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과활동, 수상경력, 자소서 다 빼면... 생기부엔 숫자만

[주장] 무한 경쟁이 완화되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백년하청일 뿐이다

등록 2019.09.30 14:37수정 2019.09.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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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교육공정성강화특별위원회-교육부 연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부가 11월 중에 최종 발표하겠다는 대학 입시 개혁안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우리 교육 현실에서 고작 한 달 남짓의 여론 수렴 절차만으로 묘수가 나올 리 만무하다. 대학 입시가 교육개혁의 전부인 양 여기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까닭이다.
   
지난 26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다"며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에서 비교과 영역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교육부의 답변인 셈이다. 여당 내에 '교육 공정성 강화 특별위원회'까지 설치하여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대다수 국민은 학종이 아니라 교육 전체를 불신하고 있다. 애꿎게 학종이 대신 뭇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지만, 학종을 대대적으로 손본다고 해서 허물어진 신뢰가 회복될 것 같진 않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우리의 현실엔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은 과거 대학 입시 개혁이 추진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나온 이야기다.

유 장관의 발표로 생기부의 비교과 영역 폐지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2022학년도부터 동아리 활동은 학년당 1개로 제한됐고, 봉사활동도 특기사항만 간략히 적도록 했다. 진로 활동 내용은 아예 대학 측에 제공할 수 없으며, 소논문 활동도 기재가 금지되어 있다. 현재 수상경력도 학기당 1개씩만 생기부에 적도록 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생기부는 이미 '빈껍데기'다. 비교과 영역이 폐지되면 사실상 생기부에는 계량화된 내신 성적과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이하 세특), 담임교사의 종합의견 정도만 남게 된다. 내신 성적과 세특은 별개일 수 없어, 생기부가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단출해질 것이다. 분량이 A4 30~40매가 훌쩍 넘는, 웬만한 책 두께의 생기부는 사라질 듯하다.

소수점을 따져가며 서열 매기는 관행, 벗어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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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수학능력시험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유 장관은 얼마 전 정시 확대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으나 일선 교사들은 비교과 영역의 폐지가 학종 비중의 축소로 이어져 결국 수능이 강화될 거라고 입을 모은다. 정시모집이 시행되고, 수능 최저등급 기준이 반영되는 현실에선 교과 영역은 학교마다 수능을 대비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학교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수능 연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도 "비교과 영역이 빠져도 세특으로 충분히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신 성적과 교과 교사가 적는 세특, 담임교사의 종합의견만으로도 개별 학생의 잠재성 평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왜 지금껏 수많은 항목의 비교과 영역을 생기부에 기재해 대학 입시의 전형 자료로 반영해왔을까.

그의 주장은 모순이자 학종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소수점 단위로 당락이 결정되는 현실과 계량화된 점수로는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역량을 평가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마련된 제도가 학종이다. 생기부를 통해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에 맞춘 활동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대학은 면접과 고교등급제 등의 다른 편법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학종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수능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교실 수업을 황폐화하고 사교육의 창궐을 가져온 수능의 대안으로 학종이 도입된 것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말이 안 된다. 수능과 학종이 양자택일의 문제로 천착한다면 결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선 영원히 평행선 위를 달릴 수밖에 없다.

수능도 기존의 선다형 문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자면 처음 도입되던 때의 취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말 그대로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의 유무를 확인하는 절차다. 처음 실행된 25년 전 요구되던 대학수학능력이 지금과 같을 순 없다. 부디 대학 교육의 수준을 고려한 새로운 틀의 수능이 고안되어야 한다.

수능이 당장 절대평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충분한 대학수학능력이 인정되면 더는 당락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의 학과에 따라 응시 영역별로 가중치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소수점을 따져가며 서열을 매기는 관행을 벗어날 때도 됐다. 오로지 수능 점수로만 당락을 결정하는 정시는 예외적으로 운영되어야 옳다는 이야기다.
  
