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는 폭력은 없다

등록 2019.10.28 08:06수정 2019.10.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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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성의 뒤를 밟은 뒤 집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하려 한 가해자에 대한 짧은 뉴스를 보았다. 여전히 매일매일 누군가는 여성이란 이유로 원치 않는 폭력에 놓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뉴스가 더 암담했던 것은 가해자가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이 성폭력 가해자인 경우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찰이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사건을 종종 목도한다. 여전히 성폭력을 폭력이라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용인하며 은폐하기 급급한 남성 카르텔 속에서 가해자가 경찰인 것이 무슨 놀라움이랴 싶기도 하다. 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 그것을 해결해나가야 할 경찰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성폭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결코 무뎌져서는 안 되듯, 나는 경찰이 가해자라는 그 짧은 뉴스를 보고 그냥 으레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이고, 또 이 사건으로 하여금 경찰 역시도 모두 잠재적 가해자다! 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폭력 문제에 적극적인 개입자로서 방관하지 않아야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경찰, 검찰, 법원 등 법제도의 폭력 감싸기와 폭력 행위를 보아야 하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성폭력을 대하는 태도가 '그럴 수도 있지'가 강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는 믿었던 조력자였을 경찰이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피해경험자를 고립시킬 때, 피해경험자는 누군가에게 쉽게 발화할 수 있을까. 거기에 경찰을 성폭력 가해자로서 우리가 마주한다면, 우리의 안전은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두렵지 않을까.

생각나는 경험이 있다. 몇 달 전,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머문 적이 있다. 모두 잠이 든 새벽, 밖에서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잠이 깼다. 처음엔 누군가들이 취기에 소리를 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라 창문을 여니 친구네 바로 앞집 주택가에서 듣기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같은 한 여성의 울음소리와 그녀에게 욕하고 다그치는 남성의 목소리, 또 그런 남성을 동조하며 우는 여성을 '혼내는'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성은 울면서 말하는 것을 넘어 울부짖음의 상태에 가까웠다.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친구의 집에 있던 구성원들이 모두 잠에서 깼다. 아마도 그 주변의 다른 주민들도 잠에서 깼거나,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무대 위 연극을 보는 듯 그 집을 제외한 어느 곳에서도 '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 되겠어서 밖으로 나갔고, 구성원 중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밖에 나가니 이 소리에 잠이 깬 이들이 밖으로 나오기도 했고, 창으로 동태를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굳게 잠긴 '사적인' 공간에 나서지 않았고, 나설 수 없었다. 경찰이 오기까지 우리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땅바닥에 주저앉아 경찰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했지만 "아무 일도 아니에요"라고 하면 정말 아무 일이 안될 것 같아서.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계속되는 울음소리와 그런 그녀를 다그치는 소리'들'로 실신하지는 않을까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날 그 폭력을 분명히, 들었다. 물이라도 들고 나올걸, 화장지라도 챙겨 나올걸, 하며 손톱을 깨물며 걱정했지만 우리가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거나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못한 것'이다. 섣불리 무엇도 할 수 없던 절망스런 시간이 지나고, 경찰관 두 명이 왔다.

경찰은 한 밤 중 고통스러운 소리가 존재한 그 공간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경찰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누군가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데 왜 경찰은 대문 밖에서 '청취'만 하는 걸까. 게다가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언어폭력을 가하던 남성이었다. 가해자에게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돌아선 경찰에게 우리는 다시 우리가 들은 것들을 설명하고,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지도 않은 채 가해자일 남성의 말만 듣고 돌아가려고 하는지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은 우리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미처 느끼지 못했다가 새삼 깨달았던 것은 어느 순간부터 괴롭게 울고 소리를 지르던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물론, 그 집에서조차 소리가 사라진 것이었다. 마치 소란스러운 텔레비전을 누군가 '음소거' 하듯이.

잠시 후, 경찰관은 그 집에서 나왔고 그때에도 역시나 별 일 아니라는 돌아가려 했다. 일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 우리에게 경찰은 정말 별 일 아니라고 했다. 여동생이 늦게까지 돌아다녀서 가족이 그저 '한 소리'한 거라고. 우리는 그의 말에 어떤 말들이 오가며 어떤 괴로운 소리가 나왔는지 다시 설명하고 문제제기 했다.

저렇게 피해경험자를 그냥 두고 가는 거냐고, 계속되는 욕설과 무언가를 집어 던지는 소리도 났다, 실신할까 걱정되는데 왜 그냥 가시냐고, 왜 가해자의 말을 듣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냐고. 경찰은 '가족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저 여자가 혼자 좀 저렇다', '오빠가 동생 혼내지도 못하냐', '우리보고 어쩌란 거냐'라며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폭력 사건을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 경찰이 못한다니,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과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우리는 그 새벽, 우리가 또 다른 '소음'을 만들고 있음을 경찰을 되돌려 보내면서 멈췄다. 그러자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경찰을 돌려보내고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분노감에 잠에 들지 못했다.

"시민들 대부분은 이런 일(사건) 생기면 의지할 게 경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찰이 외면하면 그 가족들 평생 억울해서 못 삽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경찰은 그런 존재이고, 그런 존재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경찰의 행위는 절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서 완성시키는 하나의 완료점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신뢰를 잃은 사람은 과연 나뿐일까.

어떤 문제에 항의하고 대안을 만드는 목소리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 꼭 필요한 목소리들이라고 생각하기에 나 역시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러나 그 날의 경험은 세상을 바꿔간다고 하는 일들 사이에서도, 그 사이와 사이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죽임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폭력에 놓이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 새벽, 누군가 온 동네가 알 수 있을 울음을 뱉어냈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간분리도 되지 않은 그녀는 안전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가족'이란 이유로 이 모든 폭력이 용인 되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명백히 가정폭력임에도 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단지 그녀가 '이상한' 여자여서, 란 이유로 정리 되는가.

젠더 관점이 부재한 판결도 이제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 폭력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같이 만들어내고, 용인하는 경찰도 더 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그럴 수도 있지'란 이유로 지금까지 존재해온 여성에 대한 차별‧혐오‧폭력을 생산해온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는 적극적 개입자로서, 동료 시민으로서 마주하고 싶다.

'그럴 수도 있는' 폭력은 없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 활동가
#성폭력 #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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