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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보수적인 도시, 거기서 '최초'가 된 한국여성

[김연정의 엣지 인터뷰] 김숙영 연출 인터뷰 ①

등록 2019.10.20 17:02수정 2019.10.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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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영 연출 ⓒ 김숙영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해를 더해 갈수록 완성도 높은 작품과 색다른 기획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관객들이 진정한 오페라의 성찬을 즐길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화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세계를 밀도 있게 그려낸 오페라 <이중섭>은 단연 이번 축제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공연의 중심에는 넘치는 카리스마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김숙영 연출이 있다. 한국 창작오페라가 나아갈 길을 당차게 제시하면서 활동무대를 넓혀나가고 있는 그녀와 만났다.

이중섭의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되다

"규모에 상관없이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죠. 특히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1회 때부터 참여를 했고, 4회째를 맞은 올해 또 초청을 받은 만큼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이번에는 한국 창작 오페라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초청된 <이중섭>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설렌다고 참가 소감을 털어놓았다.

"2018년 서귀포예술단에서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기쁜 마음에 달려갔죠. 이중섭 선생님 이야기가 오페라로 탄생하기까지 서귀포관악단의 이동호 지휘자님의 공로가 컸다고 들었어요. 먼 거리를 오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작품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서귀포시 관계자분들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독특하다 싶을 정도로, 각별하다 느꼈죠.

통상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작품 같은 경우에는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거든요. 추진하는 정책이나 기조가 바뀌면, 지원의 범위나 방향도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쇼케이스에서 전막까지 가기도 힘든데, 4년 넘게 지속된다는 것 자체가 드문 경우죠. 게다가 이중섭이라는 인물은 서귀포 태생이 아니고, 제주도에서 불과 11개월을 사신 게 전부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지역적인 색깔을 줄이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함께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시더라고요. 그 취지에 너무나 공감했고, 기꺼이 의미 있는 여정의 동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작품에 참여하는 성악가분들도 창작오페라 지원에 대한 모범 사례가 아니겠냐고 하세요."

 

2019 서울오페라페스티벌 화제작, <이중섭>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김 연출은 대본까지 직접 써내려가면서 천재화가로 불렸던 화가 이중섭의 삶에 매료됐다. 비록 시대는 달랐어도 예술가로서 소박한 열망을 지니고 살았던 그의 삶이 전해준 울림은 숭고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어떻게 다이아몬드만 보물이겠어요? 어떤 인물의 삶도 저희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죠. 그분의 인간적인 삶과 고뇌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려 했어요. 이중섭 화가의 참된 벗이었던 구상 시인이 이중섭 선생이 밥을 거부하기 시작하니까 '예술가를 예술로 인정하고, 예술로 밥을 안 먹이는데 어떻게 곡기가 입으로 넘어가겠나?'라는 말씀을 하셨대요.

지금도 참 공감 가는 이야기죠.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삶, 또 그분의 꿈이 대본을 쓰는 내내 마음에 참 와 닿더라고요. 부인 옷 한 벌 사주고, 아들 자전거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림 팔고 싶다는 것 외에 별 다른 욕심도 없던 분이었어요. 그림 값 대신 '술 한 잔 사게나!' 하고 마는 그분을 보면서 주위에 있는 예술가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지켜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문득 한 영화배우 분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나는 살갗이 없다. 나는 껍질이 없다. 누군가는 내 껍질이 되어줘야 한다.' 그 껍질이 되어주고자 하는 친구들의 우정, 그 우정을 통한 인간미를 그려보고 싶었죠."


대중들이 예술가의 삶에 대해 갖는 막연한 동경이나 낯선 거리감을 지우는 대신에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 연출의 주된 목표였다.

