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 가면 인생 망하나요?"

대안대학, 그게 뭔데? 새로운 대학의 모습을 상상하다

등록 2019.09.19 14:02수정 2019.09.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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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7일 토요일 오후, 서울 한복판에서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회가 열렸다. 오후 2시, 서울시청 스페이스노아에는 수십 명의 10대 청소년과 성인 여럿이 모여 앉아 기성 대학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안에 대해 토론했다.

특히 대입을 앞둔 예비 대학생 10대 청소년들이 이날 내뱉은 기성 대학 제도에 대한 비판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대학 교육의 예비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 그리고 현재 진학을 한 / 진학을 하지 않은 / 탈 대학한 교육 당사자들 모두 참여해 대안대학에 대한 고민과 함께 발제는 기성제도권 대학, 무엇이 문제인가(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총무국장), 대안대학 왜 필요할까? 고준우(대연넷 대표), 한국에 있는 대안적 교육공동체의 의의와 한계(이상한 대학교 활동가) 가 진행되었다. 발제를 듣고 교육 당사자들의 토크테이블이 이어졌다.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대학이라는 말은 '생소한' 용어일 것이다. 대안대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현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 아니고 그로 인해 명료하게 합의된 정의(定義)가 존재하지 않은 용어인 까닭이다.

대안학교의 정의를 참조할 때, 대안대학은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학교육에 대해 대안적인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교육공동체를 의미한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보면 대안대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종래의 대학교육'이란 어떤 것이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 그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대입제도 개편을 포함한 대학 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의 역사는 길고 지난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전진한 바꿈 이사는 '출생률 감소로 인해 4년 뒤에 망하는 대학이 숱할 것'이라는 어느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대한민국 대학 교육 제도 및 대학교 시스템의 총체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로 '사유화, 영리화된 사립대학이 광고를 볼모로 삼아 대형 언론사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하고 있는 이 문제, 즉 점차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대학과 그들이 양산하고 있는 모순적이고 기형적인 고등교육의 실상에 대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만들 새로운 대학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이날 첫 발제를 맡은 홍덕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총무국장은 '기성 제도권 대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발제에서, '순수한 대학'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나 많은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대형 사립대학의 기업화와 그로 인해 점차 왜곡되고 있는 대학 교육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이러한 대학의 자본화가 급격히 빨라졌는데, 이 시기의 변화상으로는, 첫째 프랜차이즈 식당이 대학 캠퍼스 내부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둘째 기업의 요구에 따라 상대평가가 도입되었으며, 셋째 'PBS'(연구과제중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대학 및 대학원 내 과별 연구비 수주 경쟁이 치열해졌다. 또한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일방적으로 통폐합하는 사례도 이 시기부터 빈번하게 발생했다.

점차 진화하는 대학들… 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수익 극대화
 

대안대학공론장 대안대학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상한 대학교 임시총장이자 대학연구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고준우 대표는 두 번째 발제 '대안대학 왜 필요할까'에서 역시 홍덕구 총무국장과 마찬가지로 기존 제도권 대학에 대한 비판에 날을 세웠다.

"가장 큰 문제는 탈민주화다. 소수의 이사회, 대학에 자본을 제공하는 기업, 최상위에 위치한 보직교수들에 의해 권력이 독점된 대학을 더 이상 민주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자본에 완전히 종속된 대형 사립대학이 대기업과 언론사와의 카르텔로 엮인 점을 지적하며 현재 전체 대학 중 무려 85.8%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성의 요구가 침투하기 힘든 한국의 대학현실은 여러 가지 현상들로 확인할 수 있다. 사학재단들의 비리, 대학 재정운영의 불투명성, 대학규제개혁위원회에 끊임없이 제출되는 사립대학들의 부담경감 요구, 등록금규제 완화, 대학의 최소 기준을 넘는 토지 취득 시 취득세 감면, 용도변경 제한 완화, 재단전입금 규모 제한 축소 등을 들 수 있다. 또 강사법이 통과되자 강의수를 축소시키는 행태 등이 그렇다. 공공의 요구에 의해 등록금 인상 제한, 강사법 시행, 회계감사 등의 견제가 있어도 그에 대한 사립대학들의 저항이 그러한 공공의 요구를 제한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좌절시키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사회 각계의 이러한 비판의 파동을 감지한 국내 일선의 사립대학들은 새로운 형태의 대학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고준우 대표는 SKY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높여 가고 있는 '스탠포드 디스쿨'과 캠퍼스가 없이 세계 곳곳의 7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기숙하며 공부하는 '미네르바 대학'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대학 운영의 유연화 확대와 이를 통한 수익화의 극대화다. 이들 사립대학의 미래 비전에 공교육의 정상화와 대학 교육의 질적 제고,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 향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대학은 오로지 계층 재생산의 가장 거대하고 확실한 도구일 뿐이다.

