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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골짜기 '비밀의 정원'을 아시나요

경북 의성 금성면 산운마을의 소우당 별서 정원

등록 2019.11.14 15:10수정 2019.11.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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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당 안채. 소우당은 소우 이가발이 19세기 초기에 지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37호로 지정(2000)된 전통 가옥이다. ⓒ 장호철

 
의성으로 귀촌한 벗에게서 산운(山雲)마을 소우당(素于堂) 정원에서 전통 혼례 시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보름쯤 전이었다. 그가 "소우당 알지?" 하고 물었는데, 물론 나는 단박에 어느 겨울날에 그와 함께 들렀던 산운마을과 소우당을 떠올렸다. 그려, 그런데 정원은 잠겨 있어서 담 너머로 곁눈질만 했지.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의 전통가옥 소우당


400년 이상을 이어온 영천 이씨 집성촌 산운마을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 1리에 있다. 2016년 2월, 근처 초전리에 사는 벗과 함께 마을의 고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소우당에 들렀을 때 정원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담 위로 사진기를 들이밀고 사진 몇 장을 찍는 거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9일 오후에 소우당을 찾으면서도 나는 전통 혼례 시연보다는 정원 구경에 마음이 가 있었다. 벗이 괜찮은 정원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정원으로 경북에도 영양 서석지(瑞石池)와 봉화 청암정(靑巖亭)이 있지만, 담양 소쇄원이나 명옥헌 같은 원림을 먼저 보아버린 초심자의 눈에는 정작 '영남 최고의 명원(名園)'이라는 수사가 썩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우당은 현 소유주 이견의 7대조 소우 이가발(李家發, 1776~1861)이 19세기 초기에 지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37호로 지정(2000)된 전통 가옥이다.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하였는데,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 입구(口) 자형 구조였다. 

그러나 여러 해 전 큰 사랑방 뒤에 이어진 작은 사랑방이 태풍 피해로 철거되면서 현재는 ㄷ자형의 평면으로 바뀌었다. 사랑채 앞에 일자형의 문간채가 있고 집의 서쪽에 별도의 담장을 둘러 원림(園林)을 조성하였는데, 내가 보지 못한 곳은 바로 그 정원이었다. 

사랑채에서 정원으로 통하는 협문(일각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내가 만날 풍경이 예사롭지 않으리라는 걸 단박에 눈치챘다. 소나무, 향나무, 대나무, 상수리나무, 산수유나무, 측백나무가 어우러진 작은 숲속에 단풍나무가 은은한 붉은 등불을 켜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후 한 시간 남짓 정원 곳곳을 돌며 그 풍경을 렌즈에 담으면서 나는 연신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원에 들어서면 방문객을 반기는 것은 열십자 모양으로 판 연지(蓮池)와 거기 떠 있는 단풍잎, 그리고 하늘과 숲 그림자다. ⓒ 장호철

   
소우당 별채에 딸린 '특별한' 원림


조선 후기 양식으로 지어진 소우당 별채에 딸린 원림의 넓이는 1600㎡(484평). 규모로 치면 소쇄원이나 명옥헌 같은 큰 규모의 원림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옥 가운데 연못과 수림을 인공적으로 조성하고 그곳에 정자와 같은 건물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소우당 정원은 '특별'하다. 이 정원이 '19세기 상류가옥의 멋과 함께 별서(別墅) 건축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 이유다. 

사랑채 협문으로 정원에 들어서면 방문객을 반기는 것은 열십자 모양으로 판 연지(蓮池)와 거기 떠 있는 단풍잎 그리고 하늘과 숲 그림자다. 소우당 원림은 여느 전통정원에서 만나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 이른바 방지원도(方池圓島)가 아니다. 
 

봉화 청암정의 그것처럼 높지도 않고, 가운데 교각도 없는데, 조그만 동산을 휘감는 연지 물길 위에 걸린 돌다리는 아담해서 정겨웠다. ⓒ 장호철

 
연지가 '열십자' 모양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쉽사리 어떤 모양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형태다. 각 축의 길이와 굵기가 달라서 뒤틀린 엑스(x) 자 모양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점은 경주 안압지와 닮았다.

연지 주변은 두둑하게 흙을 쌓아 언덕을 지어놓았고, 알맞게 굽은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정원의 풍경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이 깊지는 않은데 돌다리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봉화 청암정의 그것처럼 높지도 않고, 가운데 교각도 없는데 조그만 동산을 휘감는 연지 물길 위에 걸린 돌다리는 아담해서 정겨웠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북쪽에 보이는 것은 흔히 '안 사랑채'라 부르는 별당이다. 별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한일자형 건물로 부엌과 안방, 대청과 건넌방을 두었다. 앞쪽으로는 툇마루, 뒤와 옆쪽에는 쪽마루를 냈다. 
 

흔히 ‘안 사랑채’라 부르는 별당.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한일자형 건물로 부엌과 안방, 대청과 건넌방이 있다. 왼쪽의 바위 더미가 비보석이다. ⓒ 장호철

 
별당 오른쪽에는 안채 뒤란으로 통하는 중문이 하나 더 있다. 원림이 남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안주인을 비롯한 여성들도 이용했다는 얘기다. 소우당 원림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중심 영역의 서쪽에 따로 토담을 둘러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에 정원을 조성한 '별서(別墅)'다.

