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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달구지 위 타이핑... 유엔군 종군기자의 기사 작성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26] 1951년 2월의 전란 현장

등록 2019.10.21 15:51수정 2019.10.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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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 유엔군이 원주 북쪽 안흥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1951. 2. 5.). ⓒ NARA

  
지평리전투

1951년 2월, 중국군의 제4차 공세와 유엔군의 제2차 반격으로 경기도 가평, 강원도 홍천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 형태로 전선이 형성됐다. 1951년 2월 11일의 경기도 지평리전투에서 중국군은 주력을 은밀히 서부전선에서 중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킨 다음 그날 밤부터 제4차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이에 국군 제3사단, 제5사단, 제8사단, 그리고 미 제2사단 제23연대와 프랑스군 1개 대대, 미 제5기갑부대, 영국군 제27연대 등도 동원됐다. 결과적으로 중국군이 주축을 이룬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 연합부대의 건곤일척 대전투에서 중국군은 6.25 전쟁에 개입한 이래 최초의 패배를 맛봤다. 또한 이 전투는 유엔군 측에 '중국군은 머릿수만 많지 별거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 서울 탈환의 계기로 작용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 측은 1. 4후퇴 이후 비로소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번 회는 그 시기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 
   

노무자들이 유엔군 군수물자를 지고 마을을 지나고 있다(1951. 2. 4.). ⓒ NARA

   

안양, 유엔군에게 사로잡힌 중국군 포로들(1951. 2. 5.). ⓒ NARA

  

한 유엔군 측 종군기자가 소달구지 위에서 피란민 여인과 면담하면서 기사를 타이핑하고 있다(1951. 2. 6.). ⓒ NARA

  

안동, 짚으로 덮어 위장한 탱크(1951. 2. 7.). ⓒ NARA

  

부산에서 남해안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피란민들(1951. 2. 8.). ⓒ NARA

  

부산에서 배를 기다리는 피란민들(1951. 2. 8.). ⓒ NARA

  

수녀들의 피란행렬(1951. 2. 8.). ⓒ NARA

  

한 신부님이 전쟁고아를 데리고 피란지 남해안 섬으로 가고자 배를 기다리고 있다(1951. 2. 8.). ⓒ NARA

  

남해안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피란민들(1951. 2. 8.). ⓒ NARA

  

피란민들의 길안내를 맡은 한국의 보이 스카우트 대원들(1951. 2. 8.).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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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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