"관객 중에서 화가나 음악가가 과연 몇 분이나 되겠어요? 그분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투영해볼 수 있게끔 하려고 대사부터 사소한 제스처 하나까지 신경을 썼어요. 관객의 즐거움이 바로 그런 게 아니겠어요? 무대 위에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 말이에요. 그래야 더 쉽게 작품에도 몰입할 수 있겠다 싶었죠."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 공연과 함께 열려 화제를 모은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 이중섭전>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그는 특히 이번에는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예술총감독이자 노블아트오페라단 신선섭 단장의 아이디어로 이중섭 미술관 초청전시는 물론이고, 현석주 작곡가가 작품에 대해 해설해주는 '오페라 백퍼센트 즐기기' 시간까지 마련되어 있다며 관객들이 작품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꼭 놓치지 말라고 덧붙였다.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다

국내 오페라 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명성을 얻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변화와 도전의 한가운데에서 치열하게 노력해온 과정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미술을 전공하던 그는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성악'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한 행사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한양대 박수길 교수가 한 "너는 성악해도 되겠다!"는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남편의 해외연수로 미국에 동행하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오페라 가수로도 활약하던 그는 오페라를 지루해 하던 딸들이 뮤지컬을 보고 환호하는 것을 보고,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인구의 80%가량이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미국 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애리조나 주립대학 공연예술학과에 진학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동양 여성이 입학하고 졸업한 사례도 최초였던 만큼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차별과 편견의 벽도 거셌다.

"동양 사람이 지나가면 일제히 쳐다볼 정도로 불편한 시선이 따라다니는 곳이죠. 제 나이 서른일곱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느낀 건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원하는 것이 내 것이 된다는 거예요. 단지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힘들면 쉽게 포기해 버리곤 하잖아요? 제가 후배나 제자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자기 수준이나 능력보다 조금씩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습관을 들여라!'라는 거예요.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딸 둘 데리고 공부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는데 그때마다 저에게는 수호천사가 나타나곤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 사는 이웃주민이 오더니 시간표를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제가 6개월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에 다니는 걸 봤다는 거죠. 제 스케줄에 맞춰서 아이를 봐주려고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놀랐어요. 그 사람도 직장 다니는 여성이었거든요. 언젠가는 스파게티를 가져와서 '한 술 떠보라!'고 권하기도 했는데 그게 어디 미국인이 가지고 있을 법한 있을 정서인가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죠.

하루는 밖이 떠들썩해서 내다보니 건넛집 아저씨가 저희 집 잔디를 깎고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빨리 들어가서 공부해!'라는 대답이 들려오더라고요. 입학할 때만 해도 동양여자는 안 뽑는다고 해서 청강생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았는지 백인 여교수가 제게 적당한 배우 역할을 준 적도 있었어요. 그 시간들이 지난 뒤에 깨달았죠. 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은 제각각이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모두가 좋아한다는 걸요."


대화도 잘 통하지 않은 이역만리에서 힘겹게 공부를 마치고, 연출가로서 새롭게 출발한 그녀는 2014년에는 한국인 연출가 최초로 '뉴 오페라 싱가포르'가 150년 전통의 빅토리아 극장 리모델링 개관 기념으로 준비한 오페레타 <박쥐>의 연출을 맡으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한국인 연출가 최초로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뉴 오페라 싱가포르'의 오페레타 <박쥐> ⓒ 뉴 오페라 싱가포르

 
"이것도 참 극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남편 일 때문에 2년간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잘 아는 만큼 작업하기에도 유리했어요. 그 덕에 대본도 제가 직접 썼죠. 배경도 21세기 싱가포르로 바꾸고, 당시 싱가포르에 불고 있던 한류열풍을 의식해서 한국어와 유행어 등을 넣기도 했어요. 그게 잘 통했던 덕분인지 '오페라 보면서 이렇게 박장대소하며 웃은 적이 없었다'는 호평이 쏟아졌고, 공연 내내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죠."

혹자는 김 연출의 삶이 잘 짜놓은 계획표대로 운 좋게 흘러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중대한 결정의 기로마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저라고 힘든 일이 왜 없었겠어요? 시련도 있었고,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죠. 돌이켜 생각해보니 굳이 계획하고 머리 쓸 게 아니라, 닥치는 대로 진심으로 살면 되는 것 같아요. 하나하나 따지고 재면서 시작하면,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오래 못 가더라고요. 전 일단 하겠다고 결심하면, 철저한 책임감을 갖고 해요. 남의 돈도 내 돈처럼 아껴 쓰고요.(웃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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