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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여자가 사라졌다... 할리우드서 벌어진 끔찍한 일

[리뷰]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LA에게 보내는 감독의 핏빛 러브레터

19.09.10 10:01최종업데이트19.09.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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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당신이 오늘 고른 메뉴, 산 물건, 어쩌면 음악이나 영화의 취향까지. 모두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일까?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암호나 메시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영화 <팔로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집요하게 쫓아오는 심리적 고난을 소재로 삼았다. 신작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알프레드 히치콕, 데이빗 린치, 데이미언 셰젤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사랑한 LA에게 보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쓴 러브레터다. LA의 '실버 레이크부터 할리우드 힐'까지를 욕망의 무대로 삼는다. 히치콕으로 시작해, 데이빗 린치의 향기를 느끼다가 <다빈치 코드>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최근 개봉한 <미드 소마>와도 비슷한 접점을 갖기도 한다.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잘 알려진 배우 앤드류 가필드를 주목할만하다. 천재부터 히어로, 사랑꾼, 종교인, 군인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평범한 백수 샘으로 분해 이웃집 여자 사라(라일리 코프)를 찾아다닌다.

현대 영화에서 느껴지는 고전영화의 향기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공포영화는 음악을 끄고 보면 무섭지 않고 오히려 웃길 때도 있다. 영화는 그 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고전영화의 화면 구성과 색감, 음악으로 히치콕 영화를 오마주 한다. 영화 곳곳에 숨겨 좋은 이스터에그는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느낌의 미스터리함을 차용했다.

할리우드 부자의 파티를 드나들며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베티(나오미 왓츠)와 닮았다. 실종된 사라 또한 그랬다. 그녀의 집에는 마릴린 먼로 주연의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의 포스터가 걸려있고, 샘과 그 영화를 본다. 캐릭터를 본뜬 마론 인형을 전시해 놓음으로써 욕망을 드러내고 과시하고 있다.

관음은 LA 전체를 떠도는 유령 같은 욕망이다. 샘은 자기 집에서 수영장의 사라를 훔쳐보며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는 히치콕의 <이창>을 떠오르게 한다. 그 이후에도 <싸이코>와 <현기증> 등 고전 영화들을 재해석한 장면이 곳곳에 숨어 있어 영화에 대해 많이 알수록 재미있게 즐길 가능성이 크다.

이윽고 샘은 친구 집에서 드론으로 속옷 모델 지망생을 훔쳐본다. 그 여자는 아름답지만 어딘지 슬퍼 보인다. 샘이 반복적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관에 앉아 다른 삶을 보는 관람 행위 자체가 합법적 관음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때문에 샘은 결코 넘볼 수 없는 LA 대부호의 저택이나 호수 아래, 긴 터널을 통과해 찾으려 했던 장소, 승천을 꿈꾸는 지하 무덤을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허무함이 몰려온다. 누구나 이루고 싶지만 선택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과 허상은 할리우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음모로 가득 찬 세상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일에 집착하는 샘을 통해 문제를 파고든다. 샘은 호기심을 갖는 대중 혹은 관객이다. 사라가 없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LA 일대를 휘젓기 시작한다. 도살자가 판치고, 사람이 곧잘 실종되는 LA는 부자도 있지만 샘 같은 루저도 있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는 샘에게 나는 지독한 냄새와도 같다. 마치 <기생충>에서 느꼈던 하층민과 상층민의 차이를 냄새로 표현한 것처럼 가난의 꼬리표는 샘을 내내 따라다닌다.

샘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코믹북 작가의 말마따나 모든 음모를 기정사실화하게 된다. 영화는 개도살자의 기원, 호수 아래 전설, 부엉이 살인마 등 알 수 없는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장치)들을 투척한다.

샘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프린트나 집에 걸려있는 고전 포스터에도 숨은 의도가 있다. 다수의 맥거핀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때문에 관객은 점점 더 복잡한 퍼즐 조각을 쥐게 된다. 계속해서 샘은 사라를 찾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인기 뮤지션 '뱀파이어와 신부들'의 보컬에게 얻은 단서로 작곡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는 대중이 모르는, 사실은 은폐되고 조작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미디어, 광고에는 은밀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특정한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고, 뭔가 구매하고 싶도록 만들 수도 있다. 영화를 본 후 당신의 의지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가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속에 숨겨진 암호나 메시지를 찾아 추리해보는 탐정 영화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 <언더 더 실버 레이크>는 믿고 보는 영화 제작사 A24의 신작이다. A24는 독특한 소재, 신선한 연출로 관객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제작사 중 하나다. 설립 5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제작하고 배급한 <문라이트>는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때문에 할리우드 작가, 감독, 배우들은 제작사의 간섭 없이 창작 활동을 벌일 수 있는 A24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랑받은 영화로는 최근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유전>, <킬링 디어>, <미드소마> 등이 있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또한 '데이빗 로버트 미첼'감독의 독특한 연출력이 빛나는 A24 영화다. 지금까지 탐구해온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와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향한 헌사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현되었다. 개봉은 오는 19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언더더실버레이크 앤드류가필드 라일리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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