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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왔을 뿐인데, 왜 죄인이 되어야 할까

[서평] 이상문 지음 '내 이름은 군대'

등록 2019.10.27 20:14수정 2019.10.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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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 동안 한국 군대에서 사망하는 이의 수는 약 100명 안팎이다. 국방부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해마다 군 사망자 수가 1000명을 넘었고 전두환 정권으로 넘어와서 처음으로 900명대로 줄어 들었다.

이후 점차 하락세를 보이다가 민주 정권에 접어든 2000년대부터 군 사망자가 연간 200명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여전히 매년 100명 정도의 장병은 입대 후 살아서 전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흔히 군을 전역한 사람의 '군대 얘기'라는 건 대부분 지나간 시절 고생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현역 때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나는 잘 이겨냈지' 같은 내용의 회고는 무사히 군을 전역한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군에서 잘 생존한 이의 경험'이 전역한 개인에게 돌아볼 만한 일이 된다는 건, 결국 군대가 그만큼 폭력적인 집단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군 내부의 문제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보기 위해, '평범한' 군생활을 보내지 않은 이의 회고록을 들여다 보는 일도 필요할 듯하다.

'성소수자', 그리고 '관심병사'였던 이의 군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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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 이름은 군대> 표지 사진 ⓒ 정미소

 
2019년 10월 출간된 <내 이름은 군대>는 성소수자로서, 그리고 관심병사로 군 생활을 겪은 이상문씨의 얘기가 담긴 책이다. 공군 입대 당시부터 훈련소, 그리고 신병 적응 기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당시 기록을 곁들여 솔직하게 풀어냈다.
 
"20XX년 X월 XX일
불안감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닌다. 그 정도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나름대로 조절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일상적인 불안감에 빠져 있다. 특히 군대에 있는 지금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 148쪽 중에서

20XX년 X월 XX일
그들은 충성을 바치는 표준적인 남성 국민을 창조하려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와 반대인 사람이 되었다. 국방부 장관인 한민구 씨가 내 모습을 보면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탄생시킨다는 사실을." - 218쪽 중에서

그는 성소수자로서 군대 내에서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것)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지내야 했다. 또한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걸 상담 시간에 무심코 고백했다가 '관심병사'로 분류되고 만다.

'관심병사'라는 제도의 취지는 도움이 필요한 병사를 따로 분류해 배려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전력에 포함되지 않는 병사에 낙인을 찍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저자 이상문씨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관심병사가 된 후로 '저 사람처럼 군 생활 편하게 해야 한다'는 조롱을 종종 듣곤 했다고 한다.


사실 군대 내에서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고 불만 없이 명령을 잘 따르는 자'가 좋은 병사로 평가받는다. 문제라면, 그 범주 바깥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죄인'이나 '비정상'적인 인물로 분류된다는 것 아닐까. 저자는 훈련소와 자대 생활에서 정해진 훈련 규범을 잘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우울증 때문에 특정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것을 구실로 소속 집단에서 비난받았다고 적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다시 생활관으로 올라오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울었다. 나는 왜 죄인이 되어야 할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군대에서 내 처지는 언제나 슬펐지만, 그때는 유난히 더 슬펐다. 억지로 끌고 와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마저 의무라고 제한하다니 참을 수 없었다. 국민이 아니라 그냥 사람 형상을 한 가축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 297쪽 중에서

그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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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장병들이 버스표를 구매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에세이 형식으로 개인의 경험을 엮은 <내 이름은 군대>는 '성공적인 군생활'이나 '모범적인 군인'을 담은 책은 아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한 그는 군 복무일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전역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군에 순조롭게 잘 적응하지 못한 이의 사례'라서 오늘날 필요한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이보다 분명한 예시가 또 있을까 싶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군대 내 폭력과 자살 사고는 매년 빠짐 없이 벌어질 정도로 드문 사건이 아니다. 최근 군인의 휴대전화 사용이 허가되면서 각종 사고가 줄어들고 있다지만, 그것보다 본질적인 건 군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문화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는 지적도 여전히 나온다. 또한 저자가 부대 내 아웃팅을 염려한 게 근거 없는 일이 아닌 것이, 한국 군대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했다는 게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바로 올해인 2019년이다(관련 기사 : "성소수자도 나라 지키는 군인, 혐오에 근거한 법 없애 달라").
 
"나는 동성애자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벌써 나는 자신들이 평범하다고 굳게 믿는 한국인들과 구분된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라서 나는 이러이러하다'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한다. (중략)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조용히 묻어갈 수 있는 문제다. 나만 조용하면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침묵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그저 혐오에 가슴 아파하기만 하면 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 이상문씨는 "내 인생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하나의 이 순간을, 기억하기 싫다는 이유로 내 인생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회고의 이유를 밝혔다. '기억하기 싫다고 배제할 수 없다'는 표현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군대가 '군의 문제점'을 직면해야 할 이유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군인이든 언젠가는 다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국군'이 단어의 뜻처럼 진정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려면, '정상'의 기준을 정해두고 거기 포함되지 못하는 개인에 희생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우울증을 앓거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정상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배제하는 곳이 좋은 사회는 아닐 것이다. 더 나은 군대가 되려면, 개인이 어떤 문제를 겪든 공동체가 더 성숙한 자세로 이해하면서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내 이름은 군대>는 보여준다.

내 이름은 군대 - 우울한 성소수자의 삽화

이상문 (지은이),
정미소, 2019


#내이름은군대 #군대 #성소수자 #관심병사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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