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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참사' 기억 잃은 남자... 관객이 대신 기억해야

[리뷰]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19.09.03 11:13최종업데이트19.09.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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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포스터 ⓒ (주)NEW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랜만에 코미디 장르로 복귀한 배우 차승원과 <럭키>의 이계벽 감독이 만났다. 이계벽 감독의 전작 <럭키>는 목욕탕에서 기억을 잃은 킬러가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렸다. 여러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을 맡아 온 유해진의 첫 원톱 주연작으로 2016년 10월 개봉해 700만여 관객을 동원했다.

코미디에 '휴먼 드라마' 양념 추가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 (주)NEW

     
극 중 서로를 모르고 지내다가 만나서 아빠와 딸이 처음인 부녀지간은 '좌충우돌, 티격태격, 울며불며' 여러 사건을 시종일관 넘나든다. 이처럼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재미와 감동의 코미디란 탈을 쓰고 휴먼 드라마의 속내를 하고 있다. 과연 명절에는 뒤끝 없이 웃게 되는 코미디와 눈물 콧물 쏙 빼는 감동이 정답인가 보다. 그렇다면 사연 있어 보이는 남자, 미스터 리를 탐구해볼까.

배우 차승원은 뽀글거리는 파마와는 대조적인 근육질 몸매, 훤칠한 키와 무적 힘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남자 '이철수'를 소화했다. 2000년대 코미디 영화의 블루칩이었던 차승원은 마치 유해진의 바통을 이어 받은 듯하다. <럭키>에서 배우 이준의 캐릭터가 했던 역할을 배우 박해준이 맡으며, 낯익은 전개 방식을 취한 듯 보였다. 하지만 철수의 숨겨둔 딸 샛별(엄채영 분)으로 인해 신선함이 추가되었다. 배우 엄채영의 똑 부러지는 캐릭터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철수의 딸 샛별은 아픈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아픈 친구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병원을 뛰쳐나와 이승엽 야구선수의 사인볼을 받으러 가기도 한다. 또한 샛별은 '다음에'라는 말을 싫어한다. 어른들이 하는 하얀 거짓말에 일찍 철이 들었나 보다. 아프기 때문에 내일을 기대하기도, 내년 생일을 기약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하고 싶은 일은 당장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까지 아빠 철수를 빼다 박았다.

이렇게 시작된 샛별의 동대구 여행에 동행한 아빠 철수. 둘을 보자면 마치 철수는 순수한 아이 같은 어른이고, 샛별은 철든 어른 같은 아이다. 아이와 어른이 바뀐 상황에서 유발되는 웃음과 부녀 간의 시너지와 감동이 <힘을 내요, 미스터리>의 첫 번째 포인트다.

정곡법보다 완곡법... 영화에 담긴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 (주)NEW

 
영화는 초반부터 망가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전반에 깔고, 중반부터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으로 무대를 옮긴다. 멀쩡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어눌해 보이는 말투와 행동은 관객으로 하여금 철수의 과거를 궁금하게 만든다. 사실 그는 과거에 장모(김혜옥 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대구에 내려갔었다.

아이를 빌려 인정받고 싶었을지 모를 아내의 계획은 그날 사진처럼 멈춰버렸다. 이 사실을 모른 채 화재현장에 투입된 철수는 수많은 인명을 구하며 시민 영웅이 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지적장애를 얻었다. 이로 인해 철수는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희미한 트라우마는 딸의 위기 앞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정작 철수는 마냥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사람은 스스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거해 버리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가 2003년 2월 18일을 철수 대신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벌써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를 잃었거나 당사자가 큰 고통을 겪었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듯이 겉으로는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치유하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 (주)NEW

  
이런 점에서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구성은 <아이 캔 스피크>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온 동네에 관해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 불리는 '옥분(나문희 분)'과 원리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가 싸우는 코미디 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옥분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듣고 싶었던 말이 있다'는 묵직한 주제 말이다.

이중적인 뜻의 제목도 닮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제목으로 쓰인 문장은 극 중 옥분이 영어 공부를 하며 '말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 한 말과 피해에 대해 '증언하겠습니다'라는 속뜻의 복합적 의미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제목도 미스터 리(이철수)라는 철수의 이름과 함께 미스터리(Mystery)한 과거를 쫓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우리 모두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한 존재임을 영화가 대신 말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두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이계벽 감독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접목한 정곡법 대신 완곡법을 택했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기분 좋게 만드는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준다. 추석에 온 가족이 어떤 영화를 볼지 의견이 제각각이라면 나이, 취향까지 모두를 고려해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가족의 소중함과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 개봉일은 오는 9월 11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힘을내요미스터리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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