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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1차 합격'이 준 면죄부... 우리도 '공동정범'일 수 있다

[TV 리뷰] 우리 사회 '편견'을 이야기하다, OCN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

19.09.27 18:10최종업데이트19.09.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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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 ocn


이번에도 '역시'다.

김용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OCN 수목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은 회를 거듭할 수록 이야기의 밀도가 진해지고 미장셴도 더더욱 아름다워지고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청률은 계속 제자리다. 아마도 경쟁상대가 없었던 전작과 달리, 동시간대 방송되는 MBN-드라맥스 <우아한 가>가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올리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감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김용수 감독의 연출 방식은 여전히 이 시대엔 낯선 듯하다. 그럼에도 3, 4회 <달리는 조사관>이 보여준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인권 문제를 꼼꼼하게 짚는다. 

국어사전은 '인권'이란 단어를 두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또는 여자든 남자든, 외국인이든 아니든 사람은 누구나 '인간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적 권리건만, 어디서나 인권이 강조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각 사회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편견'으로 인해 인간적 권리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조사관>의 배경이 되는 국가인권증진위원회는 바로 이런 '위협받고 있는 인권'을 지켜내는 곳이다. 

2019년 소오소관 주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주인이 칼에 찔려 사망한 것.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이 주점에서 일하던 지순구(장정연 분)가 외국인 노동자 나뎃 쿠미(스잘 분)와 함께 밀린 임금 50만 원 받으러 갔다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수감중이던 나뎃은 자신의 옷에 '나는 사장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쓴 뒤 죽음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리고 나뎃의 형 사와디 쿠미야가 인권증진위원회(아래 인권증진위)를 찾아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 호소한다. 
 

달리는 조사관 ⓒ ocn


이후 등장한 지순구의 변호사인 대형 로펌 '썬앤문'의 오태문(심지호 분)은 경찰이 외국인 노동자 나뎃, 그리고 경계성 지능장애인 지순구를 '임의 동행'해 장시간 심문하여 경찰의 시나리오에 맞춰 자백을 받아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관들의 의견은 갈린다. 사건의 성격상 경찰의 무리한 강압 수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소오소관 주점 살인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사해야 하지만, 그건 결국 인권위의 영역을 넘어선 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증진위'의 성격에 맞게 조사만 해야 한다는 한윤서(이요원 분)와 예의 열혈 검사 출신답게 수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홍태(최귀화 분)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만다. 

편견의 공동정범들 
 

달리는 조사관 ⓒ ocn


여기서 <달리는 조사관>이 주목하는 건 바로 편견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경계성 지능 장애인이 범죄 피의자가 되어 왔을 때 경찰들이 보인 편견 말이다. 드라마는 이런 관습적 편견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인권증진위로 조사를 받으러 온 경찰은 '경찰이 그렇게 편견만으로 수사를 했겠냐'며 외려 반박한다. 지순구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간과했던 '소화기' 등을 언급하며 범인만 아는 현장 상황을 자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편견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하지만 인권증진위 조사관들은 현장과 조사한 내용을 보며 이 '자백' 속 허점을 찾아간다. 그리고 결국 동네 주민의 증언을 통해 사건 당일 나뎃은 지순구와 함께 술집에 가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었음을 밝혀낸다. 이후 지순구와 함께 술집을 찾은 게 지순구의 고시원에서 지내던 고시원 형이라는 사실도 확인된다. 

그러나 고시 1차에 합격한 그 형은 '고시'라는 사회적 관문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란 그늘에서 벗어난다. 더구나 지순구의 변호사는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대신, 나뎃을 재물 삼아 지순구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의 성과만 올리려고 한다.

결국 조사관들은 그 '고시 1차 합격'에 감춰진 실체를 밝혀낸다. 그는 사실 백수였지만 남들한테 그럴 듯해 보이기 위해 '고시생'이란 말로 자신을 치장했던 것이다. 경찰들은 그렇게 '편견'이란 색안경을 쓴 채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달리는 조사관 ⓒ ocn


한윤서는 '조사관'이란 자신의 신분적 딜레마를 넘어 지순구에게 충고한다. 변호사의 입에 발린 말에 넘어가 법의 그물을 피하려 하고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려는 그의 비겁함에 대해서. 이후 한윤서는 나뎃에게 행해졌던 경찰의 부당한 겁박 수사에 대한 인권증진위의 입장을 밝힌 뒤 비록 고시원 형과 함께 현장에 있었지만 살인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던 지순구에 대한 의견도 덧붙인다. 

언뜻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학벌, 신분에 대한 편견이 볼썽사납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늘 '인간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선언적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다종다양한 수식어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드라마는 차근차근 폭로한다. 그러면서 한윤서의 입을 통해 묻는다. 우리 역시 '편견의 공동 정범'이 아니냐고.

이 작품을 채우는 건 '감각적'인 영상과 구도이다. 하지만 그 구도를 통해서 제작진은 조금씩 굳어져 가는 우리 안의 사고 양식을 돌아보라고 권한다. 이는 이미 김용수 감독의 전작 <아이언맨>에서도 쓰인 방법이다.

<달리는 조사관>은 불편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고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공간'을 연다. 그래서 그건 낯설고 어색하다. 바로 그 낯설고 어색함이 <달리는 조사관>의 딜레마이자, 매력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달리는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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