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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폭발로 아들 잃은 여성에 닥친 일... 106분의 공포

[리뷰] 영화 <심판>

19.11.05 14:41최종업데이트19.11.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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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다이앤 크루거는 영화 <심판>으로 제7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진 엄마의 슬픔, 분노의 떨림을 잘 묘사했다. 점점 피폐해져가는 다이앤 크루거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갑자기 증발한 가족으로 인해 찾아온 고통, 외로움, 그리움의 감정과 복수를 향한 불타는 의지들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은 약간 의아하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때문에 공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관객의 몫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의문의 폭발사고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카티아(다이앤 크루거). 사고 후 경찰은 마약 밀매상이었던 남편을 의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 수색 중 소량의 마약이 발견되면서 일이 커진다. 남편이 터키인이자 전과자란 이유로 경찰은 이미 시나리오를 짜놓은 상태다. 카티아를 심문해 퍼즐을 맞추려고 할 뿐이다.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 이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는 카티아는 슬픔을 잊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댄다. 이 일이 훗날 재판에 영향을 미칠 거란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 용의자가 잡혔다. 둘은 나치주의자였다.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면 이유 없이 죽이는 국제 네트워크의 일원이었다. 이 커플은 사제폭탄을 제조해 일부러 남편 사무실에 놓고 갔던 것이다. 이후 누가 봐도 큰 죗값을 치를 재판이 열린다.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후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마음 속에 불이 나는 카티아와 다르게 법정은 엄숙하고 냉정한 사실만을 공론화하는 자리다. 화가 나고 억울한 사람은 카티아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변호사는 부부를 변호한다.

게다가 부부는 표정 하나 없이 평정심을 지킨다. 잠시 로봇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쩌면 저런 평온함, 무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세계관이 다른다면 모두가 적인 걸까?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공포를 영화 내내 체험할 수 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재판부은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부부의 무죄를 선고한다.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을 두 번이나 겪은 카티아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인다. 하지만 발톱을 숨기고 있던 카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홀로 행동에 나선다. 과연 카티아의 행동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법이 불의를 심판하지 않을 때 개인이 벌이는 행동이 타당한지, 영화는 겹겹이 쌓아 올린 카티아의 심정을 토대로 묻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받은 만큼 돌려주는 상응 보복법을 원칙으로 했다. 현대 법의 기원이 된 함무라비 법전은 지금 봐서는 야만적으로 보이지만 과잉 보복을 막는 문명화된 법칙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은 분노의 증폭이 커져 훨씬 더 큰 앙갚음을 할 수도 있다. 보복운전으로 큰 피해를 입는 일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의 상응 보복법은 눈을 다쳤다면 눈을 이를 다쳤다면 이만을 보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지만 죄를 물을 수 있는 현대 재판은 오히려 교묘히 피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영화 <심판>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19세기 사냥꾼 휴 글래스가 아들이 처참한 죽음을 직접 목격한 아버지의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심판>의 다이앤 크루거를 보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올랐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평온한 바다는 유난히 말이 없다.
심판 다이앤 크루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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