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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가 정치 아닌 '인생'을 말하게 된 이유

[인터뷰] 뇌종양 수술 후 책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발간

등록 2019.10.17 08:36수정 2019.10.1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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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 권우성

   
지금쯤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종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쉴 새 없이 방송국을 오갔을 테다. '조국 사태'처럼 거대한 정치 이슈가 터지면 "한마디만 해달라"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다 키웠으니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부끼리 자유롭게 놀러 다니자고 아내와 약속도 한 터였다. 이는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2019년 계획이었다.

그는 1998년부터 방송과 신문에서 정치를 주제로 글을 쓰고 말을 해온 1세대 시사평론가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오마이뉴스> 인터넷 생중계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노무현 바람'과 함께 그 역시 '스타'가 됐다. MB 정부 이후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위기를 겪었지만, 쉽고 날카로운 해설이 좋은 평가를 얻은 덕에 미디어 업계에서 여태껏 살아남았다.

그렇게 21년 경력을 이어오던 그는 올해 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지난 2월 서울대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현재까지 병원에서 재활 중이다. 합병증으로 찾아온 폐렴과 어지럼증으로 인한 고비를 넘겼지만, 후유증으로 마비된 혀는 회복이 더뎠다. 모든 방송을 그만둬야 했다. 아내와의 여행은 여전히 계획에 머물러 있다.

대신 그는 방송이 아닌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라는 에세이집으로 사람들 앞에 다시 섰다.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된 것들'을 고백한 책이다. 병상에서 깨달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224쪽 분량에 담아냈다.

시사평론가인 그는 왜 정치가 아닌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슈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사람의 시선은 투병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10일 서울 강남의 한 재활병원에서 유창선 시사평론가를 만났다.

후유증을 앓았지만... 사랑을 되찾았다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 권우성

 
자주색 셔츠에 병원복 바지 차림으로 나온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아직 혀 근육이 수술 전으로 돌아오지 않아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ㄹ' 받침이 살짝 뭉개질 때가 있었지만 알아듣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수술 후 장애로 물을 마실 수 없는 그는 말하는 도중 침을 힘겹게 삼키곤 했는데, 그럼에도 한 번도 쉬지 않고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를 했다.

"많이 좋아진 거예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어요. '삼킴 장애' 때문에 식도 괄약근이 닫혔어요. 몸에 튜브를 연결해서 섭취하다 최근에 보톡스 시술로 식도를 임시로 열어놔서 묽은 걸 좀 먹고 있죠. 물은 기도로 넘어갈 수 있어서 여전히 못 마셔요. 그래도 얼마 전에는 부드러운 밥이나 빵은 괜찮다는 진단을 받아서 태극당 샐러드빵을 사 먹었어요. 수술 전에 먹고 싶었는데 빵집이 있는 충무로까지 가기 번거로워 '퇴원하고 먹자' 했거든요. 그게 8개월이나 걸렸네요(웃음)."

종양은 소뇌와 숨골(연수) 사이에 있었다. 중추신경 12개가 지나는 곳이어서 잘못 건드리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구강 쪽 신경이 손상돼 혀 근육이 마비됐다.

설상가상으로 기립성 저혈압까지 생겨서 옷을 갈아입다가, 휠체어를 타려다가 실신했다. 한동안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의사는 "앉는 걸 목표로 잡자"고 했다. 목표가 '앉기'인 삶은 그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결코 원하지 않던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은 때로 인생의 설계를 뒤흔들어 놓지만 결국 그것을 다시 정돈하고 바로잡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계획한 것이든, 우연이 만든 것이든, 고정된 운명이란 없는 셈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많다." - 91쪽

그는 폐허가 된 몸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기로 했다. 인지능력과 손은 수술 전 그대로였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까닭이다. 전처럼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쓸 수는 있었다. 누운 상태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틈틈이 메모를 해뒀다.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 권우성

 
재활운동으로 다시 앉을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4월부터 <시사저널>에 정치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한 달 후에는 책 원고 작업에 돌입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재활 운동 프로그램 7개를 끝마치고 나면 글 쓸 시간은 하루에 딱 3시간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쉬거나 잠자리에 들 때 그는 병원 침상에 앉아 밥상에 노트북을 펴놓고 한 자씩 써내려갔다. 3개월 만에 책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근육이 다 빠져서 오래 앉아 있기조차 버거웠는데도 계속 썼어요.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방송이야 혀가 마비돼서 앞으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또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얻었잖아요.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거죠."
  