생기부의 기재 항목 축소, 학창시절의 추억도 함께 사라졌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비교과 영역을 폐지 또는 대폭 축소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반기는 분위기다. 생기부의 비교과 영역을 두고 불공정성을 야기하는 독소 조항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그들은 학부모의 입김이 작용하고 관련 사교육이 활개를 치고 있다며 오래전부터 자기소개서와 수상경력, 창의적 체험활동 기재를 폐지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에 공감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생기부가 대학 입시 전형자료로만 여겨지다 보니, 학교생활 전반을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반영되는 항목 외에는 기입란이 통째로 비어있기 일쑤이고,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그에 따라 획일화된다. 생기부의 기재 항목이 하나둘 축소되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도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면 억측일까.

생기부는 학교가 50년 동안 보관해야 할 영구보존 장부인데 사실상 대학 입시가 끝나면 그것으로 효용 가치는 끝난다. 교사와의 소중한 인연이 담겨있고 또래 친구들과의 추억이 서려 있는 학창 시절의 '앨범'인데도, 대학 진학 이후 생기부를 들춰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긴 '소설책'이라 자조하는 마당에 생기부를 통해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이가 있을까 싶긴 하다.

학부모의 사회적 지위로 자녀의 스펙을 챙기는 악용 사례가 범람하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학종의 '호시절'도 분명 있었다. 당장 교사들의 수업방식이 달라졌고, 아이들은 야간자율학습 대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아 다양한 진로탐색활동을 벌였다. 아이들의 무기력을 깨웠고 잠시나마 학교 안팎에 활력이 넘쳤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대학 입시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가 여부에 따라 다양한 활동은 이내 획일화되었고, 학부모의 '힘'이 개입되면서 자발성은 점점 퇴색되어갔다. 예컨대 생기부 기재가 금지되면서 전국 단위의 토론대회나 과학 캠프 등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뜻 맞는 친구들과 벌이던 학교 밖 동아리 활동 등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온존한 학벌 구조 속에 교내 활동도 무사하지 못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과 상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자율동아리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최상위권 그룹 과외'가 성행하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십여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동아리들이 하루아침에 해체되고, '한해살이' 동아리들이 숱하게 명멸하는 현실이다.

폐지 0순위로 꼽히는 자기소개서도 그렇다. 고3 수험생들이 자기소개서 쓰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하고, 학부모와 사교육의 힘을 얼마든지 빌릴 수 있어 불공정의 대표적인 전형 요소로 손꼽히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다 보면 웬만한 교사들은 아이가 스스로 쓴 것인지 외부의 도움을 받은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인지 단박에 구별해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는 고등학교 3년 생활을 갈무리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취업할 때 이력서와 함께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듯, 상급 학교에 진학하며 생기부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자기소개서는 3년 동안 길러온 재능과 특기를 교사의 시각이 아닌 자신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둘씩 제외하다 보면 생기부엔 결국 '숫자'만 남게 될 것이다
  
악용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으니 폐지하자는 주장에 한편으론 수긍이 가면서도 못내 아쉬운 이유다. 그렇게 하나둘씩 제외하다 보면 생기부엔 결국 '숫자'만 남게 될 것이다. 교육부의 고위 관계자는 학종이 학교생활기록부교과전형 중심으로 바뀌고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로 운영될 거라고 했다지만, 세특이 내신 성적과 별개일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애먼 생기부의 기재 항목을 덜어내기보다 차라리 생기부에 적힌 학교명과 주소 등을 가리는 게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유수의 대학에선 생기부의 내용보다 지역과 학교명으로 한 번 걸러낸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이 불공정 요소를 줄이고 효율성도 개선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대학 입시에 도입해보는 건 어떨까.

교육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학종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비교과 영역과 수상 경력, 자기소개서 등은 학종의 핵심 전형 요소다. 예고대로 11월에 확정이 되면 4년 사전예고제에 따라 2024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적용된다. 2015년에 시작된 학종도 채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수술대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올해 11월이면 학종과 수능 사이 그 어디쯤에서 두루뭉술한 대안이 나올 것이다. 교육부는 학종의 폐해와 수능의 맹점을 두루 보완한 대책이라고 호들갑을 떨 테지만 반발이 수그러들진 않을 것이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이기적 욕망의 무한 경쟁이 완화되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백년하청일 뿐이다. 한낱 대학 입시를 손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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