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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포기하려고도..." 전여빈이 고백한 속마음

[인터뷰]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은정역 전여빈

19.10.08 11:45최종업데이트19.10.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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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여빈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컴퍼니

 
최고 시청률 1.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불과 8개월여 전 1600만 관객을 끌어모은 감독의 성적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숫자다. 그러나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는 분명 이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서른 살 여자들의 고민, 연애, 일상을 다룬 <멜로가 체질>은 독특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특히 극중에서 이은정(전여빈)은 술에 취해 "오빠라고 불러보라"며 추근덕 대는 상사를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는가 하면, 비속어로 촬영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CF 감독에게 똑같이 험한 말로 응대하며 통쾌한 웃음을 자아냈다. 

드라마가 종영되기 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전여빈을 만났다. 전여빈은 극중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흥행 대박에 성공한 감독 이은정으로 분했다. 극중 이은정은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를 다룬 저예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300만 관객을 열광하게 만드는 인물. 하지만 촬영 중 만나 사랑에 빠진 홍대(한준우 분)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코미디 드라마답게 <멜로가 체질>은 통통 튀는 템포를 유지했지만 극중에서 은정은 환한 웃음을 짓는 장면조차 많지 않다. 이에 대해 전여빈은 "은정이의 첫 촬영은 (동생이 일하는) 플랜디에 '도시락 폭탄'을 들고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은정이는 미소를 짓더라도 이 정도가 최대일 것 같다'며 감독님이 제게 직접 웃어보였는데, 그게 은정이라는 인물을 가늠할 수 있는 키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때의 힌트로 인물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전여빈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컴퍼니

 
은정은 죽은 홍대의 환영을 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눈다. 은정에게 고민이 있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면 항상 홍대가 나타나 달래주거나 고민에 대한 답을 알려주곤 한다. 전여빈은 그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은정만의 방법이었을 것이라 설명했다.

"(은정이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이 실체라고 믿는 사람이다. 은정이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홍대가 죽은 걸 안다. 하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두려웠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부터는 홍대의 죽음을 망각하고 정말로 (살아있다고) 믿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례를 찾아봤는데, 너무 큰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정 기억을 스스로 없애기도 한다더라. 그걸 보고 은정이의 감정을 이해하게 됐다."

힘들어 하는 은정을 곁에서 지키는 사람들은 친한 친구 임진주(천우희 분)와 황한주(한지은 분), 그리고 동생 효봉(윤지온 분)이었다. 매일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는 이들의 동거 생활을 부러워 하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많았다. 전여빈 역시 이에 공감하며 "친구들과 주고 받는 대사에 살아 있는 리듬감이 재미있었다. 그런 속도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편한 사이인지 보이지 않나. 친구들과 있을 때 (은정이) 가장 편하게 보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여빈은 "촬영할 때 (드라마 장면보다) 더 시끄러웠다. 다 '투머치 토커'들이고 흥이 많은 사람들이다. 자기 표현도 잘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배우들이었다. 한 마디로 사려 깊고 흥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 같았다. 너무 재밌고 유쾌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귀띔하기도 했다.

<멜로가 체질>에는 전여빈부터 한지은, 윤지온, 이주빈(이소민 역), 김명준(이민준 역), 이유진(김환동 역) 등 유달리 신인급이거나 낯선 배우들이 많았다. 이들은 유명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전여빈 역시 "내게도 <멜로가 체질>이 첫 드라마 주연 작품"이라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지은 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번이 드라마 첫 주연 작품이다. 우리 드라마에 무명 배우들이 많다. 그들에게 (제작진이) 용기내서 기회를 주었다는 점, 그 캐릭터들이 허투루 흘러가지 않고 (극 중에서) 살아있을 수 있게 판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너무 고마운 현장이었다. 저 역시 유명하지 않은 사람인데 은정이라는 역할을 주시지 않았나. 그 점이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다."
 

배우 전여빈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컴퍼니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멜로가 체질>은 꽤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화제를 모았다. 트렌디한 유머도 호평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극 중 인물들의 현실적인 대사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직접 대본에 참여하고 연출을 한 이병헌 감독의 힘이었다. 전여빈은 이병헌 감독에 대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작품으로만 봤을 때는 (이병헌 감독이) 시끄럽고 발랄하고 실없는 농담을 수시로 던질 것 같지 않나. 실제로 감독님은 굉장히 과묵하고 느릿느릿 하다. 하지만 (감독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느릿한 호흡 속에서도 가끔 내뱉는 유머들이 있다. 그럴 때 '감독님이 이 대본을 쓴 사람 맞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전여빈은 지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죄많은 소녀>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당시 전여빈은 단짝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오해를 받는 영희를 연기해 관객과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들꽃영화상,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 여우상을 휩쓸기도 했다. 이병헌 감독 역시 <죄많은 소녀>의 전여빈을 보고 <멜로가 체질>에 캐스팅했다는 후문. 전여빈은 "배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연극 스태프로도 일하고 독립영화, 단편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부분 용돈벌이조차 되지 않는다. 간식값도 안 되고 차비 겨우 받는 정도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죄많은 소녀>라는 작품을 만났을 때, 첫 장편 주연작이었는데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수상을 하게 된 것이다.

서른이 될 때까지 데뷔하지 못하면 배우를 포기하려고 마음 먹었던 때와 지금의 저는 달라지긴 했다. 이제 기회가 생겼으니까. 내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직업적인 배우로서 프로페셔널하게, 책임을 다 하려고 한다. 또래 친구들과 보는 영화를 만들 때는 우리끼리 재밌어서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영화 드라마) 산업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책임감도 커졌다."

 

배우 전여빈 인터뷰 사진 ⓒ 제이와이드컴퍼니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샛별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전여빈은 꽤 오랜 기간 연기를 해왔다. 포털사이트 영화 페이지에 전여빈을 검색하면, 2015년 개봉한 영화 <간신>이 가장 이른 순서로 등장한다. 전여빈의 데뷔작이 <간신>으로 알려진 이유다.

하지만 전여빈은 "제가 처음으로 입을 떼고 말을 한 작품은 문소리 선배님이 역할을 주셨던 <최고의 감독>이라는 단편이었다. 거기서 정말 신나게 떠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배우로서 데뷔작이 뭘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며 데뷔작을 정의하는 기준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데뷔작을 정의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그 전에도 친구들과 단편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물론 학생들끼리 만들고 우리끼리 보는 영화지만 말이다. 배우를 오랜 기간 꿈꾸고 준비한 사람으로서 '데뷔의 순간이라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배우로서 호기심을 가졌던 그 순간일까, 아니면 내가 참여한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 그게 데뷔작일까. 

내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간신>에서 나는 말 한 마디 없는 지나가는 역할이었다. 영화에서 (관객이) 저를 찾기도 사실 어려우실 것이다. 물론 많은 (촬영) 회차에서 그 공간에 함께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게 데뷔작이라면 그 전에 했던 친구들과 올렸던 무대라든가, 영화들에게 미안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배우로서 이제 출발선에 선 전여빈의 각오는 '부지런함'이었다. 그는 "연기에 정답이 없기 때문에, 배우가 매력적"이라며 스스로를 갈고 닦겠다고 다짐했다.

"연기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지 않나. 정답지가 없는 종이에서 마음껏 놀 수 있다는 건 배우의 매력이다. 물론 가끔은 그게 큰 불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지런한 배우가 되고 싶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일을 쉬지 않고 달리겠다는 게 아니다. 녹슬지 않게 단련하고 갈고 닦고 싶다는 의미다. 작품에 임할 때 제대로 맛깔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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