"대학 안 가서 행복할 것 같다고요?" 외롭고 불안한 '비대학'의 길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충남 홍성의 한 농업학교(대안학교) 출신인 이늘봄 활동가는 소신껏 택한 '비대학'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노라고 세 번째 발제에서 고백했다. 배움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열망을 대학 입시 제도라는 거대하고 폭력적인 시스템에 의해 평가받길 거부했던 고등학생 소년 이늘봄은 대학 입시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지식순환협동대학'에 입학해 지난 6월에 수료했다. 남들은 죽어라 수시와 정시에 준비하던 때 곁에서 책을 읽고 인문학에 심취했던 고3의 이늘봄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에 '대학 간 애들보다 보란 듯이 더 잘살겠다'는 다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돌아본 '비대학'의 길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론 항상 불안했어요. 아는 건 많은데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마치 '머리만 큰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는 또래 사이에서 분명 대학이 반드시 행복한 길이 아니라는 '반대학 정서'가 깊게 공유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이 아니고선 마땅한 대안이 부재하다며 '대학에 가도 불행하고 대학에 안 가도 불행'한 현실을 지적했다. 이러한 불안과 방황이 그를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것일까? 연세대 안에 있는 샐러드집에서 알바를 하며 생계를 잇고 있는 그는 지난 2017년 비대학 청년 모임 '살롱 구와이'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맞나,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해요. 비대학 청년들에게는 이런 고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공간이 필요해요."

발제 시간이 모두 끝난 뒤 잠시 진행된 질의 시간 때 다양한 질문이 이늘봄 활동가에게 집중됐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나요?" "나중에 취업할 때 비대학의 길을 걸은 게 과연 메리트가 될까요?" "앞으로의 진로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10대 청소년에겐 아직까지 생소한 '비대학'의 길에 대한 선망과 의문이 뒤섞인 관심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늘봄 활동가는 현재 자신을 포함한 비대학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그리고 자신들이 속한 다양한 '대안 대학'의 한계점에 대한 대안으로 "기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 각 대안 대학의 연합, 통합, 연동 및 상호교류 △ 교환학생 및 연합수업 제도 활성화 △ 공통의 의제 발굴 △ 비대학 청년만을 위한 공간 확보 △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 등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평생교육, 시민교육, 대항대학… 우리는 어떤 '대안 대학'을 상상해야 할까?

홍덕구 총무국장은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의 기능이 '학문적 진리 탐구'라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미 '상징자본'의 하나로서 상층 계급의 '아비투스'로 소비되는 대학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껍데기(기표)로 전락한 대학(학벌)의 존재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도대체 고등교육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단순히 '듣기'만 하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말하고' '표현하고' '만드는' 총체적인 교육이 구현되는 '평생교육'과 '시민교육'이 '대안 대학'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대학에는 기존의 기업화된 아카데미즘이 개입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준우 대표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인용하며 '조건 없는 대학'을 제안했다. 그는 대학은 "어떤 권력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할 수 있는 자유"를 담지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 질문해본 적 없는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 그러한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근거로 해 '대학다운 대학'을 시민 모두가 상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대안'에 머무르지 말고 제도권 대학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그들 소수 대학 권력이 그간 향유해온 각종 자원과 시스템을 돌려받는 이른바 '대항 대학' 전략을 제시했다.

10대가 상상한 대안 대학? 재정 공개, 학생이 곧 주인, 졸업 후에 학력 인정돼야…
 

대안대학공론장 대안대학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발제가 끝나고 자유롭게 모인 10대 청소년과 시민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대안 대학'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날 나온 새로운 대안 대학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일단 입학 기준과 모집 인원은 비교적 자유롭게 열어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최소한의 룰은 있어야 하므로 배움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정의 입학 기준을 마련하고, 다만 졸업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설문지를 통해 사전에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직접 적게 해 커리큘럼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굳이 비대학 청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희망하는 기존 대학 재학생까지 입학시켜도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교육 내용을 보자. 우선, 학교는 공공성과 접근성이 높은 카페 같은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학생을 평가하는 도구로 '출결'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출석체크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다들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교육의 방향은 뻔한 지식과 고리타분한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또한 학생이 스스로 인생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는 보다 넓은 단위의 '시민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운영은 어떻게 할까? 경영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모든 비용과 재무 현황은 학생들에게 전면적으로 공개되고, 특히 생계가 막막한 비대학 청년들을 위해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거나 아예 등록금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또한 학교 운영에 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졸업 후에는 학력이 인정되어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이날 10대들을 주축으로 한 시민 참여자들이 제안한 대안 대학의 슬로건은 △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대학 △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대학 △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대학 △ 학생이 직접 학교 운영에 참여하며 배우는 대학 △ 학생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는 투명한 대학 △ 누구나 자유롭게 다니는 열린 대학 등이 있었다.  앞서 진행된 단계별 대학공론장을 바탕으로 마지막 단계인  '대학교육 대안 슬램' 은 10월 3일 수요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기념홀에서 열리며, 1단계, 2단계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대학중심교육에 비판과 문제를 지적하고 시민참여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기획을 경연방식의 공론장으로 진행하게 된다. 토론 및 슬램 결과는 향후 "청년이 쓰는 대학도서"와 "대학 이렇게 바꾸자" 기획 기사 및 리플렛, 카드뉴스 등으로 제작되 우리 사회 대학담론을 바꾸는데 활용될 예정이다.

▶대학 슬램 발제/경연 참가자 시민심사위원 참여하러가기 bit.ly/대학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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