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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푼강에 뿌려진 이상설의 한 "제사도 지내지 마라"

[동행취재] 응답하라 19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등록 2019.10.21 16:30수정 2019.10.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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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유허비 앞에서, 응답하라 19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 허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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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푼강 ⓒ 이민선

 
그 옛날 연해주 고려인들이 '슬픈강'이라 불렀던 러시아 우수리스크 수이푼강. 무심한 강물은 세차다 할 만큼 빠르게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이런 허허벌판에 무슨 유적지가 있다고?'하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곳에도 뭔가 있나"라고 혼잣말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연해주 독립운동에 한 획을 그은 이상설의 유허비다. 이상설은 고종 황제의 특명을 받아 1907년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파견되어 한국 독립을 호소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15일 과천 지역 중학생 26명과 함께 '이상설 유허비'를 탐방했다.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청이 함께 진행한 '응답하라 19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아래 역사원정대)' 행사였다. 역사 원정은 지난 14일부터 3박 4일간 진행됐다.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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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유허비 ⓒ 이민선

 
"1917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서거한 한국 독립운동지도자이다. 연해주에서 조국독립운동에 헌신 중 순국하다. 그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그 재를 이 곳 수이푼 강물에 뿌리다."

이상설 열사 유허비(遺墟碑) 내용 중 일부다. 이상설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박탈당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투쟁을 벌였다. 그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에는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되어 독립을 호소했다.

그 후 계속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망명지인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병사했다. 죽기 전에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했고, 유해는 고려인들이 슬픈강이라 부르는 수이푼강에 뿌렸다.

고단했던 그의 삶을 알려주는 듯 유허비 주변은 황량하기만 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유허비. 그의 유해가 뿌려진 수이푼 강은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잔물결을 일으키며 무심하게 흘렀다. 유허비 곁을 지키는 것은 한국에서 공수한 것으로 알려진 소나무 몇 그루뿐이었다.

하지만 이 유허비마저 없었다면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치열하고 고결한 삶을 들여다 볼 기회마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차디찬 비석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이 묵념을 할 즈음 한 무리의 사람이 버스에서 내렸다. 한국말을 썼다.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이었다.

수학여행단이 우리 일행과 바통 터치하듯 유허비 주변으로 모이는 것을 보며 주변이 참 황량하다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었다. 이상설의 한과 결기가 유허비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역사원정대는 나에게 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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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원정을 한 학생 소감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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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원정을 한 학생 소감 ⓒ 이민선

 
역사원정대는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한촌기념비' 탐방 등을 한 뒤 공식적인 일정을 마쳤다. 탐방을 마친 학생들은 "역사원정대는 나에게 별이 밝게 빛나는 밤이었다", "다큐멘터리였다"라는 등의 소감을 남겼다. 다음은 학생들 소감.

"나에게 역사원정대는 밤이다. 밤에는 별이 빛나고 그 별 하나하나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신 독립운동가들처럼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나에게 역사원정대란 우리나라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나라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한 분들에 대해 알아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역사원정대란 다큐멘터리다. 왜냐하면 이번 원정대를 통해 중요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었고, 잊어서는 안 될 우리나라의 역사를 유적지를 다니면서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 역사원정대란 타임머신이었다. 실제 그 시대 인물이 있었던 곳을 가보며 실제로 보고 들으며 생활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나에게 역사원정대란 안경이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안경을 쓰고 보이는 것을 인지하는 것처럼 지식이 많지 않던 내게 안경이 주어져 역사를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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