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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건아 하드캐리'도 소용 없었던 한국농구의 약점

[2019 농구월드컵] 3점슛 성공률 34.8%에 그치며 아르헨티나에게 26점 차 완패

19.09.02 09:53최종업데이트19.09.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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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의 4연속 금메달을 저지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아르헨티나 남자농구는 마누 지노빌리로 대표되는 '황금세대'들이 대거 은퇴하며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이 이번 농구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한 조에 포함됐을 때도 미국이나 세르비아, 호주, 프랑스 같은 강호들을 피한 것이 다행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8월 31일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 한국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69-95, 26점 차이로 완패했다. 1쿼터 중반 11-9로 잠시 리드를 잡은 것이 한국의 가장 큰 저항이었다. 외곽슛만 터진다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한 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한국은 아르헨티나에게 무려 17개의 3점슛을 허용하는 동안 8개의 3점슛 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물론 B조 최강으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에게 패한 것을 너무 아까워 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은 리바운드에서 49-48로 앞섰기 때문에 26점의 일방적인 스코어 차이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한국은 귀화선수 라건아(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가 31득점15리바운드2블록슛으로 맹활약했지만 라건아의 고군분투도 한국의 경기력을 살리지 못했다.

골밑의 한계 느낀 한국농구, KBL 최고 센터 라틀리프 특별귀화

한국은 1998년 그리스 세계 선수권대회를 끝으로 16년 동안 농구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NBA 선수들이 출전한 이후 사실상 적수가 없었던 미국이 유럽과 남미팀들에게 덜미를 잡히며 망신을 당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미국농구의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던 긴 시간 동안 한국농구는 철저히 '아시아의 변방'이었던 셈이다.

'농구대잔치 세대' 이후 농구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하던 한국은 2013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이 조기 탈락한 틈을 타 3위를 차지하며 16년 만에 월드컵 출전 티켓을 따냈다.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호주, 멕시코, 앙골라와 함께 D조에 속한 한국은 내심 앙골라와 멕시코를 꺾고 대회 2승 정도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5전 전패를 당하며 24개 출전팀 중 23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2014년 농구월드컵에서 김주성(원주DB프로미 코치)을 비롯해 김종규(원주DB), 오세근(안양KGC인삼공사), 이종현(울산모비스) 등 KBL 최고의 빅맨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하지만 KBL을 주름 잡던 최고의 센터들도 세계 무대에서는 높이와 스피드, 기량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그 때부터 농구인들과 팬들은 귀화 선수를 통한 골밑 보강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빅맨을 귀화시키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한국은 KBL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 중에서 후보를 찾았다. 그리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모비스의 챔프전 3연패를 이끌었고 2015년 외국인 선수 MVP와 베스트5, 수비5걸상을 수상한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렇게 라틀리프는 2018년 1월 법무부의 면접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주전 센터 라건아는 작년 농구월드컵 1,2라운드 예선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평균 20득점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으로 '탈아시아급'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김종규, 오세근, 이종현이 부상으로 불참한 아시안게임에서는 사실상 라건아 홀로 한국의 골밑을 지켰고 한국 남자농구는 라건아 합류 후 확실히 높아진 인사이드의 전력 상승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건아 맹활약해도 아르헨티나전 26점 차 완패, 슈터부재 절감

최근 한국농구는 문태종이나 조성민(창원LG세이커스) 같은 전문슈터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에 김선형과 최준용(이상 서울SK 나이츠), 이정현(전주KCC 이지스), 이승현(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처럼 피지컬이 좋고 멀티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선수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이번 대표팀 역시 골밑에 라건아를 중심으로 체격이 좋은 멀티 플레이어들을 고루 활용하며 체력전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작전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에서 제 몫을 해준 선수는 31득점 15리바운드의 라건아와 15득점 7어시스트의 이정현 정도밖에 없었다. 한국 대표팀의 주전 포인트가드 역할을 해야 할 김선형은 15.4%(2/13)의 저조한 필드골 성공률에 시달리며 5득점4어시스트로 부진했다. '국제용'으로 불리던 최준용 역시 21분 44초 동안 한 점도 올리지 못하다가 5반칙 퇴장을 당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엔트리에 포함된 12명의 선수가 모두 4분 이상, 25분 이하의 출전시간을 나눠 가지며 한국을 완벽히 압도했다. 특히 1980년생의 노장으로 NBA를 떠나 중국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루이스 스콜라는 21분 30초 동안 코트를 누비며 15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직접 수비리바운드를 잡은 후 홀로 한국 코트까지 돌진해 '원맨 속공'을 성공시키기도 했고 4개를 던진 3점슛은 무려 3개가 림에 빨려 들어갔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현격한 실력 차이를 확인한 한국은 2일 러시아, 4일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라건아의 골밑 경쟁력을 확인했음에도 한국의 1승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티모페이 모즈고프 같은 NBA리거들이 빠졌음에도 FIBA랭킹 10위의 러시아는 여전히 한국에게는 매우 벅찬 상대다. 한국이 1승 제물로 꼽고 있는 나이지리아 역시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과 운동능력을 갖춘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앙골라를 차례로 꺾었던 1994년 캐나다 대회를 끝으로 25년 동안 농구월드컵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당시 한국은 풍부한 외곽자원에 비해 골밑 전력이 약해 번번이 키가 큰 팀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제 한국에는 라건아라는 든든한 빅맨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농구가 세계무대에서 고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농구 월드컵은 한국농구의 약점이 그저 골밑 뿐이 아니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대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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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농구 2019 FIBA 농구월드컵 아르헨티나 라건아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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