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그는 어떤 인물인가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3회] 전두환의 승승장구에는 박정희의 뒷배와 함께 처가 쪽 인맥이 있었다

등록 2019.09.26 18:36수정 2019.09.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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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보다 '전두환 문제'는 그의 쿠데타가 공식적으로는 적법성을 상실했는데도 그 마무리가 깔끔하게 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전두환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보다 '전두환 문제'는 그의 쿠데타가 공식적으로는 적법성을 상실했는데도 그 마무리가 깔끔하게 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 연합뉴스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를 주동한 인물이 박정희였다면 그로부터 만 19년 뒤인 1980년 5ㆍ17 군사쿠데타를 주동한 인물은 전두환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44세였고 전두환은 49세였다. 박정희는 육군 소장, 전두환도 육군 소장이었다. 박정희는 경북 선산군 구미 출신이고 전두환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이어 일본 육사를 나와 해방 후 육사2기, 전두환은 육사11기 출신이다.

전두환에게 박정희는 롤 모델이었다.

30세 때인 1961년 4월 육군본부 특정감실 기획과장 대리로 전속되어 ROTC 창단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즈음 박정희의 5ㆍ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전두환은 5월 18일 당시 육사교장 강영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데모를 주도해 성사시켰다. 강영훈은 수감되었다가 미국으로 강제 유학을 떠났다. 전두환은 장도영이 축출되고 박정희가 실권을 장악,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면서 의장실 민원담당 비서관으로 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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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와 5·18을 통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전두환(좌). 1980년 전두환씨의 대장 전역식(우). 12·12와 5·18을 통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전두환(좌). 1980년 전두환씨의 대장 전역식(우). ⓒ 국가기록영상관

 
30세에 현역군인 대위의 신분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민원담당 비서관이라는 권력핵심부에 들어간 것이다. 그의 권력욕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이듬 해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으로 5개월간 근무한 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 배속되었다.

최고회의 의장실→중정→육본에서 인사담당을 맡을 만큼 모두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박정희의 입김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5ㆍ17 쿠데타를 함께 한 육사 11기 동기인 노태우는 육군 방첩대에서 근무하고, 손영길은 박정희 의장 전속 부관이었다.

전두환은 1966년 11월 중령으로 진급하여 1공수특전단 부단장, 1967년 8월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 대대장이 되고, 1969년 육사 11기생 동창회인 북극성회 회장, 대령 진급,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의 수석부관, 1970년 9사단 29연대 대대장으로 베트남 참전, 1년 후 귀국하여 1공수특전단 단장이 되고, 1973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청와대 경호실 차관보가 되어 박정희의 지근거리로 돌아왔다. 이때 청와대 경호실장은 '피스톨 박종규'였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부인 육영수가 저격되고 경호실장이 교체되어 차지철이 실장이 되었다. 전두환은 1977년 소장으로 진급되고, 1978년 보병 1사단장에 이어 1979년 3월에는 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와 국군보안사령부의 양축으로 유신체제를 유지했는데 전두환이 한 축을 맡게 된 것이다. 중정부장은 김재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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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12.12쿠데타를 성공하고 경회루 앞에서 이렇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1979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12.12쿠데타를 성공하고 경회루 앞에서 이렇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진집

 
1979년은 한국현대사의 일대 변곡점의 연대가 된다.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되고, 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법에 의거해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었다. 전두환은 27일 새벽 1시 김재규를 체포하고, 12월 12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다. 다음날(13일) 이희성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한다.

1980년 2월 6일 정승화는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방조죄로 기소되고, 4월 14일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 의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되었다. 현역 군인은 중정부장이 될 수 없었는데도 '서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중정부장이 되었다. 탈법이었다. 이로써 국군보안사령관과 중정부장이라는 국가의 양대 정보기관을 전두환이 꽤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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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전두환의 사적 전력도 살펴보자.

합천군 율곡면 여천리에서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1940년 가족이 중국 간도로 이주하여 만주 길림성 반석 호란보통소학교에 들어갔다. 1941년 대구로 이주하여 1944년 희도공립국민학교에 편입하고 1947년 대구공립공업중학교 기계과에 입학했다.

전두환이 부인이 된 육사 참모장이던 이규동의 딸 이순자를 처음 만난 것은 1954년 6월 육사가 태릉교정으로 옮겼을 때이다. 그때 이순자는 중학생이었다. 이순자는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1959년 1월 결혼한다.
 

남편과 함께 투표하는 이순자.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대통령 별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전두환은 중령으로 진급할 때까지 8년 간 처가살이를 했다. 전두환에게 집권을 부추긴 사람은 처가 쪽이었다. 결혼하던 해 아들 재국이 태어나고 1964년 둘째 아들 재용이 출생했다. 전두환의 승승장구에는 박정희의 뒷배와 함께 처가 쪽 인맥이 있었다. 그들은 사위가 집권한 후 부패의 패밀리가 되었다.

이규동은 육사 2기다. 1911년 11월 7일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다. 해방 뒤 육사 2기로 박정희와 함께 훈련받았다. 전두환이 아직 육사 생도이던 1954년 육사 참모장이 됐다. 군 생활 내내 보급과 살림을 도맡았다. 육군본부 경리감을 끝으로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대한노인회장을 지냈다. 동생 이규승과 이규광도 둘 다 군인이다.

이규광은 훗날 박정희의 사설 정보대를 이끈다. 1979년 말 전두환에게 집권을 권유한 게 이규광이었다고 작가 천금성은 주장한다. 이순자의 동생 이창석까지, 전두환의 장인 집안이 패밀리 비즈니스를 책임졌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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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이순자씨는 보육 분야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상단 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1981년 11월 24일 인천 새마을협동유아원 개원식 모습 ▲1982년 3월 4일 춘천 쌍용 새마을유아원 개원식 모습 ▲1985년 11월 5일 구로공단 새마을유아원 개원식 모습 그리고 ▲1983년 4월 14일 열린 대성 새마을유아원 개원식에 참석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 모습. ⓒ 경향·매경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원대복귀'의 공약을 저버리면서 민정참여를 앞두고 전역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정성이 없는 레토릭이었지만, 그 울림은 적지 않았다.

박정희의 권솔 아래서 성장한 전두환과 그 일당은 20여 년 뒤 다시 '불행한 군인'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불행'은 그들이 아니라 국민과 역사의 몫이었다.


주석
1> 고나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28쪽, 북콤마, 1913.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5ㆍ18광주혈사 #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 #전두환 #박정희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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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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