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막냇동생... 그곳에서 삶도 봄날이면 좋겠다

추석 명절 앞두고 맏이 같았던 막냇동생을 그리워하다

등록 2019.09.07 18:08수정 2019.09.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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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4형제는 2016년 4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막냇동생이 날짜를 잡았고 비행기표 예약 등 기타 여행 준비도 동생이 했다. 4월 제주도의 봄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기 마련이지만 우리 4형제는 마냥 기쁘지만 않았다. 막냇동생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동생은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상태였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동생을 겨우 달래서 한 항암치료 중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 동생의 상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이 여행이 동생과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모두가 그렇듯 막냇동생 역시 꽃피는 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북 구미시의 한 회사에 취직한 동생은 매년 봄, 주말이면 인천 큰형 집으로 놀러 오곤 했다. 올라 올 때마다 인천 인근으로 봄나들이 가는 걸 빼놓지 않았던 동생은 그것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는 듯 보였다.

그는 인천 영종대교 건너 바닷가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며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내곤 했다. 한적한 강화도 시골 들판에 피어난 야생 봄꽃을 벗 삼아 형들과 떨어진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씻어 내기도 했다.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 봄나물을 캐는 재미가 동생의 유일한 행복이 아니었나 싶다.

동생은 자신의 생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았던지 제주도 여행도 4월, 이른 초봄으로 잡았다.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몸이 음식을 거부해 도통 먹지를 못해 뼈만 앙상히 남아 거동조차 힘든 고통스러운 몸 상태에서도 동생은 우리 4형제만의 특별한 시간을 원했다.

다행히 여행 기간 내내 동생은 말기암 환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며 제주도의 봄 여행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에메랄드빛 제주 봄바다에서, 오른쪽 맨 앞이 막냇동생이다. ⓒ 신부범

 
이런 막냇동생이 있었기에 형들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 향기에 취할 수 있었다. 제주 봄의 상징 유체 꽃밭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도 동생의 대견함 때문에 가능했다. 에메랄드빛 제주 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된 것도 막내지만 맏이 같았던 동생의 의젓함에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동생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동안 먹는 것이 힘들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던 동생은 그날따라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여행 과정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는 사이 저녁은 깊어 갔고 모두 피곤했던지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는데 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르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던 동생이 음식을 모두 게워내고 있었다. 형들이 걱정할까 봐 혼자만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투병 중 동생이 겪은 일련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동생은 형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큰형 집에 맛있는 거 해놨으니 퇴근하고 이쪽으로 오라"며 살갑게 챙겼다. 또 휴대폰을 산 나에게 휴대폰 케이스를 선물해주는 등 심성 착한 동생이었다. 순간 동생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참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동생은 형들과 그곳에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 4형제는 무르익어가는 제주도의 봄을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힘든 투병 생활 끝에 이듬해 봄, 동생은 하늘나라로 갔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마지막 이별 여행이 되고 말았다.

동생은 왜 그토록 봄이 좋아했을까. 그러고 보니 동생은 봄에 태어났다. 형들과 마지막 여행도 봄이었다. 하늘나라로 갈 때도 5월의 봄이었다. 봄을 보기 위해 태어났고, 봄이 가기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동생, 그곳에서의 삶은 늘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막냇동생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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