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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사 둘이서 '때수건'으로 이뤄낸 예술같은 일

금천 문화재단 '지그재그 봉제클럽'... 미싱으로 사람을 잇다

등록 2019.10.21 09:30수정 2019.10.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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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방 봉제공장독산동에는 간판이 없거나 다른 간판이 달린 봉제공장이 많다. ⓒ 왕자은

 
검색창에 '구로공단'을 검색하면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가 나온다. 가리봉역은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됐고, 벌집촌과 낮은 봉제공장들이 떠난 곳에는 높고 번지르르한 건물과 IT업체들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봉제공장이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 말했다. 구로공단을 가득 채웠던 봉제공장들은 그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난 6월, '2019 우리마을 문화통장' 사업 준비를 위해 지역의 목소리를 듣는 '콜로키움 금천'에서 처음 두 사람을 만났다. 1982년부터 금천에서 봉제 일을 해왔다는 강명자, 권영자 선생님은 40여 년 경력의 봉제 장인이자, 80년대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이다.

두 분은 디지털단지가 들어서면서 골목 뒤편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천 개가 넘는 봉제공장이 금천구 곳곳에 퍼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때 수출의 역군으로 불렸지만, 40여 년의 경력을 가지고도 야근에 시달리며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한다는 안타까움도 덧붙였다.

독산동의 골목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책방이라고 생각했던 가게도, 미술교습소라고 적혀 있던 곳도, 모두 알고 보니 봉제공장이었다. 누가 봐도 빌라촌인 골목을 걷다가 미싱 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건물마다 간판 없는 봉제공장들이 숨어 있었다.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 줄만 알았던 봉제공장들은 독산동의 골목골목에 흩어져 있었다. 봉제는 한 시절의 역사로 끝나버린 게 아니라, 골목으로 퍼져 여전히 금천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 있었다.

40년 숙련공 미싱사, 예술프로젝트 기획을 맡다
 

지그재그봉제클럽지그재그봉제클럽 ⓒ 왕자은

 
금천문화재단은 봉제 장인 강명자, 권영자 선생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분이 이미 여러 예술가와 협업해 예술작업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40년 동안 살고 일해온 곳은 금천인데, 구로공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구로에서만 호명되는 게 아쉬웠다고, 금천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두 사람은 잠깐 하고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원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다는 작품과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화수분처럼 쏟아냈다. 예술가나 기획자를 섭외하려던 계획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미 두 사람이 기획자이자 예술가가 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전문 예술가나 기획자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자로만 위치해 왔던 두 사람에게, 기획자라는 이름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기획자고 뭐고 다음부터는 그냥 시키는 것만 하고 싶다"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예술가나 기획자에게는 없는 삶의 경험이 축적돼 있었다. 두 사람은 40년 동안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택해 왔던 봉제를 활용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봉제 일을 하며 살아온 굴곡진 인생이 꼭 봉제 기법 '지그재그'를 닮았다며, 프로젝트에 '지그재그'라는 이름을 붙였다.

봉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다
 

지그재그봉제클럽 ⓒ 왕자은

 
첫 번째 프로젝트는 봉제 장인들이 네 차례에 걸쳐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봉제기술을 매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지그재그 봉제클럽'이다. 8월 23일에는 금천 행복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면생리대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9월 20일에는 지역의 마을활동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10월에는 더 많은 주민을 만나기 위해 참여자를 공개 모집했고, 앞선 봉제클럽에 참여한 봉제 장인과 마을활동가들이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다.

지난 14일, 금천 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에서 세 번째 '지그재그 봉제클럽'이 열렸다. 이번 주제는 '묵은 때 벗기기'로, 인견타올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인견타올을 만드는 시간인 줄로만 알고 찾아왔던 몇몇 참여자들은 낯선 진행방식에 난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인생 선배이자 동네 이웃 어른 같은 봉제 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털어놓았다.
 
