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우상 박정희 암살되면서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5회] 김재규 사건의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9.09.28 15:38수정 2019.09.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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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 연합뉴스

1979년의 '10ㆍ26'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 현대사의 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18년 동안 무소불위한 전횡을 일삼아온 독재자가 사망하고 유신체제가 붕괴되었으며, 김재규는 내란죄 등의 이유로 이듬해 5월 24일 박정희의 계승자 전두환에 의해 처형되었다.

박정희는 국상의 절차를 거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김재규는 광주항쟁의 와중에 신군부가 개입한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처형되어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능평리 남한산성 공원묘지에 묻혔다.

박정희에게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상의 예우가 베풀어졌고, 김재규에게는 '국부를 시해한 패륜아'라는 가혹한 사법적 평가가 주어졌다. 박정희는 거대한 기념관이 세워지고,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가 탄핵되었으며, 출생지에서는 '반신반인'이라는 신격화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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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 청사 연두 순시를 수행하고 있는 차지철 경호실장. 두 사람 사이로 당시 노태우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모습이 보인다. ⓒ 동아일보

 
그러나 대법원의 심리과정 중 형사 3부의 양병호ㆍ서윤홍 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죄'에 반대의견을 냈고 최종판결 때도 민운기 판사 등 6명의 판사가 김재규에게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들은 5ㆍ17 전두환  쿠데타 후 모두 강제 사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0ㆍ26 사건은 이후 박정희에 의해 사육된 정치군인들과 그 아류들의 집권으로 엄정한 재평가 작업을 거치지 못한 채 '국부'와 '시해범'으로 자리매김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박정희는 18년 동안 헌정질서를 유린하며 민주주의를 짓밟고 인권을 탄압하면서 지역차별과 극단적인 냉전논리로 민족분열책을 추구했다. 그의 '업적'으로 치는 경제건설의 논리는 부분적으로 긍정의 측면도 없지 않지만, 같은 시기 대만ㆍ싱가포르ㆍ홍콩 등 '아시아 4룡'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발전상과 비교할 때 박정희가 독점할 품목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성장은 해방 후 교육받은 한글세대의 성장으로 대량의 우수한 산업예비군이 진출하고, 지극히 굴욕외교의 결과 식민지배 35년의 죄값으로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가 유입되고, 베트남전에서 5,000여 명의 희생의 댓가를 치르면서 10억 달러 정도가 들어왔다.

또 농민들의 저곡가, 노동자들의 저임금 등의 희생과 국제유가가 60년대 내내 1배럴에 1달러의 헐값이 유지되었다. 경제성장은 이 같은 요인에 의한 종합적인 성과였다.   

얼마 전 김재규 재판을 담당했던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저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뒤집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10ㆍ26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김재규는 처형 직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 앞에 "의사 김재규 장군지묘"라고 써주기를 원했다. 신군부세력은 이것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망 몇 해 후 광주ㆍ전남 송죽회가 세운 비석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추모시가 새겨졌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광풍 몰아 덮칠 때
홀로 한 줄기 정기를 뿜어 어두운 천지를 밝혔건만 
눈부신 저 햇살을 다시 맞지 못하고
슬퍼라 만 사람 가슴을 찢는구나
아! 회천의 그 기상 칠색 무지개 되어 이 땅 위에 길이 이어지리.

"박정희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역사상 세종대왕과 이충무공을 합해놓은 인물로 후세의 사람들은 반드시 평가할 것이다."

이것은 『위인 박정희』란 책에 나온 수사이고, 박근혜 집권 시기 이른바 뉴라이트계열의 역사관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덕택으로 감투를 쓰고 돈을 벌어 영화를 누렸으므로 그에 대해서 이런 극단적인 평가도 가능할 수 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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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견마의 충성' 혈서 일본에 ‘견마(犬馬)의 충성’과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一死以テ御奉公)을 하겠다는 박정희의 혈서는 당시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에 ‘혈서 군관 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왼쪽은 황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 ⓒ 김당

 
하지만 경제성장의 공을 어느 정도 인정하여 5ㆍ16 쿠데타 이후사를 이해하고 잇는다 치더라도 일제시대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용서해서도, 잊어서도 안 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박정희는 조국을 배반하고 왜적의 편에 섰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 장교로서 우리 독립군을 포함하여 많은 항일군을 적대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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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과 일본군의 대척점 광복군 장교 시절의 장준하와 일본 황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정반대였다. ⓒ 김당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로 활동하던 비슷한 무렵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장교가 된 장준하는 "박정희란 사람은 일제시대에 독립군과 싸운 일제만주군의 일원이었으며 나는 그걸 똑똑히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박정희만큼은 이땅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이다" 라고 주장했다가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독립군 출신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다카키 마사오'는 대통령이 되었고, 또 유신 쿠데타를 하고, 민주주의를 짓밟다가 살해되었다. 10ㆍ26은 이런 사실까지를 포함하여 재평가되고 정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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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 연합뉴스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김재규는 1979년 12월 18일 고등군법회의 법정에서 변호인들과 가족대표 4명만이 방청한 가운데 최후진술을 남겼다. '10ㆍ26거사'에 관한 장시간의 진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혈맹우방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것 입니다.
다섯 번째는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강신옥 변호사는 “유신 독재를 끝낸 김재규는 역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갈무리 ⓒ 안형기

 
전두환 신군부의 엄청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김재규를 변론했던 강신옥 변호사의 '10ㆍ26 재평가론'이다.

"김재규는 3심 재판에서는 졌지만 4심인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는 역사와 진실 앞에 더 솔직해야 한다. 그에게 민주회복의 공로를 인정하고 그의 죽음 앞에 겸허해야 한다.

12ㆍ12와 5ㆍ17 단죄로 시작된 '역사 바로세우기'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그 시발이 됐던 김재규 사건의 재조명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에 대해 광주시민 학살 등 내란 행위를 추궁하면서 김재규 문제에 대해 아무런 역사의 검증과 조치가 없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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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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