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수능 샤프가 도대체 뭐길래?

교육 시스템, 진지한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 요구돼

등록 2019.11.11 08:52수정 2019.11.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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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샤프 제품명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 청와대

 
가뜩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이번에는 샤프 펜슬 하나 때문에 또 다시 시끄럽다. 지난 2006학년도부터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교육 당국은 수능 시험 당일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에게 수능 샤프를 제공해 왔다. 그런데 이 수능 샤프가 교체된다는 소문이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이에 수험생들이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샤프 선정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품명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자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능 샤프 제품명을 공개하라'는 취지의 청원 글까지 올라왔다.

그깟 샤프가 뭐길래 수험생들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걸까? 언뜻 생각할 땐 단순한 필기구 하나만을 바꿨다고 수험생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구나 수험생 모두에게 같은 제품의 동등한 조건을 제공해주는 셈이니, 그다지 문제가 될 소지도 없을 법한데 말이다.

하지만 직접 시험을 치르게 될 당사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그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단 하루 동안 펼쳐 보여야 하는 심리적 압박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들에겐 필기감도 온전한 실력 발휘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건 가운데 하나였다. 시험장에서 사용하게 될 샤프와 동일한 제품을 미리 구입하여 필기감을 자연스레 체화시켜 놓아야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자칫 생뚱맞은 필기감으로 인해 평상심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날엔 컨디션 난조를 불러와 시험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에게 수능이 어떤 시험이던가. 수능 당일이 되면 온 나라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관공서 등의 출근이 한 시간 늦춰지고, 항공기와 헬리콥터 등의 이착륙이 금지되며, 군사훈련마저도 뒤로 미뤄지지 않던가. 이토록 온 나라가 시험 하나로 인해 들썩일 정도이니, 직접 시험을 치르게 될 수험생들이 필기감을 호소하는 행위쯤이야 얼마든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정성을 강조하며 정시를 늘리는 방향으로의 대입 전형 개편을 약속했다. 현재 교육부가 이에 대한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이며,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열띤 설전을 펼치고 있는 와중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찬성하는 측은 그나마 정시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전형이라는 주장이고, 반대하는 측은 정시 확대는 결과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부풀리고 서울 강남 등 교육 특구의 득세만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한다. 두 의견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작금의 교육 환경을 놓고 볼 때 뚜렷한 해법 마련과 대안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더구나 교육 당국은 최근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점차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육 체계의 변화는 교육 주체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하는 사안이다. 오죽하면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일컫겠는가. 그만큼 장기적인 비전을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백 년은커녕 교육 수장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라 극심한 내홍을 겪어왔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 주체들에게 돌아간다. 분명한 건 오늘날 교육 시스템이 왜 이토록 누더기가 되어야 했는지 이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에 따르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일부 제도를 바꿔봐야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병폐의 원인은 다름 아닌 '학벌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이 공고한 학벌주의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대입 제도의 개편이나 고교 체계 개편 따위의 일부 시스템의 변화는 찻잔속 미풍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근본적인 틀을 확 바꾸지 않는 이상 작은 것들을 뜯어고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또 다시 맞이하는 수능. 이번에는 수능 샤프가 수험생들의 마음을 불안케 한다. 누군가는 그깟 수능 샤프가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야단법석이냐며 힐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능이 표면적으로는 시험 당일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시험이기도 한 데다 사실은 공정성의 잣대가 되기도 하며, 우리 사회의 모순이 한 곳에 응축되어 발현되는 현상이기도 하기에 나타나는 반응일 것이다.

하물며 수능 샤프 하나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판국이니, 교육의 향방과 교육 주체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게 될 교육 시스템의 변화야말로 얼마나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게 하는지, 교육 당국은 이를 잘 헤아리고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수능 샤프 #수능 #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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