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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의 '한 칸' 길이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류 기자의 이거왜이래?] 길이 11.4cm의 비밀을 알아봤습니다

등록 2019.11.05 11:52수정 2019.12.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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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1.4cm, 높이 10cm라는 애매한 휴지의 크기, 어떻게 정해졌을까 ⓒ 류승연


살면서 두루마리 휴지를 딱 한 칸만 써본 적은 없었다. 화장실에서뿐 아니다.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닦을 때나 여름철 귓가를 어지럽히는 모기를 잡을 때도 휴지를 길게 늘여 최소 대여섯 칸을 찢어 사용했다.

그래서 의아했다. 두루마리 '한 칸'은 왜 그렇게 짧은지 말이다. 혹시 자원을 절약하라는 차원에서 짧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까. 한 칸만 써도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니, 실제로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이라는 말은 '아껴 쓰기'나 절약과 같은 단어와 함께 다녔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차피 휴지를 한 칸보다 많이 쓰게 될 것이라면, 실용성을 생각해 처음부터 길게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휴지 한 칸, 길이 11.4cm 너비 10cm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손 길이는 제각각이지만 너비는 비슷

알고 보니 휴지 한 칸은 '절약'과는 관계가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대량생산했던 유한킴벌리쪽에 확인해본 결과, 한 칸의 사이즈는 한국인의 손 크기와 관련이 있었다.

이들은 성인의 '손길이'는 제각각이지만 '손 너비'는 비슷하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휴지를 한 손에 감고 쉽게 뜯어낼 수 있도록, 폭을 대한민국 성인 평균 손 너비보다 1cm-2cm 정도 크게 정한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한 관계자는 "모두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도 손의 크기를 기준으로 만드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 인체 치수를 조사하는 사이즈코리아(Size Korea)가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 20대부터 70대까지 성인 남녀의 손 너비는 최소 8.15cm부터 최대 8.35cm사이이고 휴지의 폭은 9.5cm-11cm이다.


그렇다면 휴지는 왜 '절약'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니는 것일까. 두루마리 휴지의 재료가 나무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베어야만 휴지가 나오는 만큼, 휴지를 적게 쓰면 그 만큼 환경을 보존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셈이다.

휴지를 사용하면 환경이 훼손된다?

하지만 유한킴벌리쪽은 휴지를 많이 사용하면 환경이 훼손된다는 데 일부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우리는 스칸디나비아와 북미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크기의 인공림에서 나오는 펄프를 쓰고 있다"며 "몇 년마다 한 번씩 나무를 베어 쓰는 건 사실이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나무밭'에서 채취하는 만큼 환경을 해친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조금 과장하자면, 매년 곡식을 재배하는 데 대해 환경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두루마리 휴지 제조사인 깨끗한나라 관계자는 휴지 사용이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그는 "일부 휴지 제조사는 국제산림관리협의회에서 만든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인증시스템, 'FSC 인증'을 받고 있다"며 "허가받은 나무 밭, 즉 조림지에서 펄프를 얻는 만큼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은 곳에서 펄프를 채취하는 업체도 있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몇 장이나 사용하고 있을까. 2017년 유한킴벌리 크리넥스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두루마리 휴지의 주 목적인 대변을 처리하는 데 평균 9.4칸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변처리 등 다른 용도로 휴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6장 이상이 쓰였다.
 

유한킴벌리 제공 ⓒ 유한킴벌리

 
그 와중에 국민들이 휴지를 사용하는 '칸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2009년 대변 처리에 사용되는 평균 두루마리 휴지 칸 수는 12.7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7년에는 이보다 3.3칸이 줄었다. 유한킴벌리쪽은 그 이유에 대해 비데 등 처리 방법이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휴지를 두껍게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휴지의 두께와 변기의 막힘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있었다.

그런데 2018년 1월부터 대부분의 화장실에서 휴지통이 모습을 감췄다. 행정안전부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에 따라 공중화장실에서 휴지통을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휴지통이 악취와 해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벽에는 휴지를 변기에 버려달라는 문구도 붙었다.

그래서일까. 공중화장실에 있는 휴지는 '잘 녹을 것처럼 보이는' 1겹짜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화장실에서는 변기에 휴지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경고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혹시 1겹 휴지는 변기에 버려도 막히지 않지만, 몇 겹으로 만들어진 휴지는 변기를 막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휴지의 두께와 변기의 막힘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 류승연

 
그러나 휴지의 두께와 막힘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깨끗한나라 관계자는 "2~3겹짜리 시판 휴지와 공중화장실의 1겹짜리 휴지는 펄프를 어떻게 가공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막힘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중화장실의 휴지를 한 겹으로 만든 건 '경제성'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만큼 겹수를 줄이고 양을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지의 겹수와 상관없이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두루마리 휴지의 경우 물에 잘 풀리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휴지가 변기를 막는 건 사실이었다. 휴지가 물에 풀리는 시간은 과연 몇 초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10초'라고 말했다. 깨끗한나라쪽은 "휴지를 과도하게 뭉쳐두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일반적으로 바로 내리지 말고 10초 정도 기다린 후 내리면 막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 #두루마리휴지 #크리넥스 #깨끗한나라 #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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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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