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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버리고 세상 찾은 청년'이라니... 이 해석, 불편하다

[리뷰] < MBC 스페셜 > '요즘것들 집을 버리고 세상을 찾다' 편

19.09.26 14:29최종업데이트19.09.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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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피플'. 이 말은 원래 살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난민들을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보트피플'이 영국에도 등장했다. 바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국의 청년들이 템즈강 일대에서 '보트'를 집으로 삼아 살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KBS 보도에 따르면, 영국 런던 리젠트 운하 인근에 3만 명에 달하는 보트피플이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트피플'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서울의 평균 집값은 7억에 달한다. 물론 이건 평균이다. 강남으로 가면 몇 십억을 호가한다. 7억을 모으기 위해선 200만 원씩 30년을 꼬박 모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청년층에겐 직장을 다니며 스스로 돈을 벌어 집에 마련하는 건,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신혼 여행만 4년째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채 2016년 12월에 결혼한 전재민-김송희 부부는 신혼집을 얻는 대신, 그 돈으로 항공권을 사서 외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4년여가 흘러 이들은 어느새 '프로 여행 영상 제작자'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신혼여행(?)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행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까지 돈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부부는 천만 원 정도 하는, 10kg이 넘는 방송장비를 짊어지고 경관이 좋은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 프로 여행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경험은 책으로 만들어져 두 사람에게 '저자'라는 이름을 갖게 해주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오늘은 행복하니까>의 저자 쨈쏭 부부가 바로 전재민-김송희씨다. 간간이 독자 초청 강연을 하는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눈다. 

그들에게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삶의 방향을 조정하게 해주는 전환점이 되었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나섰지만,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이후 주변의 도움으로 정상에 다다랐고, 그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만 맞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만의, 우리만의 방향'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는 두 사람은 수익이 생기고 있지만 '평생 살아갈 공간'이라는 의미의 '집'을 마련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는 그곳이 '순간'이지만 어느덧 두 사람의 집이 되었다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인생이 곧 여행 아니겠나"라며, "결국 인생이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평생 머무를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삶을 얻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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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대신 캠핑카

김동해씨는 자신에게 온 택배를 받으러 차를 타고 가야한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택배 아저씨가 찾아갈 수 없는 '캠핑카'이기 때문이다. 동해씨는 지금 경기도 구리시 왕숙천 천변 무료 주차장에 머무르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뮤지션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현실은 월세 내기도 빠듯한 삶이었다. 반지하와 고시원이 지금까지 동해씨가 살아온 공간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고시원 살이가 지겨웠던 그는 보증금 4천만 원으로 중고 캠핑카를 마련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대리 운전' 일을 잘 하기 위해 보다 더 기동성이 있는 '전동휠'를 마련했다. 

물론 자유로운 '집'을 마련했지만 캠핑카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실외 온도보다 5~6도가 높은 캠핑카에서 여름을 나는 건 고역이었다. 기능이 떨어지는 냉장고 덕에 식재료가 잘 상해서 애를 먹는 것도, 물탱크는 있지만 샤워 등을 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나름의 고충이다. 그래도 '더위, 추위 등 자연적 환경을 피하는 곳'이라는 집의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면 캠핑카도 엄연히 그의 '홈'이다. 

"햇빛이 들지 않은 고시원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는 동해씨는 '어제처럼 살면 어제처럼 밖에 살 수 없다'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캠핑카를 '고치'로 삼아 멀리 뻗어나갈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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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이너인 조희정씨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디지털 노마드'족이다. 디지털 시스템 아래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한다는 디지털 노마드족에 걸맞게 조지아에서 서울에 있는 동료와 화상 회의를 한다.

조지아에서 생활한 지 어언 28일째인 조씨는 세계의 여러 곳을 떠돌며 한 달 살기를 실행하고 있다. 이곳 조지아는 유럽과 같은 환경이지만 물가가 저렴하다. 서울에서 장 한번 보면 8~10만 원이 들지만, 이곳에서는 한껏 장을 봐도 2만2천 원 정도 나온다. 한 달 40만 원이면 충분해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다. 

조씨는 한때 일중독자였다. 그러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자신이 소모되는 것이 싫어 독립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 모바일 웹 서비스를 개발하며 세계를 떠돌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직업이 그녀의 방랑을 가능케 한다. 조지아에서 한 달을 보낸 그녀가 다음으로 선택한 곳은 '독일'이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한 달짜리 '새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홀가분하게 가방 한 개 들고 또 다른 '노마드'로서의 삶을 떠난다. 

쫓겨나는 대신 이동식 집을 

농사를 짓고 싶었던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땅'이 없던 그에게 '농사'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임대했던 땅에서 쫓겨난 청년은 홧김에 세계로 나갔다. 유지황씨를 비롯한 청년 3인방의 2년여에 걸친 무일푼 세계 농업 체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파밍 보이즈>라는 다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7년, 지황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작진이 그를 만난 곳은 6평짜리 이동식 주택이다. 농사를 짓는 청년을 위한 이동식 주택 입구에는 일을 할 때 입었던 작업복을 벗어 세탁할 세탁기가 있고 이어 샤워실이 나온다. 지황씨는 비록 작지만 한 사람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을 단 돈 천만원으로 지었다. 

그는 왜 집을 지었을까? 세계를 떠돌며 텐트에서 지내다 보니 아늑한 집이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농촌에 많은 빈집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말이 빈집이지 외지에 사는 자녀가 주인인 집을 임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또 막상 살만하게 고치려면 2000~3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단다.

무엇보다 농촌에 정착했다가도 얼마 후 쫓겨나는 경험을 했던 지황씨는 '집이라도 가지고 가야겠다'란 생각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위한 이동식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지은데다 1년에 전기요금 등으로 20~30만 원, 겨울에 난로 비용으로 5~6만 원 정도 들어 더 이상 월세 스트레스에 시달릴 염려가 없다고 한다. 

이 집을 '타이니 하우스'라고 부르는데, 남해군 두모마을에 그런 집을 짓고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벌써 6번째 타이니 하우스를 만들었다. 첫 농사를 짓고 쫓겨난 지 어언 7년이 된 청년 지황씨의 꿈은 이제 '청년 공동체'로 부풀어간다.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시대>에 따르면 이른바 '386'이라 통칭되는 세대는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벌어서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청년 세대'들이 있다.

다큐는 청년들이 집을 버리고 자신의 세상을 찾았다고 하지만, 스스로 집을 얻을 수 없는 세대의 궁여지책, 저마다의 각자도생이나 다름없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한 달 생활하기가 버거워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 집을 얻을 수 없어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리고 쫓겨날 수 없어 달팽이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집을 짓는 청년들까지. 과연 이것이 요즘 청년들이 자신의 '세상'을 찾는 보편적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을 '하우스 노마드'로 모는 세상, 이 땅에서, 세계에서 떠도는 청년 노마드들의 현실을 그저 세상에 대한 도전이라 퉁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MBC스페셜 - 2030청춘생존 2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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