그가 필사적으로 재활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생의 의지를 벼린 건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는 기꺼이 지루한 투병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동지가 돼 주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그의 손을 잡고 검사실 이곳저곳을 다녔고, 수술을 며칠 앞두고 그가 마지막 방송 출연을 할 수 있도록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때 "방송 그만두기 아깝다"는 희망을 그의 마음에 심어준 것도 아내였다.

그가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머물던 일주일 동안, 아내는 보호자 대기실을 떠나지 않고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 하루 2번 찾아오는 면회시간에 중환자실 문이 열리면 빠른 걸음으로 가장 먼저 들어왔고, "잘 견뎌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대권주자와 유명 정치인의 행보에 주목하는 일을 해오던 그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온 "작은 영웅"을 발견했다.
 
"이번에 뇌종양을 겪으면서 나는 건강과 신체 기능의 일부를 잃었지만, 아내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다. 그래서 결코 슬프지 않았다." -39쪽

꼭 이루고 싶은 약속 한 가지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 권우성

  
앞으로 그는 "큰 삶이 아니라 작은 삶, 무거운 삶이 아니라 가볍고 소소한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집착하며 살아왔던 많은 것이 사실은 부질없음"을 생과 사의 기로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일이었다. 대학 때 소위 '운동권'이 된 후로 그의 세계는 끊임없이 바깥세상을 향해 뻗어 나갔다. 진보 성향의 출판사 대표, 연구자, 정당 활동을 거쳐 시사평론가가 됐고, 인문학을 공부해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의사에게 '머리에 종양이 있다'는 말을 들은 날에도 SRT를 타고 광주 KBS까지 내려가 생방송 토론을 했다.

"인간의 성실함이 소중하긴 하지만, 동시에 성실할수록 그만큼 집착이 커지는 게 인간인 것 같아요. 열심히 했으면 이루고 싶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집착과 욕망이 생겨나고... 남은 인생은 도덕적·정치적 의무감이나 정형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일 이외에) 더 많은 걸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요. 그동안 저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간에 '시대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안 거죠.

세상과 담쌓고 개인적인 이득만을 위해 살자는 뜻이 아니에요. 정치는 필요해요.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니까요. 우리는 좋은 정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어요. 다만 정치 자체가 나의 좋은 삶을 보장해주는 건 전혀 아니라는 뜻이죠.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자기 삶은 피폐한 사람을 많이 봐 왔어요. 자신과 가족을 충실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삶, 즉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매체 칼럼으로 시사평론을 재개한 그는 그래서 요즘 고민이 깊다. 변화한 정치적 시각과 인문학적 사유를 담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정치공학과 진영논리가 통하는 현실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삶과 조화를 이루는, 조금 다른 정치적인 글쓰기를 꿈꾼다.

그가 조국을 둘러싼 이슈의 흐름 속에서 '검찰 개혁'과 '조국 퇴진'이 아닌, 그 사이를 주목하는 이유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파층에게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판단이다(조국 법무부 장관은 인터뷰 이후인 14일 사퇴했다).

"지금 정치 때문에 다들 너무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뜨거우면 주위 사람들이 데여요. 사랑은 사라지고 목적과 대의만 남는 거죠. 검찰 개혁 반드시 해야 해요. 저도 검찰의 과거 행태에 수없이 분노해 왔어요. 그런데 대한민국 의제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북정책, 민생문제, 교육과제를 풀 수 있으려면 결국 진영 대결을 조정해야 해요. 어떻게든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때는 겨울이었다. 계절이 세 번 바뀌어 어느덧 가을이 됐다. 아직 병원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지금도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온다. 입원한 줄 모르는 작가들이 섭외 전화를 거는 것이다. 사정을 설명하면 "회복 후에 꼭 와 달라"는 답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완전히 회복되면 방송할 기회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방송 복귀보다 더 고대하는 건 아내와의 여행이다. 퇴원하게 되면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자고 다시 약속했다. "그게 이뤄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저 멀리에 있는 누구를 얘기하기 이전에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족들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 권우성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된 것들

유창선 (지은이),
사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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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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