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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떨어질라? 정부, 집값 잡기 아예 포기했나

[取중眞담] 분양가상한제 유예한 정부... 시장은 "상한제 탓" 아우성

등록 2019.10.29 11:44수정 2019.10.2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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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노동자 고공농성 이틀째 서울 은평구 지역의 한 재개발 아파트 공사 현장. ⓒ 권우성


 '6억635만 원에서 8억7525만 원으로'

뭐가 이렇게 올랐냐고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KB부동산통계)입니다. 중위 가격이란 주택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가격을 뜻합니다. 서울 아파트 값은 정확히 2년 반 만에 1억6890만 원 올랐습니다.

2년 6개월만에 1억6000만 원 오른 서울 아파트값

시기를 따져볼까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는 6억635만 원. 2년 6개월이 지난 2019년 10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8억7527만 원이 됐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9억 원을 넘길 기세입니다.

"정부는 집을 거주공간이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정부는 나름대로 집값 안정화에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집값이 이상 급등하던 지난 2017년 8월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때 투기과열지구 지정, 양도세 강화, 대출 한도 축소 등 집값 안정대책을 쏟아 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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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017년 8월 2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하지만 투기꾼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합니다. 민간 임대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면서 민간임대사업자에게 재산세, 양도세 감면 혜택을 줬습니다. 사업자가 집을 더 살 수 있도록 대출 혜택(주택담보대출비율, LTV 80%)도 줬습니다.


다주택자 빠져나갈 구멍 주면서 다시 폭등

그러자 다주택자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2018년 서울 집값은 또다시 앙등합니다. 뒤늦게 정부는 2018년 9월 13일 9.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일부 축소하고 대출을 더 조이면서 집값 진화에 나섭니다.

9.13 대책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올해 들어 또다시 들뜨기 시작합니다. KB부동산 통계를 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는 8억2574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7월 들어 매매가는 8억 중반(8억5715만 원)대로 올라섭니다.

그러자 정부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7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간택지 경우에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공식화했습니다.

분양가상한제란 정부가 정한 적정 건축비(기본형 건축비) 범위 내에서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무분별한 분양가 책정을 막고, 아파트 건축비의 과도한 거품을 막는 장치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도시연구소 등 시민단체도 "집값 거품을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반겼습니다.

분양가상한제, 시간만 끌다가 결국 6개월 유예

그런데 군불을 때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시행요건을 개선하는 작업(주택법 시행령 개정)만 2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부동산업자들과 경제지들은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고 악을 써댔습니다.

분양가상한제의 시행 지역조차 정하지 않았고, 단순히 시행 요건을 개선하는 과정이 진행 중인데, 이것이 어떻게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상식적으로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 1일이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시장 상황 브리핑을 갖습니다. 출입기자들에게도 당일 브리핑 소식이 알려졌을 정도로 일정이 급하게 잡혔습니다.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시행의 6개월 유예'를 선언했습니다. 내년 4월 이전에 분양한(입주자 모집 공고 신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면제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내년 총선(4월)까지 표 떨어뜨릴 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브리핑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강력한 무기 스스로 포기한 정부

또 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은 내년 4월을 '데드라인'으로 맞추고, '속도전'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분양가를 받아내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 4월까지 분양을 하지 못한 사업장들은 '정권 교체'를 희망하면서 장기전에 들어가겠죠.

10월 29일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시행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령이 발효되는 날입니다. 정확히 정리하면,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위한 요건이 완화된 것입니다.

상한제를 실시하는 지역이 확정되려면, 주거정책심의위원회와 당정협의 등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29일을 기점으로 분양가상한제에 대한 보수언론과 부동산업자들의 공세는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지금도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고 떠드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시행령이 시행되면 어떨까요? "강남 아파트 몇 억 올랐다"식의 뜬 소문을 대문짝만하게 써대면서, "역시 분양가상한제 때문"이라고 할 게 뻔합니다.

1년에 한번 꼴로 부동산 대책, 다음은 무엇?

정부는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부동산업자들의 공격을 받을 빌미까지 제공한 셈입니다. 분양가상한제의 시행이 미뤄지는 동안 집값이 폭등하면 정부는 어떤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까요?
 
"정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책수단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에 더 필요한 그런 보완대책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그때그때 점검하면서 대응해 나가겠습니다."(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분양가상한제 말고도 다양한 정책 수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3년을 뒤돌아보면, 정부는 집값 안정화 대책만 내놨습니다.

그동안 폭등한 집값을 내릴 대책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집값 안정화 대책마저도 완벽하지 않았고, 1년에 한 번꼴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집 있는 사람(재건축 조합원) 돈 좀 더 벌게 해주겠다며, 분양가상한제마저 미뤘습니다.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던 김현미 장관의 말은 '허언'이 되어가는 판입니다.

집값이 상승세를 계속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 원을 돌파하면, 정부는 또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요? 더 이상의 집값 급등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부가 가진 집값 안정 카드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무주택 서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를 테니까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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