'태양을 뒤로한 아름다운 비밀 정원'

별서는 오늘날의 별장과 같은 뜻으로 저택에서 떨어져 인접한 경승지나 전원에 마련한 거처다. 대개 정침(正寢)과는 따로 두는 별서는 사화와 당쟁의 심화로 말미암은 은일과 도피적 은둔 풍조의 소산이라고 한다. 양산보의 소쇄원이나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조영한 부용동 원림이 대표적 별서다. 

별당 왼쪽에는 소나무와 입석(立石)이 늘어서 있는데 이는 일종의 비보석(裨補石)이다. 소우당은 음기가 강해 남자들이 장수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원 한쪽 옆에 남근석을 꽂아두어 음양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또 남쪽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으려고 여러 개의 돌비석을 병풍처럼 둘러놓았다. 

별당과 연지 사이에 정자 하나가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원두막 모양 정자인데 기와를 얹었다. 십수 년 전에 들인 것이라는데, 처마 아래 기둥 위에다 나무판에 돋을새김한 '堅連亭(견연정)'이라는 편액도 달아놓았다. 시골 마을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두막으로 생뚱맞을 법도 한데 지붕 위에 화사하게 물든 노란 단풍 덕분에 정자는 원림의 풍경에 수더분하게 녹아 있었다. 
 

별당과 연지 사이에 있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원두막 모양의 정자는 생뚱맞을 법도 한데 지붕 위의 노란 단풍 덕분에 주변 풍경에 수더분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 장호철

 
연지를 파고 나무를 심고 가꾼 정원이기는 하지만 소우당 정원은 인위적으로 가꾸고 다듬은 일본의 인공 정원과 달리 자연의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원의 어느 쪽에서 바라보든 하나같지 않고 저마다 달리 다가오는 풍경과 느낌이야말로 한국관광공사가 소우당 정원을 '태양을 뒤로한 아름다운 비밀 정원'이라고 형용한 이유인지 모른다. 
 

원림에서 베풀어진 전통 혼례 시연. 신랑과 신부는 '묵은 부부'인 집주인 내외가 맡았다. ⓒ 장호철

 
소우당의 전통 혼례 시연은 입석 더미 앞 평지에서 베풀어졌다. 입석 더미 한쪽의 남근석에도 청사초롱이 걸리고, 사인교 가마를 타고 신랑 신부가 초례청에 들어오면서 혼례는 시작되었다. 혼례의 절차와 형식은 굳이 되뇔 일이 없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혼례를 지켜보았고, 박수로 이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신랑과 신부는 소우당 주인인 소우의 7대손 이견 씨 내외. 혼례를 지켜보던 할머니들은 혼잣말로 중년의 '묵은 신랑 신부'라고 아쉬워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들이 베푼 행사는 제 몫을 하고도 남았다.

고택의 '한옥 스테이'로 소우당을 즐길 수 있다

행사가 끝났지만, 소우당 정원을 떠나기에 미련이 한 움큼 남았다. 키 크고 굽은 소나무의 푸른 잎과 쾌청한 하늘 그리고 곱디고운 붉은 단풍잎들이 연출하는 조화가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가까이 있으면 아침과 한낮 그리고 저녁 무렵에 각각 들러 변화하는 정원의 빛과 공기를 겪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방법은 있었다. 이른바 '명품고택' 소우당의 '한옥 스테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우당에서는 별당과 대청마루 사랑채, 사랑채와 안채에 각각 2실 등을 객실로 개조하여 한옥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소우당 정원에서 저녁을 맞고, 별을 바라보고,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을 북쪽과 북동쪽에 수정사(水淨寺)를 사이에 두고 금성산과 비봉산을 배경으로 한 산운마을은 수정 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山雲)'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 오른쪽에 폐교된 산운초등학교를 활용해 조성한 산운생태공원이 있다.

마을 들머리에 영천 이씨 산운리 입향조인 이광준이 학문을 익히던 학록정사(鶴麓精舍, 경북 유형 문화재 제242호)가 있고, 마을 안에는 소우당 외에도 각각 경북 문화재 자료 제374호, 375호인 운곡당(雲谷堂)과 점우당(漸于堂) 등 고택 40여 호가 고즈넉하다.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기에 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해가 한 뼘쯤 내려오자, 하나둘 소우당을 떠나는 이들에 묻어 우리도 발길을 돌렸다. 언젠가 이 고택에 하룻밤을 묵으리라, 마음에 한 점, 이 '비밀의 정원'을 가득 채운 고운 단풍과 거기 고인 투명한 햇살을 갈무리하고서. 
덧붙이는 글 소우당 누리집(http://소우당.com/)에서 비밀의 정원 소우당에 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으며 한옥 스테이도 예약할 수 있다. 
#의성 소우당 별서정원 #비밀의 정원 #산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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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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