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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00만 원으로 '마을 축제' 그게 가능해?

[현장] 18회 모퉁이 마을 축제 “우리 같이 놀래?”

등록 2019.10.21 11:05수정 2019.10.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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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전 유성구 전민동 엑스포 근린공원이 아이들 웃음소리로 꽉 찼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우리 같이 놀래?"는 지역 주민 도서관인 모퉁이 어린이도서관(강영미 관장)이 주최하는 마을축제다.  

보통 축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초대 가수, 화려한 조명과 빵빵한 음향, 흥겨운 음악과 춤, 팡팡 터지는 불꽃놀이, 먹거리 장터, 경품 추첨, 정치인들 인사 말씀 듣는 형식적인 의전 등이다. 그런데 모퉁이 마을 잔치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다.
 

모퉁이 마을책잔치 여는 마당에서 '동네 조무래기들'이 “가을길”과 “동네 한 바퀴”를 힘차게 불렀다. ⓒ 주경미

 
여는 마당의 주인공은 정치인도, 어른도 아닌 동네 꼬마 친구들이었다. 모퉁이 도서관에 모여 틈틈이 노래 연습을 한 10여 명의 아이들이 나와 동요 "가을길"과 "동네 한 바퀴"를 힘차게 불렀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맑고 고운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초청 가수의 화려한 안무도, 능숙한 노래 솜씨도 없었지만 "파랗게 파랗게 높은 하늘 / 가을 길은 고운 길",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노랫말이 여유롭고, 흥겨운 마을 잔치 시작을 알리는데 제격이었다.

"아이 하나를 잘 키우려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실천하기로 한 것일까? 마을 책잔치를 위해 온 동네가 나섰다.

문지중 영어 동아리 '은방울꽃', 대전인권센터, 대전 동화 읽는 어른모임, 대전 아이쿱 소비자생협, 전민 마을 숲사랑 모임, 기본소득 대전네트워크, 전민동 임마누엘 교회, 진원 작은 도서관, 유성구평생학습센터 기타 동아리 '통키 통키' 그리고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아이들을 위한 축제 한마당을 만들었다.

보통 수천 만원의 예산이 필요한 마을 축제와 달리 '우리 같이 놀래?'는 단돈 100만 원이 총예산이다. 100만 원으로 천막과 탁자를 빌리고, 음향 시설을 설치하고, 각종 활동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했다. 그 100만 원은 대전인권센터에서 인권 특성화 사업 일환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이번 축제 컨셉은 '인권을 품은 마을축제'이다. 아이들이 직접 우정 팔찌를 만들어 친구와 가족과 함께 차고, 인권 책갈피를 손수 제작하며 인권의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었다. 

문지중 영어 동아리 '은방울꽃'에서는 '겁쟁이 빌리' 책을 동생들에게 읽어주고, '걱정 인형 만들기'를 함께 했다. 이 친구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축제에 와서 놀던 아이들인데, 이제 언니, 오빠가 되어 동생들에게 시간과 재능을 나누고 있다. '은방울꽃'은 매주 모퉁이도서관을 찾아 영어책 읽어주기 봉사 활동을 수년째 하고 있다.
 

'해님 밧줄' 놀이를 하며 "000 사랑해"를 외치고 있다.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누군가에게 이처럼 사랑 받고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된 놀이이다. ⓒ 모퉁이어린이도서관

 
'해님 밧줄' 놀이를 통해서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해님 밧줄 위에 아이를 앉히고, 10여 명 정도 되는 가족, 친구, 이웃들이 밧줄을 들면 아이가 하늘 위로 붕 날아올랐다. 이때 모두가 한 목소리로 "000 사랑해"를 외쳤다. 올라 탄 아이는 자신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기본소득 대전네트워크에서는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을 모두가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그것이 인권의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기본소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기본소득 윷놀이'와 '기본소득 6원칙 주사위 놀이'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기본소득도 알리고, 전통놀이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대전동화읽는어른' 활동가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연물을 이용하여 만들기 놀이를 함께 했다. ⓒ 대전동화읽는어른

 
'우리 같이 놀래?'가 지난 18회 동안 지켜온 가치는 전통과 환경을 생각하는 놀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와서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제기와 원반, 줄넘기 등을 놓았다. 그리고 동화 읽는 어른에서는 '뛰어라 메뚜기'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과 함께 나뭇가지, 나뭇잎, 풀 등 자연물을 이용하여 메뚜기 집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전민 마을 숲사랑 모임에서는 손수건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자연물을 찍어보며 아이들이 자연과 가까워지도록 했다. 그리고 천연비누 만들기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아이들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아이쿱 소비자생협은 '미세 플라스틱. 지구야 고마워 공방 이야기' 퀴즈 풀기를 통해 미세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알렸다.  
 

전민동 마을 주민, 어린이 60여 팀이 벼룩시장에서 좌판을 벌였다. ⓒ 모퉁이어린이도서관

 
마을 축제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벼룩시장'이다. 60여 팀이 좌판을 펼쳤다. 외국인 가족도 참여했고,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팀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특히 이날 판매금의 10%는 자발적으로 모퉁이 도서관 후원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한 어린이는 500원, 1000원 가격표에 책과 인형 등을 팔아서 1만 3천 원 매출을 올렸는데, 엄마는 1000원만 기부하면 된다고 했는데, 스스로가 2000원을 기부해서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예전 같으면 버렸을 테지만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환경 살리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참가자들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아이들 스스로 가격도 정하고, 가게 이름도 정성스럽게 판지에 적어오고, 물건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저절로 경제 교육도 되는 것이 좋다고 벼룩시장에 대해 칭찬하기도 했다.

이 축제에 처음 참가한 송이석호씨는 "외국 영화에서나 봤던 풍경을 직접 참여하니 참 좋네요. 주민들이 여유로워 보이고, 아이들이 밝게 눈빛을 뿜어 내는 걸 보면서 적잖이 놀라고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20여 년 가까이 이런 행사를 해왔다는 사실도 참 대단하게 느껴졌고요. 관 주도의 형식적 행사가 아니라 이런 자발적인 축제가 마을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네요."
라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이런 마을 축제가 가능한 것은 모퉁이도서관을 일구는 자원활동가들 역할이 크다. 모퉁이도서관 강영미 관장은 이날도 자원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손수 찰밥과 어묵탕 그리고 정성스러운 반찬을 해와서 점심을 대접했다. 자원활동가 35명이 아침 일찍부터 뒷정리할 때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남편, 아이들도 함께 짐을 나르기도 하고, 사진 찍기 봉사도 하고 손길을 보태었다. 평소에도 모퉁이도서관은 자원활동가 70여 명이 일주일이 2~3시간씩 시간을 내어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운영경비 역시 주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즘 전국적으로 주민자치, 민주시민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형식적인 틀거리를 갖춘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퉁이 마을 축제처럼 주민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자발적 참여로, 계획부터 실행까지 스스로 해가는 핵심이 빠진다면 그것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진정한 주민 자치는 이런 마을의 자원활동가들 역량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끝으로 모두가 모여 콩주머니를 던져 '박 터뜨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 모퉁이어린이도서관

 
모퉁이 마을축제는 끝으로 다 같이 모여 콩 주머니를 던져 박 터뜨리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박 터졌네, 복 받으세요"를 쓴 종이와 함께 박 속에 들었던 먹거리가 쏟아졌다. 그 순간 모퉁이 관장은 외쳤다.

"받은 복 주변 친구, 가족들과 다 나누어 가지세요."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모퉁이어린이도서관 #대전인권센터 #우리 같이 놀래? #마을책잔치 #전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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