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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촛불집회'에 다녀온 고등학생이 한탄한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73] "앞에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지만..."

등록 2019.10.10 16:32수정 2019.10.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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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이라고요? 그걸로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요?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11월까지 대학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부분 아이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미 백약이 무효가 돼 버린 대학입시를 다시 손본다고 달라질 건 전혀 없을 거라고 못 받았다. 이 와중에 '역사를 통해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창시절'은 형용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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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9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교육공정성강화특별위원회-교육부 연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이들은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대학입시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며, 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교육개혁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학교생활이 '행복해질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교육개혁이란 3년간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 그뿐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도, 책도 대학 가서 맘껏 즐기고, 악기도 배우고, 여자 친구도 대학 가서 사귀라며 대학입시에 '올인'하도록 다그쳐놓고선, 입시 공정성을 강화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게 웃기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대학입시가 어떻게 바뀌든, 모든 게 대학 진학 뒤로 유예되는 건 마찬가지라는 거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창 시절'은 형용모순의 어휘다.

이미 아이들은 십수 년 동안 숱하게 경험했다. 한 해도 바람 잘 날 없었던 대학입시를 두고 그때마다 땜질 처방을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됐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이젠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조물주가 와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냉소만 흘러넘치게 됐다.

교육과정 개정도 무용지물이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모셔다 수많은 공청회를 열어 개정에 개정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늘 '태산명동서일필'이었다. 이젠 교사들조차 지금 운영되고 있는 교육과정이 어떤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학교 교육에 있어 주상 같은 규범이니만큼 적혀 있는 대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만 기대 효과가 달성될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예컨대 지난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특화된 교육을 하자는 취지였지만,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시 과목만 강화되는 결과만 초래됐다. 아울러 학기당 이수 과목 수를 제한했지만 아이들의 학습 부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설마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대학입시가 연동되어 변화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일까.

최근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시 대학입시와 완전히 따로 노는 '왕따 교육과정'이라며 손가락질받는 처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핵심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라는 호평 속에 출발했지만, 기존의 대학입시 관행과 충돌하면서 삐걱거리고 있다. 더욱이 여론의 추이에 따라 학종의 영향력이 축소되면 2015 개정 교육과정도 '안락사' 수순에 들어갈 게 틀림없다.

명문대 특권 보장되는 한 대학입시는 공정해질 수 없다

아이들은 교육개혁이 난망하다고 여기는 이유를 우선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SKY'로 대표되는 명문대를 향한 욕망이 제어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교육개혁은 늘 '입으로만 떠드는' 개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기성세대에서 심지어 유치원생들에게까지 그대로 전이된 '본능'이 돼 버렸고, 교육개혁을 대학입시 개혁과 동일시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서열화된 학벌 구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친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라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별다른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다수의 아이가 '학원 뺑뺑이'를 감수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영재고나 특목고, 자사고에 간 뒤,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모범생의 생애주기'로 여긴다는 거다.

일부 아이들은 자사고 다니는 아이가 일반고 아이들을 하인 다루듯 조롱하고, 명문대생들이 '지잡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키득거리는 것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정당한 대가라는 것이다. 심지어 '지잡대'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그러한 조롱과 멸시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저 자신들이 공부 못한 죄라고 생각한다.

졸업 후 취업률이 높다거나 급여가 많다는 외적인 특권 이전에 명문대생은 이미 입학과 동시에 엄청난 특혜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한 아이의 말마따나, 대다수의 아이에게 '넘사벽'인, 채 5%도 안 되는 그들에게는 우리 사회가 두루 인정한 '까방권(까임 방지권)'이 보장된다. 명문대생이라면 거칠고 무례한 성격도 되레 터프하다고 칭찬을 듣는단다.

명문대 입학 자체가 특권을 보장받는 통로다 보니, 정작 대학에 '큰 배움'을 위해 진학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토를 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재수, 삼수를 마다하지 않고 견뎌낼 테지만, 명문대에 합격만 하면 자신의 생애 더 공부 따윈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아이조차 있을 정도다. 아이들에겐 오로지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듯 명문대 특권이 보장되는 한 대학입시는 결코 공정해질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레기' 언론들의 도움을 받아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지방보다는 서울에, 빈곤층보다는 부유층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이 돼 버린 마당에 총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진 지역과 계층이 유리하다는 건 당연지사라는 거다.

수능과 학종 사이의 갈등은 둘 중 어느 것이 교육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명문대 진학에 어느 것이 더 이로운가의 문제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서울과 부유층에 유리하지만 어디가 그들에게 확률이 더 높은가를 두고 주판알 튕기는 형국이다. 어차피 그들의 명문대 독식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대다수는 예나 지금이나 들러리일 뿐이다.

아이들조차 부모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대학입시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학생부 기재 항목을 줄이고, 자기소개서 등을 없앤다고 대학입시가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하다고 했다. 오로지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무능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만들어야 

지난주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다녀왔다는 한 아이는, 진정 교육개혁을 바란다면 대학입시와 별개의 문제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입시가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순간 다른 모든 교육 문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가정이든 학교든 대학입시에 매몰되고, 꿈 많은 10대 학창 시절 전부를 대학입시에 희생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창시절'은 형용모순의 어휘다. ⓒ 연합뉴스

 
단상의 사회자를 따라 열심히 '검찰개혁' 구호를 외쳤지만, 솔직히 공허하게 들리더라고 했다. 주변에 자기 또래는커녕 20대 젊은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 40대 이상의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물으니, 그는 나름 일리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맥락상 교육개혁과 검찰개혁이 힘든 이유가 동일하다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주말에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백만 명이 모였다면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뜻일 텐데 왜 자녀들은 집에다 두고 부모들만 왔을까요? 몇 해 전 대통령 탄핵까지 앞장섰는데, 검찰개혁 운운하기에는 어리다고 여기진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집회 도중 어떤 분이 자녀와 통화하는 걸 엿듣게 됐는데 맨 먼저 나온 이야기가 학원에 다녀왔는지를 묻는 것이었어요.

그분에게서 앞에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지만, 뒤에서는 자녀가 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읽혔어요. 자녀를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사로 키우려는 욕망과 검사의 막강한 권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명분 사이에 어떤 게 더 강할지는 물어보나 마나 아닐까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야 한다는 욕망을 내려놓지 않고서, 대학입시 공정성 운운하는 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가 제안하는 교육개혁 방안은 이것이다. 대학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어차피 졸업장을 따기 위해 가는 대학이라면, 굳이 애면글면하며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답도 없는 대학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취업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해주는 대책이 근본적인 교육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교육개혁의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 모호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는 삶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다.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초등학생 아이들 교과서에서 삭제된 것도 그래서다. 말단지엽적인 대학입시 공정성 강화 운운하며 교육개혁의 목표와 당위를 흐리거나 그르쳐서는 안 된다.

씁쓸한 사족 하나. 이기적 욕망 탓에 교육개혁과 검찰개혁이 난망하다고 말한 그 아이도 지금 명문대 진학을 위해 '올인'하고 있다. 한때 박원순 서울시장을 롤 모델 삼아 시민운동가를 꿈꿨던 적이 있지만, 평생 '자발적 가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지금은 바뀌었을지언정 장래희망을 시민운동가라고 적었던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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