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할퀴고 간 황금들녘 '한숨'

2019 가을걷이 현장을 가다

등록 2019.10.21 18:34수정 2019.10.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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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쓴 농심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들녘 곳곳에 태풍이 지나간 흔적이 상처로 남았다. 지난 15일 덕산 내나리, 84년을 꿋꿋하게 견뎌온 노구를 이끌고 나와 논 한가운데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이온우 어르신의 몸짓이 힘차다. 이들은 그 저력으로 반만년 식량창고를 지켜왔다. ⓒ <무한정보> 김수로


황금빛 들녘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봄부터 피땀으로 일군 한해 농사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몸은 고되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계절이다.

하지만 추수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연이은 태풍으로 입은 피해가 적지 않은 탓이다. 들판 곳곳엔 엎친 벼가 눈에 띈다.

엎친 벼 사이로 콤바인길

15일 덕산 내나리, 이른 아침부터 논에 나온 이온우(84)씨가 콤바인이 들어갈 틈을 만들기 위해 엎친 벼를 반대쪽으로 넘기느라 바쁘다. 엎친 쪽 이삭을 더 익히는 효과도 있단다.

기다란 댓가지로 한참이나 이를 젖히던 이씨는 "올해 작황은 썩 좋지 않다"며 "농사짓는 500평 논 가운데 절반 정도가 도복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겉보기 멀쩡해도 쭉정이 투성
 

이온우 농민의 논 절반 가량이 도복피해를 입었다. ⓒ <무한정보> 김수로

 

착잡한 얼굴로 빈 포대를 바라보고 있는 김홍근 농민. ⓒ <무한정보> 김수로

 

방아리 농민들이 콤바인으로 수확한 벼를 톤백에 채우고 있다. ⓒ <무한정보> 김수로

  
삽교 방아리 김홍근(53)씨 논. 이 일대는 삼광종자벼 재배단지로, 수확한 벼는 모두 아산시 국립종자원으로 간다.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한다는 이곳도 태풍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김씨는 "태풍을 맞은 벼는 쭉정이가 생기기 십상이다. 겉보기는 멀쩡해도 수확량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벼 베기가 시작됐지만 공공비축미를 매입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은 한산했다. 예년보다 도복피해를 입은 벼가 많아 수확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 톤백 하나에 벼를 싣고 예산읍 관작리 예산라이스법인RPC를 찾은 한을식(65)씨는 "16일부터 추수를 시작했는데 태풍피해 때문에 쌀이 그전만큼 안 나온다. 작년엔 200평당 네 가마 반 정도 나왔는데, 올해는 세 가마 조금 넘는다. 25%정도 줄었다"고 토로했다.

산물벼를 매입하는 3개 RPC가운데 하나인 예산라이스법인 관계자는 "14일부터 매입을 시작했는데, 현재까진 농민들이 도복한 벼이삭을 주로 가져왔다. 수발아한 것 외에는 피해 정도를 보고 최대한으로 수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복한 벼를 먼저 베는 건 통상적인 순서다. 넘어져 땅에 닿은 낟알에 싹이 트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RPC도 한산… 특등급 안 나와

이 관계자는 "1등급이 많긴 하지만 특등급은 거의 없다. 예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특등·1등급 비율이 낮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도복피해로 미질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스름이 깔리는 들판에서 수확한 벼를 싣고 떠나는 트랙터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가을철 농민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지 않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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