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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열광' 유럽 젊은이들이 꼭 알아야 할 곳

[인터뷰] 벨기에 한국문화원 최영진 원장...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 제공

등록 2019.11.19 15:27수정 2019.11.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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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시내 한복판에서 케이팝을 부르며 케이팝 댄스를 추는 유럽 젊은이들 ⓒ 주벨기에 유럽연합 한국문화원

매년 여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케이팝 댄스를 하며 케이팝을 부른다. 다름아닌 케이팝 아카데미 졸업반의 행사다. 프랑스 한국문화원에는 없는 행사를 4년째 기획하는 벨기에 한국문화원을 취재하고자 필자는 10월 4일 파리에서 브뤼셀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벨기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할까 한다.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북해로 둘러싸여 있고, 수도는 브뤼셀, 면적은 한국의 1/3, 인구는 한국의 20% 밖에 안 된다. 이 작은 나라에 공용어는 무려 3개. 불어, 네덜란드어, 그리고 인구의 1%가 쓰는 독어.

더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나라에 유럽연합(EU),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서유럽 연합(WEU), 베네룩스 경제 연합, 세계 관세 기구(WCO), 코임브라 그룹(유럽의 선도 대학들의 네트워크) 등 국제기구본부가 여섯 개나 소재해있다. 브뤼셀에만 유럽연합 28개국의 공무원들이 2만 명 넘게 상주하고 있고, 대사관만 180개가 넘는다. 외교관 수가 워낙 많다보니 외교관이라고 대접해주는 나라가 아니다.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부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한국문화원은 어떤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케이팝과 한국 문화

벨기에에 한국문화원이 생긴 건 2013년. 보컬과 댄스반으로 이루어진 케이팝 아카데미는 올해로 4년째다. 총 인원은100여 명 정도로, 강사는 대한민국 문화부 소속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에서 공모로 선발되어 파견된다.

가장 큰 문제는 통역. 벨기에는 공용어만 3개에 언어권이 다른 자국민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영어가 필요하니 총 4개 국어가 공존한다. 영어와 불어를 하는 유학생에게 수업 통역 자원봉사를 부탁한다.
 

10~20대의 벨기에 젊은이들이 케이팝과 케이팝 댄스를 통해 한국 문화를 만난다. ⓒ 정운례

케이팝 아카데미 수업료는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답은 무료! 외국 정부기관이 수익사업을 하게 되면 현지 정부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원 내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공연은 대부분 공짜다.

문화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도 1년에 20만 원으로 거의 무료에 가깝다. 완전히 무료로 하면 출석률이 안 좋아서 출석률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어 교재도 그냥 줬는데, 같은 이유로 올해부터는 교재를 각자 사도록 하고 있다. 문화원이 받는 돈은 전액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


세종학당은 10개 반에 총 인원 220명으로 매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케이팝 아카데미 보컬반 학생 중에는 케이팝 가사를 해석하려고 한국어를 독학한 학생들이 꽤 있다고 한다.

문화원의 연중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어뿐만 아니라 서예, 한지 공예, 장구, 태권도, 요리 등으로 다양하다. 10~20대의 젊은층은 대중문화를, 30~40대는 전통문화 강좌를 선호한다. 케이팝 아카데미는 강의실이 비는 여름 바캉스에만 열리며, 댄스반은 큰 거울, 특수바닥설치 등 무용전문시설이 갖춰진 외부에서 진행된다. 

유럽 속의 한국 문화

전세계 한국문화원의 프로그램은 다 같을까? 그렇지 않다. 본부에서 지원하는 예산과 직원이 한정적이고 현지 관객들의 기호 또한 다르기 때문에 현지의 문화를 고려해서 다양하게 구성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문화원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정부가 협력 지원하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스머프와 땡땡의 본고장이자 유럽 최초의 만화박물관이 세워진 만화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곳 한국문화원은 벨기에 만화박물관과 함께 매년 만화 전시를 공동기획한다. 올해는 '내면의 시선'이란 주제 아래 한국 작가와 벨기에 작가들이 어떻게 자기의 내면을 각각의 시선을 통해 만화로 표현하는지 보여줬다.
 

