라기 공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울창한 산림지대의 숲을 실제로 접하게 되니 입이 쩍 벌어졌다. ⓒ 박태상

 
온통 초록빛과 푸른색으로 하늘을 뒤덮은 숲은 마치 한국의 광릉수목원이나 제주도의 수목원에 입장한 느낌이었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찬 숲은 그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같이 느껴졌다. 푸른 숲에서 피톤치드(Phytoncide)를 온몸으로 받는다는 것은 즐겁고 상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백 년 된 나무들과 각종 풀들이 시야를 채우는 순간도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1시간쯤 올라가자 숨이 차고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처럼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혈압도 수직 상승하는 듯 가파르게 올랐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신장은 약간 큰 탄자니아 가이드를 보면서 감히 짐작했었다. 북한산을 수백 번 넘은 나의 등반 구력을 감안하면 그를 쉽게 제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착각이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내가 따라가면 이내 앞서가고 다시 따라가면 또 앞서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탄자니아 가이드는 심지어 숨도 가쁘게 내쉬지 않았다. 

고산병이 무섭다는 소리는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았지만, 현실에서는 더 처절하게 다가왔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벌써 우리 그룹은 다섯 갈래쯤 찢어져 있었다. 애초 출발할 때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가기로 다짐했건만 몸이 말을 안 듣는 일행들이 많았다.
 

킬리만자로는 생태계의 보고 도처에서 얼룩 콜롬버스 원숭이, 파란 원숭이, 침팬지, 들쥐, 두더지, 다양한 빛깔의 새 등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뛰쳐나와서 카메라가 약간 흔들렸다. 사람 몸통만한 크기의 침팬지로 생각된다. ⓒ 박태상

 
생수를 마시면서 두 다리 뻗고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숲으로 난 길을 한참 걷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고함을 쳤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털이 많은 생물체가 쏜살같이 등산로에서 숲으로 달려가 버린 것이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혹시 조용필의 노래에서 듣던 표범이 나타난 것일까? 머리털이 쭈뼛 치솟았다. 그런데 그렇게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생물체는 오랑우탄이나 침팬지가 아닐까 추정해봤다.
      
역시 키가 상당히 크고 털로 온몸을 덮은 탄자니아 침팬지였다. 킬리만자로에는 10~150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다는 정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국립공원에 일부 속하는 산지림 지대를 포함해 킬리만자로 산 전체에는 영장류 7종, 육식동물 25종, 영양 25종, 박쥐 24종 등 포유류 140종(87종이 숲에 서식)을 비롯해 매우 다양한 생물 종이 살고 있다. 대형 포유류는 최소 7종이 수목한계선 위에 서식하는 것으로 기록됐으나, 저지대 삼림에 더 많은 종들이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킬라만자로를 탐방하다가 가장 쉽게 만나는 포유류로는 침팬지와 산양, 그리고 버팔로가 있다. 수목한계선 위에서 가장 흔한 포유류는 이탄지에서 나타나는 회색다이커영양(grey duiker)과 일런드(eland), 수목 한계선 위 곳곳에서 보이는 부시벅(bushbuck, 영양)과 붉은다이커영양(red duiker), 이따금 숲에서 빠져나와 황야나 초원으로 이동하는 버펄로(buffalo) 등이 있다. 또 드물게 금두더지를 비롯한 설치류를 만날 수도 있다.

특이한 새들도 많이 목격했다. 킬리만자로 산 전체에는 고지 조류(highland bird) 179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높은 지역에 서식하는 수는 매우 적다. 여기에는 주로 시라의 산등성이에 가끔씩 출현하는 수염수리(lammergeier), 지빠귓과의 작은새(hill chat, Cercomela sordida), 개개비사촌, 진홍머리공작태양새 등이 있다. 한마디로 킬리만자로는 인류가 영원히 보호하고 지켜야 할 생물자원의 보고인 것이다.

자연의 풍채와 마주하다
 

만다라 산장(Mandara Hut)의 모습 말랑구 게이트에서 약 8km 떨어져 있으며 3시간 정도 등산을 해야 도달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길게 휴식하는 곳이며, 키보 정상까지 가는 관광객들은 이곳부터 세 차례 더 산장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 산장사이의 거리는 약 8~10시간 걸린다. ⓒ 박태상

 
한 세 시간쯤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첫 번째 산장인 만다라 산장(Mandara Hut, 해발 2700m)에 도착했다. 일행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더 이상의 등반을 포기한다고 손을 든 사람은 산장에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을 추려 계속 전진했다. 물론 가이드들에게 팁을 좀 더 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자 가이드 중에서 팀장급인 친구가 앞장을 섰다. 다같이 해발 3000m를 조금 더 지난 곳까지 올라가서 만년설로 덮인 킬리만자로의 봉우리를 보겠다는 일념이었다.
 

해발 3000m를 올라가서 접하게 된 킬리만자로산 중턱 고산식물지대의 모습 멀리 정상의 만년설이 아름다운 풍채를 드러내고 있다. ⓒ 박태상

  

마운디 분화구 위쪽의 나무들 모습 마운디 분화구(Maundi Cratter Rim)를 지나서 만나게 된 초입 산림지대와 또 다른 모습의 나무들과 초원지대의 잡풀들의 풍광이다. ⓒ 박태상

 
마운디 분화구(Maundi Cratter Rim)라는 표석이 있는 곳에 다다르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우리의 억새풀과 비슷한 식물로 뒤덮여 있는 광활한 초원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한라산이나 소백산의 정상 아래 고산 식물지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의 초입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도 사람 키 한길이 넘는 잡목들로 우거져 있었으며 간혹 탁 트인 잡풀들이 뒤덮인, 초원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마 이런 공간에서 산양과 버팔로가 서식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해보았다. 간혹 표범도 발견된 적이 있다는 소리를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휴식시간까지 합쳐 왕복 9~10시간이 걸린 등반을 마치고 일행들 모두는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을 옮기며 마랑구 게이트로 모여들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필자를 비롯해서 마지막 일행이 들어오는 데까지 거의 50분의 시간 차가 있었다. 종아리 근육통을 사흘동안 앓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표정들은 모두 밝았다. 유명 가수의 노래 가사로만 들었던 킬리만자로 산을 드디어 넘었다는 인간승리의 상쾌한 기분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행문화> 11~12월호에도 실립니다.
#킬리만자로 #만다라산장(MANDARA HUT) #마운디 분화구 #한스 메이어추모비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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