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책방, 순천에 이런 곳이

[마을책집 나들이] 전남 순천 '책방 심다'

등록 2019.10.17 16:01수정 2019.10.1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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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심다'에서 ⓒ 최종규/숲노래

   

책방심다 앞. 필름자판기가 있다. ⓒ 최종규/숲노래

  
참고서나 문제집이 아닌 책을 사러 처음 책집에 가던 때를 제대로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형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러 마을에 있는 작은 책집을 다녀온 때는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었을 수 있어요. 일곱 살 무렵에 형 심부름으로 만화책을 사던 일은 또렷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책집이며, 책집으로 가려고 디딤길을 올라 2층 안쪽에 있는 골마루까지 걷던 일도 생생해요.

중학생 무렵부터 시집하고 <태백산맥>을 사려고, 또 이때 갓 한국말로 옮기던 만화책 <드래곤볼>을 사려고 마을책집을 드나들었습니다. 이즈음에는 형 심부름으로 <하이틴> 같은 잡지를 샀고, 저는 <르네상스>하고 <아이큐점프> 같은 만화잡지를 샀습니다. 결이 다른 만화잡지 둘을 나란히 보았는데, 결이 달라도 줄거리나 이야기가 아름다우면 어느 만화이든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시렁 ⓒ 최종규/숲노래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헌책집에 깃든 책시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처음으로 깨달은 뒤부터 이레마다 이틀씩 보충수업·자울학습을 빼먹고 헌책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말 그대로 달려갔습니다. 오후 다섯 시 넘어서 드디어 정규수업이 끝나면 이 핑계 저 토를 붙여서 뒷수업을 빼먹으려 했고, 핑계나 토가 안 먹히면 학원에 가는 동무들 물결에 슬며시 파묻혀서 얼른 달아났지요. 고등학교가 있던 인천 용현5동에서 인천 금창동 배다리 헌책방거리까지 한숨도 안 쉬고 달렸어요.

두 가지가 아쉬웠어요. 첫째,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삯이 아쉽고, 걸어가든 버스를 타든 달릴 적보다 느리니(버스는 여기저기 돌아서 가느라), 책집에서 10분이라도 더 책을 읽고 싶어서 한숨을 안 쉬고 달렸습니다. 아낀 버스삯으로는 책값에 보태었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삯까지 탈탈 털어서 책 한 자락을 더 장만하려고 하다 보니, 인천 배다리에서 인천 연수동까지 두어 시간을 걸어서 돌아갔어요. 더구나 이렇게 걸어서 돌아가는 밤길에 거리등 불빛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책시렁 ⓒ 최종규/숲노래

   

책시렁 한켠 ⓒ 최종규/숲노래

 
어느 모로 보면 책에 미친 사람이지만, 다르게 보면 입시지옥 수렁에서 빠져나와 숨쉴 구멍을 찾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대학입시하고 얽힌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멀리한 길이지만, 다르게 보면 삶을 슬기로 일깨우는 책을 마주하면서, 어른다운 어른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찾으려던 길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마음껏 책집마실을 다녔습니다. 이제 더는 저한테 '참고서를 보라'느니 '문제집을 펴라'느니 하는 잔소리는 한 마디도 안 들을 만했거든요. 본고사까지 치른 고등학교에서는 그날부터 날마다 헌책집에 파묻혀 그 헌책집이 문을 닫을 밤까지 갖가지 책을 읽었어요. 가벼운 주머니로는 살 수 없는 책을 한국책이든 외국책이든 가리지 않았고, 오래된 책이든 새책이든 따지지 않았어요.
 

'책방심다' 추천도서를 달마다 벽 하나를 채워서 꽂아 놓기도 한다. ⓒ 최종규/숲노래

 
이제 전남 고흥이란 시골에 살며 책집마실을 달포에 한 걸음을 하기에도 빠듯합니다. 어디이든 다 먼 탓입니다. 그래도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순천에 마을책집도 헌책집도 있어서 반가이 찾아갑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다음 시내버스를 갈아타고서 천천히 거닐어 '책방 심다'에 이릅니다. 여러 해째 이곳을 찾아가는데, 책방 심다를 찾아갈 적마다 '심다'란 이름을 혀에 얹으면서 즐거워요. 아마 이곳 '심다'를 찾아가는 이웃님도 매한가지일 테지요.

