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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보여준 마블과 DC의 차이... 명작이 탄생한 이유다

[리뷰] <조커> 이보다 조커와 조커의 세상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19.10.06 12:59최종업데이트19.10.0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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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은 라이벌 관계다.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탠 리가 1960년대 <판타스틱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까진 DC가 앞섰다고 한다. 영화 판권 시장 역시 슈퍼맨과 배트맨을 앞세운 DC가 앞섰다가, 2008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부터 마블의 독주가 시작됐다. DC도 뒤늦게 유니버스를 창조했지만 시장을 뒤엎긴 쉽지 않았다. 

마블이 캐릭터를 앞세웠다면 DC는 스토리를 앞세웠다. 그런 기조는 영화로도 이어져,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DC의 <다크나이트>가 손꼽히게 된 것이리라. 감독의 역량이 크게 좌지우지하겠지만 제작사의 입김이 없을 리 없다. 와중에 DC에겐 절대적 무기가 있으니,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조커'다. 역설적이게도 조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그동안 신기하게도 조커 단독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DC가 방도를 모색할 때 아무래도 마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DC는 수많은 캐릭터를 앞세워 거대한 연결 세계를 창조한 마블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 것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배우를 앞세운 영화 <조커>로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DC가 앞으로도 별처럼 홀로 빛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별개로 <조커>는 반영구적으로 빛날 게 분명한 명작이다.

의심과 논란의 여지 없는 '연기'
 

영화 <조커> 스틸 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고담시에서 광대로 일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를 모시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뇌 신경 이상으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킨다.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고 상담도 받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웃어도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뭐가 웃기냐며 의아해할 뿐이다.

영화 <조커>에서 의심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연기'다.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 플렉과 조커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머레이 프랭클린으로 분한 로버트 드 니로 역시 인상 깊다. 우선 로버트 드 니로는 35여 년 전 본인이 주연 루퍼트 펍킨 역을 맡은 영화 <코미디의 왕>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루퍼트 펍킨과 대칭된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웃기지 못하는 아서 플렉,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는 루퍼트 펍킨. 둘 다 망상증세가 심각하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3번이나 고배를 마신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커>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많은 이들이 최고의 조커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겠지만, 만들어진 조커와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조커들은 광기와 혼란과 악의 개념 하에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에겐 슬픔과 아픔과 공허까지 있다. 웃음발작으로 괴로워하는 '조커'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의 슬픈 기원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하염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한숨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 <조커>의 모든 것을 직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출'

10대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광고판까지 빼앗겨 실의에 빠져 있는 아서에게 광대 동료는 총을 건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쏴버리라고. 집에서 혼자 폼을 잡으며 시늉하다가 쏘아 보니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데 하필 총을 아동 병원에 가지고 갈 게 뭐람. 그 일로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영화 <조커>의 연출을 맡은 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다. 그가 누구인가. <행오버> 시리즈로 할리우드 막장 코미디의 대표 자리를 꿰찬 이가 아닌가. 연출 필모를 3편을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이후 2000~2010년대에 내놓은 9편을 모두 코미디로 채운다. 그런 그가 <조커>를 연출한다니.

DC의 후광으로 대대적인 관심과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받을 테지만, 작품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러웠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DC에서 내놓은 <조커>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테다.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도 하기 전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코믹스 최초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은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다.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괴물이 탄생했다는 일방향식 서사에, 조커 이전 아서 플렉이라는 지극한 개인적 서사를 얹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입체감을 얻었다. 

<조커>에 있는 것들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우발적인 살인 이후 표정과 행동이 바뀌는 아서, 대담해지고 일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말마따나 항상 웃으며 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웃음발작 때문에 행복한 적이 없었던 아서,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무례한 세상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가멸찬 외침이 되었고 당하고만 살았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향한 위로도 되었다. 이후 그는 광대라는 가면 뒤가 아닌 그 자신 광대가 되어 진짜 웃음과 함께 한다. 

영화 <조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은 차라리 <다크 나이트>에게서 받았고, 뇌리에 영원히 남을 듯한 모습은 히스 레저의 조커에게 남아 있으며, 기막히게 창조된 세상은 DC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에 보다 확실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조커>에는 무엇이 있는가. 

극중에서 고담시는 '코미디의 대가'가 재창조한 완벽한 미친 도시다. 아서 플렉은 스스로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 인생이었다'고 자신의 삶을 자조한다. 사회 기득권 층은 가난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머레이 프랭클린 역시 아서 플렉을 비웃는다. 개인, 대중,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을 '조커'라는 상징과 은유의 꼭짓점으로 모이게 하는 과정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된다. 고담시, 웨인 부자, 아캄 정신병원 등 영화 <배트맨> 시리즈과 조우하는 요소들도 모두 조커로 모이는 것이다. 영화 <조커>에는 조커가 있다. 이보다 더 조커와 조커를 둘러싼 세상을 잘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조커 DC코믹스 호아킨 피닉스 토드 필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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