'내면의 시선'은 한국 만화작가와 벨기에 만화작가들이 어떻게 자기의 내면을 각각의 시선을 통해 만화로 표현하는 지 보여주는 전시이다. ⓒ 정운례

한국의 만화 박물관 및 만화가 협회와 벨기에의 만화 전문가를 연결시켜주고, 장소를 대주는 게 문화원의 일이다. 만화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한국과 벨기에의 만화가와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이 만나 의견을 나누고, 주제와 작가를 선정하며 일사천리 일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문화 교류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 한국문화원의 몫이라고 최영진 벨기에 한국문화원 원장은 설명한다.

혹자는 '한국문화원인데 왜 한국 정부의 돈으로 외국 작가까지 전시를 해주냐'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우리 문화만 알아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소개하면서 상대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문화 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실제로 벨기에 작가의 팬과 지인들이 전시를 보러와 한국 만화가와 한국 문화를 발견하기도 했고, 2018년에는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끼리 교류가 이어져 부천 만화 박물관에서 벨기에 작가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렇듯 쌍방이 문화를 교류하고 관객의 확장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벨기에 한국문화원의 역할이라고 최 원장은 말한다.

만화, 건축, 사진 등 전시뿐 아니라 공연도 마찬가지. 벨기에는 세계 3대 콩쿨의 하나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쿨이 매년 열리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최정상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많이 상주한다. 벨기에 한국문화원은 콩쿨 측과 협력해서 결선에 참여했던 한국 연주자들을 초대해 유럽이나 벨기에 연주자들과 협연하도록 갈라 콘서트를 기획한다.  

"케이팝 뿐만 아니라 클래식, 현대무용, 만화, 웹툰, 사진, 건축 등 한국 예술가분들이 서유럽 작가들과 같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준이 비슷해야 같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 유럽에서 평가받는 분들도 많다는 걸 배웠어요."
   

벨기에 한국문화원 내부에 설치된 부엌, 여기에서 요리 아틀리에를 연다. ⓒ 정운례

한국 문화원을 질투한 탓일까? 일본 문화가 워낙 많이 알려지고 보편화되서 문화원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사라졌던 벨기에 일본 문화원이 다시 생겼다고 한다.

한편 외국인들이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한국 문화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대해 최영진 원장의 대답은 이렇다.

"시작은 누구나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잖아요. 그 통로가 어떻게 됐든 한국 문화원에 오면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게 해주죠. 그런 친구들에게 문화원의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세종학당에 다니는 학생들이 인디 음악 밴드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도 있고, 판소리 들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 관심있는 다른 한국 문화 프로그램이 있으면 보러오고 그래요.

해서, 저는 시작은 다 다르지만 그 시작점에서 어떤 것을 접하고 경험해주게 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출발점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 관심분야에서 출발하는 거죠."


한국 국적 거주자보다 많은 한국 입양인

내가 사는 프랑스의 경우,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입양아를 수용하기 때문에 한국 입양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잊어버린 모국어를 배우려고 혹은 다시 찾은 친부모와 소통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꽤 있다. 프랑스 한국 입양인 중에 잘 알려진 인물로는 문화부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과 상원의원 장-뱅상 플라세가 있다. 벨기에의 상황은 어떤지 자못 궁금했다.

최 원장에 의하면 벨기에 한국입양인들은 한국 국적 거주자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유학생, 주재원을 포함해서 한국 국적 거주자가 1000여 명이라면 그중에 영국 거주 한국인은 400명이다. 반면에 입양인은 5000명이나 된다. 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입양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시나 공연을 보고 조용히 간다고 한다.