우리는 무엇을 심을까요? 책을 읽는 두 손으로 무엇을 심을까요? 책을 읽고서 우리 마음에 무엇을 심을까요? 책으로 배운 슬기를 몸으로 풀어놓아 새롭게 익히는 길에 어떠한 사랑을 어느 곳에 심을까요?
 

책시렁 한켠. 손글씨 ⓒ 최종규/숲노래

   

'책방심다'에서 하는 작은 전시회 ⓒ 최종규/숲노래

 
우리들 사랑심기는 얼마나 고울 만한가를 헤아리면서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이파람, 열매하나, 2019)을 집어듭니다. 서울 아닌 시골이라는 터전이 우리 마음자락에 어떠한 품인가를 지켜본(탐구) 이야기(생활)를 글로 조곤조곤 풀어냅니다.

저는 대학교를 그만둔 몸입니다만, 그만두기 앞서, 또 그만두고서도 몇 달 즈음 대학 구내서점에서 일꾼으로 지냈습니다. 책집 일꾼으로 지내던 삶은 아주 뜻깊은 나날이었어요. 새책집에서 일을 하니 날마다 드나드는 책을 마음껏 살필 만합니다. 책꽂이로 옮기면서, 보기 좋게 자리를 잡으면서, 책을 사는 분들한테 책싸개를 씌워 주면서, 힐끗힐끗 넘겨읽는 몇 쪽이 달콤했어요. 책손이 뜸할 적에는 흐트러진 책꽂이를 갈무리한다면서 슬쩍슬쩍 여러 쪽을 넘기고 제자리에 두기를 되풀이했지요.

이런 나날을 되새기면서 <전국 책방 여행기>(석류, 동아시아, 2019)를 손에 쥡니다. 글쓴이는 책집 일꾼을 그만두고서 나라 곳곳에 있는 책집을 찾아가서 만나보기를 했다는군요.

다만, 이 책을 쓰신 분이 너무 만나보기에 매였지 싶습니다. 꼭 어느 고장 어느 책집지기를 만나서 이야기를 묻지 않아도 되거든요. 사뿐사뿐 찾아가서 조용히 책을 읽고 사서 나오는 손님 몸짓이 된다면, 저절로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어느 책집에 가든 그 책집 책꽂이만 보아도 책집지기 마음을 환하게 읽을 수 있거든요. 책꽂이하고 갖춤새가 바로 책집지기 마음이요 이야기입니다.
 

책집 모습 ⓒ 최종규/숲노래

   

책꽂이 ⓒ 최종규/숲노래

 

이제는 시골에서 살기에 책집마실이 뜸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만, 시골에서 살며 종이책을 덜 읽거나 안 읽어도 넉넉하다고 느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인천이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 날마다 숱한 책집을 찾아다니고 밤늦도록 그곳에 머물며 '책집 = 서울(도시)을 밝히는 푸른 숲터'로 느꼈거든요.

바람 이는 숲을 거닐려고 책집마실, 또는 책숲마실을 다닙니다. 바람이 는 숲을 거니는 마음을 누리려고 종이책을 손에 쥐어 살짝 펼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도 종이에 붓으로 글을 새삼스레 그려 넣으며 새로운 책이 태어나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책숲(책방)에서 바람으로 만납니다. 서로서로 바람입니다.

전남 순천 '책방 심다'

전남 순천시 역전2길 10
061-741-4792
https://www.instagram.com/simdabooks
https://www.facebook.com/thesimda

 

곳곳에 살짝 붙은 손글씨와 그림엽서 ⓒ 최종규/숲노래

   

이제 책집마실을 마치고 나온다. ⓒ 최종규/숲노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s://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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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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