"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은 아이가 어렸을 때의 시간이에요.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아이가 어릴 때는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하잖아요. 커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직장생활 하느라고 아이를 챙기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 시간을 지우고 다시 쓰고 싶어요." (김아무개씨) 

"봉제 장인들과 함께한다고 해서 미싱이나 손바느질을 배우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속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어요. 무언갈 만들고 배우는 프로그램에는 많이 참여해봤는데,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어요. 봉제 장인분들이 이모나 언니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아무개씨)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함께 둘러앉아 손바느질을 하다보니 오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천과 천을 연결하는 봉제기술은 어느새 사람과 사람 사이도 끈끈하게 잇는 매개가 돼 있었다.

봉제 동아리를 만들어 자주 모이자는 장인의 제안에 다수의 참여자가 반가움을 표했다. 뜨거운 반응을 얻은 '지그재그 봉제클럽'은 21일 월요일에 '장롱 속 추억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한 번 더 진행된다.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더는 입지 않는 옷을 활용하여 가방을 만든다. 가방을 만들며 옷에 얽힌 추억을 나눠보는 시간이다. 자세한 사항은 금천문화재단 홈페이지(gcf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 죽지 마, 우리 경력 합치면 245년이야!
 

지그재그 봉제수다방 ⓒ 왕자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봉제 장인들의 굴곡진 삶을 봉제기법을 활용한 예술작품으로 구현하는 '지그재그 봉제수다방'이다. 강명자, 권영자 선생님과 봉제공장에서 함께 일해온 동료,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 등, 여섯 분이 함께 독산동의 한 봉제공장에서 수시로 모인다. 봉제공장 안의 작은 수다방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여섯 분의 봉제 장인은 짧게는 십여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함께 일해 왔지만, 웃고 떠들기만 했지, 힘들고 어려웠던 속마음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수다방에 모인 그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생겨 행복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알파벳을 몰라 라벨을 거꾸로 붙였다는 이야기부터, 집안의 맏딸로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먹여 살렸지만 그 고생을 몰라줘 서운하다는 이야기, 지난 세월 너무 고생한 탓에 사는 날 중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까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공장에서 매일 떡을 나누고 박카스를 나누어 먹은 것이 습관이 됐다며, 여섯 명의 봉제 장인 모두가 양손 가득 간식을 가져오는 바람에 '지그재그 봉제수다방'은 항상 먹거리가 넘쳐난다. 각자 자신의 삶을 담은 작품을 만드신다고 개인 작업을 하신다더니, 꼭 겨울철 김장 품앗이하듯 서로의 집에 모여 서로의 작품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손을 보태고 계시다.

여섯 명의 봉제 장인이 뭉치면 웃음꽃이 끊이지 않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속상한 일도 있었다. 특수 공정이 필요해 특수미싱이 있는 봉제공장의 사장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자 누군가가 '경력이 몇십 년이면 뭐해, 같은 공정만 맨날 하니까 혼자서는 옷 하나를 못 만드는데' 하는 서운한 말을 뱉었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여섯 명의 봉제 장인은 그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단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여섯 명이 각자 자신 있는 공정을 맡아 하나의 거대한 옷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 여섯 명 경력을 합치면 245년이야!" 외치는 덕에 전시 제목도 '지그재그 내 인생 245년 숙련공 미싱사들의 삶'이 되었다. 245년의 세월을 담은 봉제 장인들의 작품은 12월 2일부터 5일까지 금나래아트홀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봉제 장인의 삶이 잊히지 않도록
 

지그재그 봉제수다방 ⓒ 왕자은

 
기획자로서의 멋진 데뷔를 마친 두 사람은 벌써 내년 프로젝트의 기획도 마쳤다. '지그재그 봉제클럽'은 올해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봉제 동아리를 만들고, 면생리대를 만들어 지역의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나누어주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지그재그 봉제수다방'은 올해 참여한 여섯 명의 봉제 장인이 각자의 동료를 섭외해 더 많은 봉제 장인과 함께 예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봉제 일을 하며 살아온 인생을 가사로 적고 노래에 담을 생각이다.

금천구의 역사이자 현재를 지탱하는 힘, 봉제. 천 개가 넘는 봉제공장과 수많은 봉제 장인들의 삶과 노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금천문화재단은 앞으로도 봉제 장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운영할 계획이다. 봉제 장인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가 금천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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