벨기에서 알려진 입양인으로는 영화 <피부색깔=꿀색>의 감독 융 헤넨과 상훈 드장브르(Sang Hoon Degeimbre) 셰프가 있다. 상훈 드장브르는 우리나라 정상이 벨기에 방문했을 때, 국빈 만찬을 준비했다. L'Air du temps(레르듀떵) 식당에서 그의 미쉘린 별 2개짜리 요리를 만날 수 있다.

한국과 벨기에의 공통점

최 원장은 인터뷰 내내 벨기에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대단했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40대에 늦깎이로 국비 유학을 했고, 국비 유학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벨기에서 2년간 유럽학을 공부했다. 문화원장으로 있은 지는 2017년 3월부터니까 내년 3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그에게 벨기에는 어떤 나라일까 ? 

'정'이라는 단어만 없고, 피부색과 언어만 다를 뿐이지 말, 몸짓, 표정으로 전해지는 것은 한국과 같다고 한다. 게다가 강대국 사이에서 힘든 과거를 보낸 역사도 한국과 똑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벨기에가 타협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잘 할 수밖에 없다고 최 원장은 해석한다. 프랑스와 독일,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고 작은 나라로서 현명하게 중심을 잘 잡으며 자기 역할을 하는 이유는 바로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데 벨기에의 언어적 갈등은 '나라를 쪼개자'고 할 정도로 한국의 지역갈등보다 심하다. 하지만 L'union fait la force라는 국가의 모토 아래 국왕이 중심을 잡아가면서 국민간의 화합을 다독인다. L'union fait la force는 '화합이 힘이다'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하자면 '뭉치면 산다'에 해당할 것 같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시달리는 것도 똑같고, 그래서 단합하고 힘을 모아야할 때가 많은 것도 한국과 닮았다.

벨기에 국왕이 언급한 한국문화원

최 원장이 문화원장으로 있으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바로 올초에 있었던 벨기에 국왕의 연설이다. 지난 2019년 3월에 벨기에 국왕이 한국에 27년 만에 국빈 방문을 했을 때다. 영빈관 만찬에서 국왕과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연설을 하는데, 벨기에 국왕이 한국문화원을 언급했다.

"한국 문화원의 활동을 기쁘게 생각하고, 한국 문화원은 벨기에와 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에 위치한 한국의 진정한 창입니다."

어떤 정상도, 어떤 국빈 방문자도 문화원을 언급한 사례가 한 번도 없었기에 문화원 직원들이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국왕의 연설문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문화원 뒷쪽에 있는 벨기에 외교부에서 일하는 누군가 전시나 공연을 자주 보러 왔던 걸까, 평소에 한국에 관한 자료 조사에 협력했기 때문일까 여러 추측을 하지만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벨기에 한국문화원의 최영진 원장 (45세) ⓒ 정운례

해외 각국에 소재한 한국 문화원은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문화를 접하는 여느 전시장이나 공연장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타지의 한국인들에게는 친정같고, 내 집같은 곳이다.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내게는 한국문화원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힘이 되고 마음 든든한지 모른다.

유럽의 중심부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열린 방식으로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벨기에 한국문화원의 정책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최영진 원장은 인터뷰 내내 소탈함과 솔직함으로 성실하게 답해줘서 가슴마저 따뜻해졌다.

벨기에 한국문화원의 전시 및 공연 정보를 원하는 분은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참조하시고, 2주에 한 번씩 발간되는 뉴스레터에 등록하면 따끈따끈한 문화정보를 직접 받아볼 수도 있다. 

인터뷰를 위해 적극 협조해주신 벨기에 한국문화원 관계자분들께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린다.

- 홈페이지 : brussels.korean-culture.org
- 주소 : Rue de la Régence 4, 1000 Bruxelles, Belgique (벨기에 왕립미술관 건너편)
#한국 #한국문화 #한국문화원 #벨기에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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